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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입력 2024-07-22 08:01 수정 2024-07-22 11:0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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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5)

남쪽 제주를 시작으로 올해 장마가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힘든 여름을 나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인만의 일이 아닙니다. “온난화의 시대(Era of Global Warming)는 끝났다. 끓는 지구의 시대(Era of Global Boiling)가 도래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2023년 7월 발언에 이어 공식적으로 '역대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된 2023년 이후, 달궈진 지구는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와 동북아, 유럽 서부엔 집중호우가 쏟아져 인명피해와 사회·경제적 피해가 잇따르고 있고, 최고 50℃ 넘는 낮 최고기온이 기록된 데스밸리를 비롯, 미국 서부 일대엔 폭염으로 대형 산불까지 일어났습니다. 유럽 남부에도 40℃를 웃도는 폭염이 찾아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발생했고, '추운 곳의 대명사' 시베리아마저도 30℃ 이상의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남반구의 중남미 서부와 아프리카 남서부엔 심각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이 지역의 식량안보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도대체 얼마나 뜨거워졌기에 이런 재해재난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1940년 이래 지구 평균기온의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최근 50년(1951~2000년) 평균 대비, 지난해 지구의 연 평균기온은 1.094℃ 높았습니다. 1940년에 비하면, 무려 1.3℃ 오른 것입니다. 해마다 연 평균기온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간 결과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같은 기간, 아시아의 연 평균기온은 평년 대비 1.808℃나 올랐습니다. 2023년과 1940년의 연 평균기온 차이는 무려 2.1℃. 전 세계가 이야기하는 '1.5℃ 마지노선'은 이미 훌쩍 넘었습니다. 그 마지노선의 기준은 '최근 50년(1951~2000년) 평균'이 아닌,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이기에,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요.

아시아 주요국 중에서도 그나마 온화한 날씨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당장 최근 30년(1991~2020년) 평균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2023년 연 평균기온은 1.1℃ 높았습니다. 1940년 한국의 연 평균기온과 2023년 연 평균기온의 차이는 무려 2.6℃에 달합니다. 전 세계 평균보다 아시아 평균이, 아시아 평균보다 우리나라의 평균이 더 큰 상승폭을 보인 것입니다. 한국은 온난화의 안전지대가 아니라 취약지임을 확인시켜주는 통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단순히 기온만 높아지는 '온난화'를 넘어 '기후변화'로 일컬어지는 만큼, 강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강수는 기온처럼 뚜렷한 추세가 목격되진 않았습니다. 그나마 전 지구 차원에서 봤을 때, 강수량은 소폭 늘어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경우, 1940년대 한 차례 급증한 이래로 해마다 증감을 반복할 뿐, 뚜렷한 증가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 단위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강수는 해마다 늘기도, 줄기도 했습니다만 '확연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호우일수입니다. 오랜 시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연 강수량과 달리, 호우일수는 증감을 거듭하는 속에서도 증가세를 보인 것입니다. 호우는 비단 '견디기 힘든' 수준을 넘어 인명피해와 각종 사회·경제적 피해를 부르는 만큼, 어찌보면 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총 강수량의 증가는 없는데 호우일수는 늘어난다는 것은 곧, 가뭄 또한 빈번해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그로 인한 재해재난 자체도,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WMO(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세계기상기구)의 자료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재해재난의 피해가 그저 저개발국가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1970~2019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총 1만 1,072건의 재해재난 가운데 거의 대부분인 71%가 개도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전체 사망자 206만 4,929명 중 91%가 개도국에서 발생했고요. 하지만, 총 3.6조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의 59%는 선진국에서 발생했습니다. 발생 건수로는 전체의 24%에 불과했지만, 각종 설비와 인프라가 고도화하고, 집적화한 만큼 '잃을 것'도 많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세계 각국을 고소득-중고소득-중저소득-저소득으로 구분한 세계은행의 국가 구분 기준에 따라 통계를 살펴보더라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한 재해재난 가운데 30%가 고소득 국가에서 발생했는데, 경제적 피해액의 63%가 선진국에서 발생한 피해액이었던 것이죠. 한국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재난에 더욱 기민하게 대비하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아시아가 글로벌 기후변화의 취약지임을 나타내는 숫자들은 또 있습니다. 1970~2019년에 이르는 50년의 세월, 전 세계에서 발생한 총 1만 1,072건의 재해재난 가운데 31%가 아시아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총 3.6조달러의 경제적 피해 가운데 3분의 1이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액이었고요. 재해재난 자체도, 그 피해의 규모도 모두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특히 사회·경제적 피해액은 급증했습니다. 1970년대 231건에서 2010년대 1,010건으로 재해재난 발생 건수가 약 4.4배로 늘어난 사이, 374억달러였던피해규모는4,650억달러로 12.4배가 됐습니다.

