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헌재는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지금의 탄소중립법은 헌법에서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해놓고도 2030년까지의 목표만 정한 뒤, 나머지는 '5년마다 그때그때 결정하겠다'는 법은 미래세대에게 너무 무거운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6년까지 2031년~2049년 사이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구체화하는 등 보다 나은 기후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발언하는 한제아 양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양이 발언하고 있다. 2024.8.29 sab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그러면서 헌재는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의 국가가 다해야 할 책임을 105장의 결정문에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이 결정의 주인공은 어린이들입니다. 하지만 "헌법소원이 헌법을 바꿔달라고 비는 소원의 줄임말인 줄 알았"던 청구인 한제아(12) 양과 같은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기엔 어려운 내용이 참 많습니다.
이 기사는 기후소송이 궁금한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헌법 재판이 무엇이고 또 우리가 보호받아야 할 권리란 무엇인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어렵지만 꼭 알아야 할 내용들,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기후소송을 이야기하기 전에, 올해 여름을 먼저 떠올려볼까요. 매일 '아이스크림을 2만개는 먹어야 할 것 같이' 덥고 뜨거웠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많은 비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십번의 여름을 겪고도 "이렇게 더웠던 적은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많았죠. 밖에서 뛰어놀기엔 너무 덥고 힘든 여름과 너무 추운 겨울이 반복되는 지금, 이걸
'기후위기'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기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고 전기를 쓸 때 나오는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더 뜨거워지는 걸 막기 위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 2℃ 이상 더워지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1.5℃ 보다 높아지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약속에 참여했습니다.
다른 나라들과 한 약속을 잘 지키려면, 우리나라 국민들과도 다시 약속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2021년 〈탄소중립법〉이라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2050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일단 2030년까지의 목표만 정했습니다. '2018년에 100만큼의 온실가스가 넘쳤다면, 2030년엔 적어도 40만큼 줄여서, 60만큼만 나오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러 궁금증이 따라 나왔습니다. '40만큼 줄이는 걸로 충분할까?', '203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저것만 지키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걸까?',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걸까?'…
'아니,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어린이·청소년·어른 255명이 모여 헌법재판소에 찾아가 질문을 던졌고(헌법소원), 이걸 '기후소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의 기준이 〈헌법〉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우리나라의 최고 법입니다. 국가와 국민이 가장 처음 맺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난 그 순간, 국가는 "이 땅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또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무도 뺏어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이 때 여러분의 두 손에 꼭 쥐어집니다. 국가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하는 것 같을 때, 헌법재판소를 찾아가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을 만드는 국회, 법에 따라 일하는 정부 등으로 하여금 이 약속을 지키게 만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두 손에 꼭 쥐고 태어난 권리 중 〈환경권〉이라는 권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건강하고 쾌적한 곳에서 살게 해주겠다(헌법 제35조 제1항)'는 국가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기후위기 상황에선,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위험이 큽니다. 사람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만큼 줄이겠다'는 법으론 이 약속을 지킬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20년 뒤엔 지금보다도 더 덥고 춥고, 위험해 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자꾸만 커졌습니다. 미래에 덜 위험하려면 '국가가 지금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법이 달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착석하는 헌재재판관들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8.29 [공동취재] sab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헌법재판소는 답을 내리기까지 4년 넘게 고민했습니다. 올해 봄엔 "이정도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정부 사람들과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시민들을 두 번이나 헌법재판소로 불러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도(공개변론)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먼저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지금의 노력이 부족할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미래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헌법 전문)"이라는 다짐과 맞지 않는 일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미래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건 무엇일까요? 방학숙제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만약 30일 동안 〈독후감 30개 쓰기〉라는 여름방학 숙제를 받았는데 처음 20일 동안 독후감을 2개 밖에 못 썼다면, 남은 10일 동안 28개의 독후감을 힘겹게 써야합니다. 미루지 않고 열심히 썼다면 '미래'의 나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다시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미래세대의 상황은 더 억울합니다. '20일 동안 독후감을 딱 2개만 써놓기로 한 결정'을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어른들이 했는데(심지어 미리미리 쓰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다가 방학이 끝나기 직전에야 "빨리 밀린 독후감을 써라"고 다그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만큼 줄이겠다'는 계획을 아예 세우지 않은 건 잘못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직 법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인만큼 국회가 나서서 미리 법에 적어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약속한 환경권을 지켜주기엔 부족한 법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국회가 2026년 2월까지는 꼭 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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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건가요?
아직 잘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더워서, 물에 잠겨서, 산사태에 쓸려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해마다 수십 명 씩 나옵니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더 빠르게, 더 심각해지는 건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헌재 결정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들은 보다 분명해졌습니다. 국회는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더 튼튼한 법을 만들고, 정부는 어떻게 해야 그 법을 다같이 잘 지킬 수 있을지 알려주고 지켜봐야합니다.
환경권이라는 귀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는 의무도 있습니다. 먼저 환경을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이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매일 소중하게 가꿔줘야 합니다. 또 가까운 친구와 먼 나라 이웃, 동물들의 소식에 관심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관심과 마음에서 피어나는 작은 실천들을 서로 칭찬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어른이 됐을 때의 내 삶과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질문한 어린이들은 이미 큰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직접 나와
"정말 사랑하는 두 달 된 사촌동생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한 6학년 제아 양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의 미래는 물에 잠기듯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지금 할 수 있는 숙제'는 법을 만드는 어른들이 모인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숙제검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국회가 제 때 숙제를 마치는지, 어린이들도 계속 지켜봐주면 좋겠습니다.
▲기사에 도움을 주신 분(곳)=윤세종·김영희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 변호사,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헌법재판소 어린이홈페이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