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2일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열린 채 상병 영결식 〈출처=연합뉴스〉
지난 3일 고(故) 채 상병의 어머니가 쓴 4번째 편지가 공개됐습니다.
어머니는 첫 번째 편지는 해병대를 통해서, 두 번째부터는 대한민국 순직 국군장병 유족회 홈페이지 등을 통해 편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1년 넘게 '처벌'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던 어머니는, 4번째 편지에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처벌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영결식 직후 "다독여주셔서 감사하다,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보겠다"고 했던 어머니는 1년여가 지난 지금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처벌받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직후 새까맣게 타버렸을 어머니의 마음이 1년여 동안 왜, 그리고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4차례 편지를 되짚어 봤습니다.
채 상병의 어머니가 쓴 첫 번째 편지 〈출처=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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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습니다"
어머니는 영결식 사흘 뒤인 지난해 7월 25일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삼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유가족은 다독여주신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습니다." 당부는 하나였습니다.
"○○이가 사랑했던 해병대에서 철저한 원인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렇게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규정과 수칙 등 근본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박정훈 당시 해병대수사단장은 채 상병 순직 이틀 뒤(7.21) 유가족에게 1차 중간수사결과를 설명했고, 24일부터는 포항과 예천을 오가면서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명확지 않지만, 당시 어머니는 '철저한 수사를 해달라'거나 '누구를 수사해달라'는 당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편지에 '수사'라는 말은 아예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가 사랑했던 해병대를 응원하겠다'면서,
"정말 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이가 이 자리에 살아서 같이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뿐입니다." 라고, 그립고 아쉬운 마음을 적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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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수사에 진전 없어…엄마의 마음으로 염려"
아들의 1주기를 한 달여 앞둔 6월 11일, 어머니는 두 번째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사이 '채 상병 순직 사건 이첩-회수'가 있었고, 이른바 'VIP 격노설'이 불거졌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논란'이 있었고, 이 전 장관과 대통령실의 통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어머니는 편지를 쓴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7월 19일이면 저희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1주기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수사에 진전이 없고, 엄마의 입장에서 염려가 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참고 참았던, 궁금한 것들을 물었습니다.
"누가 7월 19일 유속도 빠르고, 흙탕물인데, 왜 물 속에 투입시켜 실종자를 찾게 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장화를 신고 들어가 수색을 하게 했는지, 장화 속에 물이 들어가 걸음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 원인이 밝혀져야 저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진실이 밝혀져야 제가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11개월 전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다"고 했던 어머니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모든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고통 속에 사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다면 저희 입장을 헤아려 주시고, …저희 아들 1주기 전에 경찰 수사가 종결되고 진상이 규명돼 저희 아들 희생의 원인과 진실이 꼭 밝혀져서 아들 희생에 대한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에는 우리 아이만 추모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7월 19일,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뒤 참담한 해병대원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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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너희 지휘관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경찰이 어머니의 편지를 읽어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북경찰청은 채 상병 순직 1주기가 되기 직전인 지난 7월 3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 해병대 7여단장 등 현장지휘관 6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송치 · 해병대 1사단장 등 3명은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불송치 경찰은 13쪽짜리 수사결과 설명자료를 배포했는데, 이 가운데 6쪽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왜 죄가 없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지만 특히 논란이 된 부분 몇 가지만 적어 보겠습니다.
· 작전통제권이 없는 임 전 사단장의 작전 관련 지시들은 '월권행위'라 '직권남용'이 안됨 · 작전수행 관련 (임 전 사단장의) 지적과 질책에 따른 부담감이 있었음이 일부 확인되지만 이를 이유로 대대장의 임의적인 수색지침 변경을 예상하기 어려워 '업무상 과실치사'가 안됨 · 수중수색 사진을 카톡으로 보고받고 "훌륭하게 공보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구나"라고 답했지만 사진 12장 중 수중수색 사진 1장을 특정해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워 '업무상 과실치사'가 안됨 어머니는 3주 뒤, 3번째 편지를 보냈습니다.
"(1주기 추모식 때) 아들 절친들이 많이 와서 엄마가 우리 아들이 인생을 참 잘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컸단다. … (아들이) 발버둥쳤을 때 너희 지휘관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경찰 수사결과 보고서엔 당시 지휘관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편지를 보내기 일주일 전, 경찰 수사결과에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채 상병 순직 1년이 넘게 지난 7월 24일, 경찰 수사 결과 때문이 아닌 유족의 이의신청을 이유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지난 5월, 경찰 수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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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편지 "해병대 전 1사단장이 처벌되길"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지 한 달 넘게 지났지만 드러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 4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5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소환 조사한 뒤로 '윗선'을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은 국회를 두 번 통과했지만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지난 3일, 다시 편지를 보냈습니다.
1년여 전 자필로 적었던 "힘을 내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아빠 엄마는 사는게 재미도 없고 죽지 못해 살고 있어. 정말 가슴이 아리고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단다. …의욕도 희망도 없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죽을 것만 같다." 그리고 대상을 특정해, 처음으로 '분노'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해병대 전 1사단장이 혐의자로 밝혀져 처벌이 되길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랄뿐이다. …군은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것을 언제까지 부하 지휘관들에게 책임전가만 하고, 본인은 수변수색 지시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회피만 하려고 하는 모습에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단다." 임 전 사단장의 사과와 눈물에도 의문을 표했습니다.
"49재 전날 유족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단다. 생존 장병이 말한 것처럼 본인의 업적만 쌓으려고만 했던 것에 급급해서 사랑하는 아들이 희생됐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그러면서,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아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겠지? 하늘에서 많이 응원해줘! 권력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진실은 꼭 밝혀질거라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으니… 아들을 많이 사랑하고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엄마가.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