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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취재썰]"타다 기사는 근로자"…'선택의 덫' 정면 돌파한 곽도현씨 이야기

입력 2024-07-28 08:52 수정 2024-07-28 09:38

쏘카 상대 부당해고 소송 5년 만 승소 확정
첫 판결 이끌어낸 타다 기사 곽도현 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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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카 상대 부당해고 소송 5년 만 승소 확정
첫 판결 이끌어낸 타다 기사 곽도현 씨 인터뷰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타다 기사는 근로자'라는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2019년 7월 타다 기사 곽도현씨가 타다로부터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지 5년 만에 나온 결론입니다. 법원은 타다의 주인인 쏘카가 소속 근로자였던 곽 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땐 노동의 형식이 아닌 실질을 봐야한다"는 단순한 원리가 재확인됐습니다. 혁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해온 플랫폼 기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첫 확정 판결입니다. 동시에 '플랫폼 종사자'라는 형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판결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좁게 보면 80만 명, 넓게 보면 292만 명(2022년 기준)에 이르는 국내 플랫폼 종사자들의 사례에 이 판결을 단순하게 확장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아 수행한다'는 포괄적 정의로 한 데 묶을 수 없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노동의 모습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도현씨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플랫폼 기업이 감추려던 노동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누구나 플랫폼에서 일할 수 있고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지금, 이 판결의 의미를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곽도현씨는 이렇게 일했습니다.

"①망원으로 가시는 조해언님 맞으신가요? ②네비게이션 방향인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③안전을 위해 안전벨트 착용 부탁드립니다. ④(주행 후 3~5분 이내) 실내 온도와 라디오 볼륨은 괜찮으신가요? (중략) ⑤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타다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기사들이 외워야 했던 '응대어 교육 가이드'의 일부 내용입니다. 쏘카는 "모든 멘트는 생략·선택 가능한 멘트가 아닌 필수 멘트"라고 여러번 강조했습니다. 복장도 규율했습니다. '친절한 고급 택시' 이미지를 얻은 타다는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운전자들의 균질한 서비스는 대표적인 성공 비결로 꼽혔습니다.

2019년 택시업계와의 갈등 끝에 시행된 타다금지법의 칼날은 가장 먼저 기사들에게 향했습니다. 인원감축 통보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이뤄졌습니다. 사측은 해고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기사의 명단을 올린 뒤 "위에 포함되지 않으신 분들은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양해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19년 10월, 곽씨는 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구제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긴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부당해고 사용자 찾기'부터 난관...덕분에 만들어진 새 법리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곽 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처음부터 난관이었습니다. 부당해고를 주장하려면 '나를 해고한' 사용자를 정확히 찾아 지목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쏘카가 타다를 만들면서 설계한 구조가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쏘카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VCNC가 타다 앱과 서비스를 운영했고, 곽 씨는 VCNC와 인력 공급 계약을 맺은 또 다른 협력업체와 프리랜서 드라이버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쏘카를 사용자로 지목할 수 있다는 걸 해고 5개월 뒤에야 알게됐습니다.

노동법에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을 해고 통보 뒤 3개월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쏘카는 이를 빌미로 이어지는 재판 단계에서 "곽 씨가 5개월이 지나 쏘카를 지목했으니,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무효(제척기간 도과)"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대의 고용형태가 다변화됨에 따라 근로자는 자신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럴수록 경제적 열악한 지위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며 "사용자를 추가하거나 바꿀 이유가 생겼는데도 이미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부한다면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를 둔 취지와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하며 새 법리를 제시했습니다. "처음 구제 신청이 이뤄진 때를 기준으로 3개월이 지나기 전에 사용자를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건 타당하다"는 판단 기준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지노위▷중노위▷1심▷2심▷대법원 팽팽하게 엇갈렸던 결정

노동 사건은 사실상 '5심제'로 이뤄집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에 재심을 신청하면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받을 수 있고, 이 단계를 모두 마친 때 행정소송이 시작됩니다.

곽 씨의 근로자성에 대한 판단은 그동안 매 단계에서 뒤집혔습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곽 씨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선 맞다고 했습니다. 이에 불복한 쏘카가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선 다시 곽 씨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며 쏘카의 손을 들어줬고, 2심은 이를 또 뒤집었습니다.

곽 씨는 원래 지노위 결정까지만 받아본 뒤 마무리 할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노위 결정이 나온 뒤 "노동당국에서도 타다기사는 합법적인 프리랜서로 인정했다"라는 보도가 쏟아지자 오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곽 씨는 "'이정도면 됐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계속 버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법을 공부한 적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곽 씨는 '5심'을 거치며 근로기준법을 술술 읊는 노동법 전문가가 됐습니다.
 

플랫폼이 놓은 '선택의 덫'에 빠진 노동자 구하려면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쏘카는 타다 기사의 자율성을 강조했습니다. 기사는 원하는 날에 일할 수 있고 마음대로 배차를 거부할 수 있는 '프리랜서'라고 주장했습니다. 쏘카는 기사들을 지휘·감독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곽 씨가 일하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1심은 쏘카의 주장을 받아들여 "플랫폼을 이용한 사업구조를 설계하였다고 해서, 드라이버의 업무 내용을 지시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플랫폼 종사자는 지금의 노동법으로 구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곽 씨는 내내 의아했습니다. 노동법을 공부할수록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긱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막 영어를 쓰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혼란스럽더라고요. 노동법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거에요. 근로자란 노무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사람이다. 이익이 있는 사람이 사용자다. 법은 되게 간단한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곽 씨의 의문은 2심과 대법원 판결을 받아본 뒤 풀렸습니다. 직접 공부한 노동법의 기본 원칙이 판결문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법원은 "근로자·사용자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근로제공관계의 실질이 임금을 목적으로 한 종속적인 관계인지에 따라 판단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플랫폼이 일감을 매개하는 경우엔 "일의 배분과 수행 방식을 결정할 때, 플랫폼의 알고리즘이나 여러 사업자가 관여하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근태, 대기 장소, 운전 업무, 말 하나하나까지 결정하고 관리한 쏘카는 분명 곽 씨의 사용자였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노동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플랫폼의 '형식'은 혁신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성의 본질은 플랫폼이 셋팅한 형식이 아닌, 일하는 사람이 매일 경험하고 꾸려가는 구체적인 삶 속에 있습니다. 종속관계를 독립적인 계약관계로 위장해 사용자의 책임을 피해가려는 플랫폼 기업의 전략은 구태에 불과합니다.

플랫폼 기업이 놓은 '선택의 덫'에 걸린 노동자를 구제하는 건 혁신을 발목잡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새로운 법이 있어야만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의 실질을 지금까지의 원칙에 맞춰 따져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입니다. 곽 씨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들이 이익만 생각하고, 근로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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