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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보기]욱일기 응징한 강남역 각시탈?…가짜뉴스 생산과 확산의 방정식

입력 2024-06-24 15:13 수정 2024-06-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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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각시탈'이라는 제목으로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사실과 거짓을 뒤섞여 만든 가짜뉴스의 유통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남역 각시탈'이라는 제목으로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사실과 거짓을 뒤섞여 만든 가짜뉴스의 유통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남역 각시탈”

오늘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군 게시물의 제목입니다. 커뮤니티마다 일본의 욱일기로 보이는 불법 광고물을 훼손한 사진이 연달아 올라왔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일본 욱일기를 배경으로 한 노래방 광고물을 칼로 찢어 공기를 뺀 뒤 넘어뜨린 사진 여러 장을 시간순으로 구성했습니다. 해당 광고물을 망가뜨린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사진으로 찍힌 A4지 3장 분량의 쪽지에는 광고물이 개탄스럽다며 순국한 열사의 희생을 더럽히는 무개념을 응징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밥 벌어먹기가 막막하더라도 지킬 건 지키자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강남 있는 자영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어 사진 모음 뒤에는 2012년 방영된 드라마인 각시탈에서 주인공이 욱일기를 칼로 찢는 장면을 붙였습니다. 게시물의 제목인 '강남역 각시탈'은 이렇게 완성됐습니다.

올라온 게시물에 네티즌들은 환호했습니다. 댓글마다 게시물 속 불법 광고물을 훼손한 행동을 환호하며 쪽지를 쓴 사람에게 '열사', '의인'이라는 칭호를 붙였습니다. 추천 수는 수백 개를 넘었고 “속이 시원하다”, “저런 분들이 있기에 힘들지만 살만한 세상이다”,“ 돈쭐을 내줘야 한다”는 글도 여럿 보입니다. 모두 1)최근 강남 한복판에 설치된 2)일본 욱일기를 배경으로 한 3)일본어 광고물을 응징한 4)의인이 자랑스럽다는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게시물은 제목만 조금씩 바뀐 채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최초게시물이 23일 오후에 한 소형 커뮤니티에 올라온 뒤 확대 재생산을 반복했고 오늘 오전에는 보배드림과 에펨코리아, 다음카페, 인스티즈 등 대형 커뮤니티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댓글들 역시 대부분 공통된 반응이었습니다.
2016년 당시 보배드림 커뮤니티에 올라온 욱일기 배경으로 추정되는 노래방 광고물 사진. 서울 안암동에서 촬영됐지만 오늘자 커뮤니티에서는 강남역에서 촬영된 것으로 뒤바뀌었다

2016년 당시 보배드림 커뮤니티에 올라온 욱일기 배경으로 추정되는 노래방 광고물 사진. 서울 안암동에서 촬영됐지만 오늘자 커뮤니티에서는 강남역에서 촬영된 것으로 뒤바뀌었다


그런데 이 게시물 네티즌들이 환호하는 사실과 여러 부분에서 다릅니다. 우선 사진을 찍은 장소는 1)지난 2016년 강남이 아닌 고려대 앞이고 2)광고물의 배경은 일본 욱일기로 의심되지만 3)광고글은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이며 4)훼손은 커뮤니티의 요청을 받고 이뤄진 행동입니다. 그럼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해당 게시글이 작성된 시점은 명확히 최근이 아닙니다. 해당 게시글의 원본은 현재는 지워졌지만 지난 2016년 11월 10일 처음 올라왔습니다. 보배드림 게시판에 고려대가 있는 안암동 참살이길에 일본 욱일기를 배경으로 한 대형 노래방 광고물이 세워졌다는 제보글이 올라왔고 이어 해당 글에 '이 댓글 추천 50개 넘어가면 저거 찢어버리고 인증을 올리겠다'는 댓글이 붙었습니다. 이어 실제로 추천이 쌓이자 'XX네'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실행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2시간 뒤 실제 광고물을 칼로 구멍을 낸 뒤 넘어뜨린 사진과 함께 그 위에 쪽지를 올린 사진을 여러 장 올렸습니다. 바로 오늘 온라인을 휩쓸고 있는 해당 글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두 번째 불법광고물의 배경은 욱일기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쓰여 있는 광고글은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입니다. 해당 글은 “13만 곡의 노래 무제한으로 즐겨 부를 수 있는 최신 최고급 장비, 국내와 동시 실시간 업데이트, 오늘의 노래왕은 바로 당신”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인을 상대로 한 게시물이 아니라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노래방에서 올린 광고글 이었던 겁니다. (광고물을 설치한 노래방과 광고물을 제작한 업체는 당시 온라인 매체를 통해 광고물의 디자인 역시 욱일기가 아닌 피아노 건반을 형상화했다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건 변명에 가까운 만큼 논외로 하겠습니다.)
 
