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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 “부품 없어서, 너무 비싸서”…전자제품 수리 어려운 이유

입력 2023-10-24 15:00 수정 2023-10-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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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휴대전화들. 〈사진=녹색연합〉

버려진 휴대전화들. 〈사진=녹색연합〉


5740만톤.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버려진 전자 폐기물 양입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 등 전자제품 사용이 늘어나면서 매년 버려지는 전자 폐기물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자 폐기물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17.4%뿐. 나머지는 그냥 폐기됩니다.

많은 금속 물질과 화학 물질을 함유한 전자제품이 폐기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장 난 전자제품은 바로 버리는 것보다 최대한 고쳐 쓰는 게 중요하죠.

문제는 고쳐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구조가 복잡하고 전문 기술이 필요한 전기·전자제품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전자제품 수리 어렵다” 72%…비싸고 어려운 전자제품 수리

지난 17일 서울 잠수교에 마련된 '뭐든지 수리소'에 한 시민이 가지고 온 워크맨. 〈사진=이지현 기자〉

지난 17일 서울 잠수교에 마련된 '뭐든지 수리소'에 한 시민이 가지고 온 워크맨. 〈사진=이지현 기자〉


녹색연합이 전국 106개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전자제품 사용 현황과 인식을 조사해보니 한 가구당 평균 63개의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13.8개는 작동은 되지만 사용하지 않는 기기였고, 2개는 고장 나거나 파손된 채 방치된 기기였습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은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헤드폰 등 소형 가전제품이었습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방치하는 이유, 고치기 어려워서였습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72%는 “전자제품 수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고쳐 쓰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서울환경연합이 지난 8월부터 두 달 동안 '수리 실패 사례'를 제보받았는데요. 총 158건의 사례가 제보됐습니다.

그 중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없어서(40.5%)' 수리를 하지 못한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수리 비용이 너무 비싸서(23.3%)', '수리를 맡길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어서(16.0%)'가 뒤를 이었습니다.

제품이 너무 빨리 단종돼 부품을 구할 수 없거나, 제품 가격보다 비싼 수리 비용 때문에 고쳐 쓸 수 없었던 겁니다.

제품 구조가 복잡하고 어려워 소비자들이 고쳐 쓸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수집해 재사용하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구자덕 대표는 “삼성과 애플의 경우 휴대폰 액정을 분해하는 데 18~24단계, 배터리를 교환하는 데 15~24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U “최장 10년 부품 제공해야”…수리권 보장하는 해외


소비자가 제품을 고쳐서 쓸 수 있는 권리를 '수리권'이라고 하는데요.

전자제품을 구매한 뒤에도 소모품인 부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쉽게 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제조사도 고객의 수리권을 위해 수리 책임을 다해야 하죠.

해외에서는 수리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이미 유럽연합과 미국 등에서는 수리권을 법률로 채택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유럽연합은 2020년 수리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최장 10년 동안 부품이 단종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수리 설명서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수리가능지수'를 도입했습니다. 드럼 세탁기나 스마트폰, 노트북 등 자주 쓰는 전기·전자제품에 수리가 얼마나 쉬운지 나타내는 지수를 도입한 건데요. 소비자들은 이 지수를 보고 수리가 쉬운 제품을 골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미국도 2021년 수리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제조사는 전자제품 등이 고장 났을 때 수리에 필요한 매뉴얼을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고, 사설 업체에서도 직접 제품을 고쳐 쓸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5년부터 수리권 법안 시행…세부 내용은 아직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1일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수리권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서울환경연합〉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1일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수리권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서울환경연합〉


우리나라도 수리권에 대한 법안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말 만들어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인데요.

기업이 소비자에게 보증기간 내에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부품을 확보하고, 부품을 제공하는 배송 기한을 의무화하는 내용만 마련된 상황입니다.

얼마의 기간 동안 부품을 보관해야 하는지, 수리 매뉴얼을 제공 여부 등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법안은 2025년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환경단체에서는 법안이 시행되기 전 수리권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통해 세부 사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1일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에 ▲수리가 쉽도록 기업이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도록 의무화하고 ▲소비자가 수리 방식 및 업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보장하며 ▲소비자가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서울환경연합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2.9%는 '수리해서 사용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답했다”면서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많은 만큼, 수리권이 시행되는 2025년까지 치열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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