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뒷일을 부탁한다" 2016년에 세상을 떠난 김관홍 잠수사, 그가 남긴 말입니다. 세월호 구조작업 이후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그가 남긴 이 부탁대로 그렇게 뒷일을 맡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또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김민관 기자입니다.
[기자]
4년이 지났지만 그날이 아직 또렷합니다.
외국인 감독은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나섭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찾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닐 조지/영화감독 : 아직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많은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사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현장으로 달려갔던 잠수사,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3달을 현장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검은 물에서 건져낸 292명보다 아직 찾지 못한 1명의 아이 혁규군이 눈에 밟힙니다.
[공우영/세월호 구조 민간 잠수사 : 5살 먹은…그 아이를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지금도 간절하죠.]
작은 교회의 목사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어 2년 가까이 4.16 합창단 피아노 반주를 자청했습니다.
위로할 말 재주도 없고, 큰 선물을 해주지 못하지만 음악 한곡을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말, 추모 행사 내내 목사는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김영명/목사 : 가족분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노래를 밑에서 돕는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 사람 모두 그동안 저마다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위로하고, 또 행동했습니다.
눈 앞 현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고,
[닐 조지/영화감독 : 항구에서 가족들이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들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공우영/세월호 구조 민간 잠수사 : 자신들(정부)이 할 걸 민간 잠수사들이 해줬는데 (잠수사 사망) 책임자들이라고 해서 기소를 하고…]
그래도 행동하는 걸 멈출 수 없습니다.
온전한 진상 규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영명/목사 :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를 계속해서 오늘도 부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