2016년 욱일기 배경으로 추정되는 광고물을 훼손한 인물이 현장에 남긴 쪽지글. 순국열사의 희생을 더럽히는 무개념을 응징했다고 했지만 해당 광고물은 중국인을 대상으로한 노래방 광고물로 확인됐다

2016년 욱일기 배경으로 추정되는 광고물을 훼손한 인물이 현장에 남긴 쪽지글. 순국열사의 희생을 더럽히는 무개념을 응징했다고 했지만 해당 광고물은 중국인을 대상으로한 노래방 광고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러한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 없이 해당 게시글은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됐고 심지어 해당 글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언론에서도 같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날짜와 장소는 물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고 이 사건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런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사족에 가까운 글도 따라붙습니다. 심지어 해당 뉴스가 나온 시점 역시 2016년과 2019년 등 실제 사건이 발생한 지 수 년이 흐른 뒤입니다. 이런 강남역 각시탈 게시물의 확산은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의 전반적인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입니다. 완벽한 사실도 완벽한 가짜도 아닌 사실과 가짜를 적당히 섞어 넣어 대중을 현혹하고 이어 환호하는 사람들은 뉴스를 빠르게 확대하며 실체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실제 가짜 뉴스는 대중에게 알려진 진실과 함께 조작의 필요성에 따라 거짓을 섞은 뒤 유통됩니다. 대중은 가짜 뉴스의 일부 진실에 대해 신뢰하지만 이를 통해 거짓에 대해서는 진실성의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왜곡된 진실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정보로서 일반화됩니다. 실제 발생한 사건이나 사안을 먼저 적극적으로 내밀면서 나중에 섞은 거짓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보의 사실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원천정보나 사실을 탐색하는 불편을 건너뛰고 가짜뉴스를 있는 그대로 믿게 되는 겁니다.

이번 강남역 각시탈 게시글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대중들의 반감과 분노를 현실에서 실제로 행해주는 행동에 대한 카타르시스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나서기는 귀찮고 다소 위험스러운 행동을 대신 앞장서 행하는 인물에 대한 지지일 겁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과 발언에 대해 네티즌들은 일명 '사이다'라고 부르며 찬양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이다는 위험합니다. 마실 때는 짜릿하고 시원하지만 그 자체로 현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런 '사이다'를 마신 뒤의 갈증 해소를 더욱 자극적인 이슈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2016년 노래방 광고물을 훼손한 인물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대드림에 올린 글. 추천을 해주면 광고물을 훼손한 뒤 인증을 하겠다고 했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2016년 노래방 광고물을 훼손한 인물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대드림에 올린 글. 추천을 해주면 광고물을 훼손한 뒤 인증을 하겠다고 했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는 개인이 선호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흥미 위주로 뉴스를 소비하면서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확인 등 정보를 주도적으로 탐색하는 대신 점층적, 자극적인 문제 제기에 환호하고 곧바로 또 다른 이슈를 찾아 헤매는 과정입니다. 어떤 조직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어떤 의도로 뉴스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 정보를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이다가 된 가짜뉴스는 뉴스를 인용하고 재인용 하는 과정에서 가짜가 아닌 진짜로 둔갑하고 나중에 가짜 뉴스를 가짜로 밝히려 해도 이미 늦습니다. 실제 팩트체크는 가짜가 진짜로 둔갑한 과정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나중에 가짜로 판명이 났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뒤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과정은 놀랍도록 구조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조작해야 하는 주체 또는 그들이 지지하는 이들이 거짓 정보를 제공하면 진영논리에 따라 이들의 편에 있는 언론이 받아쓰고 조작을 해야 하는 주체가 내용을 재인용 하는 과정에서 해당 정보가 이슈화되는 구조를 만듭니다. 이렇게 주고받는 과정은 대체로 속도로 빠른 편인데 여기에는 진실과 거짓의 판단과 평가보다는 자극적인 이슈화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구조도 한몫을 합니다. 나와 연결되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서나 전달해 주는 정보는 언론사나 전문기관이 알려주는 정보보다 믿음직스럽다는 판단이 작용합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해당 정보의 출처와 형태를 따지지 않고 일단 믿는 경향입니다. 가짜 뉴스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전해주면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강남역 각시탈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 게시물 내용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아닌 표면적인 내용에 대한 환호가 이어지고 있다. 가짜뉴스 유통과 확산에 따른 반응과 유사하다

강남역 각시탈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 게시물 내용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아닌 표면적인 내용에 대한 환호가 이어지고 있다. 가짜뉴스 유통과 확산에 따른 반응과 유사하다

결국 이런 가짜뉴스에 속지 않으려면 정보와 뉴스의 유통과 관련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입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식이 아무리 유용하고 당연한 진리처럼 보여도 더 나은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지식과 정보의 근거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지식과 정보가 나의 생각의 바탕이 되고 나라는 인격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충분히 필요한 과정입니다. 제시되는 정보의 의도를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논리나 지식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목적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당 글과 발언으로 누가 어떠한 이득을 얻을까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지만,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에는 사실과 의견이 뒤섞여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세줄요약 입니다.

#'강남 각시탈' 유통은 가짜뉴스 확산과 닮았다.
#가짜뉴스 방정식 = 80% 진실 + 15% 거짓 + 5% 계획된 의도
#자나 깨나 '가짜뉴스' 조심 그리고 꺼진 '가짜뉴스'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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