가장 빈번했던 재해재난의 종류도, 가장 큰 사회·경제적 피해액을 남긴 재해재난의 종류도 모두 '수재해'였습니다. 전체 3,454건의 재해재난 가운데 45%가 홍수였고, 총 피해액의 57%가 홍수에서 비롯됐습니다. 건수 측면에서나, 피해액 측면에서나, 홍수 다음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것은 태풍이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최근 10년(1995~2014년)간 아시아 지역 국가의 연평균 사회·경제적 피해규모를 살펴봤을 때, 한국은 연 284억 6,726만달러로 역내 5번째로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였습니다. 유엔 ESCAP(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은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2℃ 오른 미래에, 아태지역 국가들의 피해규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따져봤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피해액은 연 286억 5,382만달러로 현재 대비 연간 1억 8,656만달러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피해규모 Top 10에 드는 나라는 지금이나 2℃ 뜨거워진 미래에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의 피해규모 순위는 현재 중국,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에 이은 5위에서 미래에 6위로 한 계단 내려오게 되겠지만, 그 규모 자체는 크게 늘어납니다. 반면, 태국과 필리핀 등 수재해에 취약한 국가들의 경우, 피해규모의 증가폭이 커 각각 5위와 7위로 현재 대비 한 계단씩 순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태지역 내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피해규모 상위 10개 나라 가운데 산업화 이전 대비 2℃ 더워진 지구에서 피해액이 줄어드는 나라는 단 한 곳, 러시아 뿐이었습니다. 역내 가장 북쪽에 위치한, 혹독하게 차가운 지역도 있는 곳인 만큼, 러시아는 과거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의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도 평균기온 1℃ 상승시 GDP가 높아지는 지역으로 분류된 바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우리나라의 취약함은 지표로도 나타납니다. 지난 190번째 연재에서 전해드렸던 미국 노터데임 대학의 ND-GAIN 인덱스가 대표적입니다. 노출과 민감도, 적응 능력 등을 종합 평가하는 이 지표에서 한국은 종합 순위 15위로 꽤나 높은 성적을 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을 의미하는 노출 부문 평가에서 우리는 149위로 매우 낮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DR콩고와 공동 149위로, 세계은행의 4단계 소득 기준 국가 구분 상에서 '고소득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순위였고, 파키스탄과 말라위(공동 146위) 등의 나라들보다도 더 낮았습니다. 민감도 부문에선 52위로 노출 부문 대비 순위가 높았지만, 결코 만족할 만한 순위는 아닙니다. 북한과 수리남(공동 47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우리가 동일한 기후변화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죠.

감축과 적응이라는 기후변화의 양대 축 가운데 한국은 그 어느 하나에 우선순위를 두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감축은 감축대로, 적응은 적응대로 모두 시급하기 때문이죠. 두 축 모두, 제대로 된 첫걸음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온실가스가 어디서 얼마나 배출되는지, 어디서 얼마나 에너지를 소비하는지 등을 파악해야 앞으로의 감축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상요소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기상이변을 마주할 인구는 성별 또는 연령별, 직업별, 소득별로 어떤 구조를 보이고 있는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는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앞으로의 적응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보건지표는 이러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전까지 화학물질이나 미세먼지 등과 같은 대기오염물질을 중심으로 환경보건지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면, 이젠 기후변화가 환경보건지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됐죠. 그리고 이 지표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이어 지자체 단위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처럼, 국가 단위에서 지자체 단위로 세부적으로 조율하고, 조정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연령 또는 성비도, 인구밀도도, 주거형태도, 자연환경도, 도로나 건물 등 인공환경도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환경보건지표 국제심포지엄이 지난 6월 21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행정관에서 개최됐다.

환경보건지표 국제심포지엄이 지난 6월 21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행정관에서 개최됐다.

지난 6월 21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행정관에선 이러한 환경보건지표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이날 심포지엄의 핵심 또한, 환경보건지표에 기후변화를 반영하는 일이었습니다. 서울시 환경보건센터의 홍윤철 센터장은 기조연설에서 “기후변화는 매우 어려운 도전 과제인 만큼, 지자체 차원에서 그에 따른 환경보건영향을 추적하거나 이를 완화하려면 별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WHO의 지표나 국가 차원의 지표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종합적·포괄적인 지표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는 만큼, 이를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지자체 차원의 환경보건지표 개발은 이제 권장이 아닌 의무에 가깝습니다. 이는 정부 정책에서도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황계영 환경부 환경보건국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환경부는 제2차 환경보건 종합계획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영향 대응력 강화와 지역 중심의 환경보건정책 추진 강화 등을 중요한 정책과제로 설정해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개정된 환경보건법에서도 광역 지자체가 지역의 환경보건계획을 수립해 주도적으로 관련 정책을 시행하도록 한 만큼, 세부 지표의 개발 또한 뒤따라야 하는 것이죠.

기후변화 그 자체와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행동은 어느덧 모두의 삶속에 스며들게 됐습니다. 탄소중립은 국제기구 차원에서 다루던 '거리가 먼 어젠다'에서 국가 단위의 계획이 됐고, 국가 단위의 계획 수립에서는 배출과 감축의 주체로서 산업계의 참여와 역할이 필수가 됐습니다. 공공기관, 민간기업, 시민사회 할 것 없이 모두가 영향을 받고,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만큼, 광역 지자체와 기초단체 차원의 계획 수립도 마찬가지로 필수가 됐고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핵심을 꼽자면, 이는 바로 '융합'일 것입니다.

온실가스 배출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를 규명한 이학,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한 공학, 이를 상용화시키기 위한 경제학, 그러한 기술을 사회화하고, 관리하고, 육성하기 위한 정책학 등 학문에서의 융합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중앙·지방 정부에서도, 민간 기업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은 '환경 담당' 또는 '에너지 담당' 부처나 부서만 기후변화 대응을 전담한다면 진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탄소중립 시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전기공학자와 기존의 주무부처만 모여 수립할 수 없는 것처럼, 기후변화 시대의 환경보건지표 또한 환경·보건학자와 기존의 주무부처만 모여 수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전담이 아닌, 모두의 관심과 개입, 관여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상이 된 기상이변, 필수가 된 지표 개발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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