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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입력 2024-08-19 08:01 수정 2024-08-19 10:5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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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9)

계속해서 뜨거운 8월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의 대기도, 바닷물도 모두 역대급으로 달궈진 상태이죠. 8월 13일 지구의 기온은 16.74℃로, 8월 이후에도 매일같이 전 지구 평균기온은 역대급 수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같은 날, 지구의 해수면 온도는 20.94℃에 달합니다. 이 또한 2023년과 더불어 지난 30년(1991~2020년) 평균보다도 0.5℃ 높은, 지금까지의 기록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지난 주 연재에선 '역대급 온난화'가 진행 중인 지구와 그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와는 직선거리로만도 1만 3천km 가량 떨어진 기니의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엔 우리나라입니다. 우리의 7월은 어땠을까요. 기상청은 지난 7일, 〈2024년 7월 기후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7월 전국 평균기온은 26.2℃로 역대 5위를, 평균최저기온은 23.3℃로 역대 2위를 각각 기록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전국 단위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로 50년간 우리의 7월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살펴봤습니다. 1973~1977년, 평균 24.4℃였던 월 평균기온은 2020~2024년, 평균 25.2℃로 50년 사이 0.8℃ 상승했습니다. '지구가 과거 대비 몇℃ 뜨거워졌다'며 쏟아지는 뉴스는 해외의 일이 아닌 한반도의 일인 것입니다. 게다가, 지구 평균보다도 우리의 7월은 더 뜨거워졌고요.

7월의 기상자료를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온만이 아닙니다. 강수도 눈여겨 봐야 하죠. 2024년 7월, 전국 강수량은 383.6mm로 평년(296.5mm)을 가뿐히 넘어섰을뿐더러 역대 10위 수준이었습니다. 강수일수 또한 18.3일로 전년(17.7일)은 물론, 평년(14.8일)보다 길었습니다. 시간당 30mm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린 날도 전국 평균 1.3일로 2023년 7월(1.2일), 그리고 평년(0.7일)보다 긴 역대 4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저 올해 7월만의 예외적인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50년 전(1973~1977년) 평균 229.1mm였던 7월 강수량은 최근 5년(2020~2024년) 345mm로 크게 늘었습니다. 여름철 내내 쏟아지는 계절 통계로 보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1973~1977년 5개년 여름 평균 전국 강수량은 509.8mm였고, 2019~2023년 5개년 여름 평균 전국 강수량은 769.7mm를 기록했습니다. 50년 사이 여름철 강수량은 1.5배가 된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이처럼 여름철 강수가 증가하면서 그로 인한 산사태 우려도 커지게 됩니다. 서울연구원은 1997~2023년 국내 산사태 피해 현황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여름철 강수량이 많은 해일수록, 전국의 산사태 면적은 넓었습니다. 비가 많이 왔으니 산사태 또한 많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위의 그래프에서 산사태 피해 면적이 급증하는 경우를 보면, 단순히 많이 오는 것 이상의 조건이 눈에 띕니다. 바로, 전년보다 얼마나 더 많은 비가 왔느냐에 따라 피해 면적의 급증이 갈렸던 것이죠. 2002년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2001년, 전국 여름철 강수량은 586.5mm로 많지 않았습니다. 덩달아 산사태 피해 면적 역시 185ha로 크지 않았죠. 그런데, 이듬해인 2002년엔 여름철 강수량이 888.4mm로 51.5% 증가했습니다. 산사태 면적은 무려 2,705ha로, 위의 통계 기간 내에 가장 큰 면적이 기록됐습니다. 2003년 여름엔 2002년보다도 많은 991.2mm의 비가 내렸지만, 산사태 피해 면적은 1,330ha로 전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습니다. 2004년 여름엔 역대 최대 피해 면적이 기록된 2002년과 비슷한 869.7mm의 비가 왔음에도 산사태 면적은 불과 233ha에 그쳤고요. 중요한 점은, 강수의 변화폭이었던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산사태 피해 면적이 크면 당연히 복구비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눈여겨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1997~2023년 사이, 산사태 피해 면적이 가장 컸던 때는 2002년(2,705ha)이지만, 복구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던 때는 2020년(3,934억 6,300만원)이었습니다. 2020년의 산사태 면적은 1,343ha로 2002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복구비는 2002년의 2,993억 8,600만원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에 얼마나 많은 인구나 자본이 밀집되어있느냐에 따라 비용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입니다.

서울연구원은 “최근 10년(2014~2023년) 연평균 산사태 복구비는 762억원으로, 최근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다수 발생해 산사태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며 “서울은 산사태의 주요 원인인 강수량이 증가함은 물론, 국지성 강우현상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연구원은 또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의 강도와 국지성이 커지고 있다”며 “산사태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선 3~5km 수준의 촘촘한 강수 관측망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연구원이 강조한 부분은 비단 서울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름철 강수는 전국 평균으로 보더라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모든 지자체가 산사태를 비롯한 여름철 수재해에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죠.

이처럼 기후변화는 단순한 '날씨의 변화' 수준을 넘어,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고요. 앞으로 그 피해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은행은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평균기온이 과거 장기 평균 대비 일시적으로 한 달간 1℃ 올랐을 때,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최대 0.07%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일시적 기온상승이 소비자물가를 높이는 영향(상방압력)은 1년 이상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요.

특히, 기온 상승 충격은 근원물가보다 비근원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근원물가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변동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 부문을 제외한 다른 상품 또는 서비스의 가격을 의미합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통화량과 상관없이 물가가 변화하자, 외부적 요인의 영향이 큰 농산물 등 식료품이나 에너지 등의 품목을 비근원물가 품목으로 분류하고, 그 외의 품목을 근원물가로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받는 품목은 오일쇼크와 마찬가지로 비근원물가지수에 해당하는 품목들이었습니다. 근원물가의 경우, 일시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폭이 0.05%p 미만으로 제한적이었지만, 비근원물가의 경우, 최대 0.3%p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차례의 기온 상승이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1년 이상이나 됐고요. 기상 상황의 급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축수산물 외에도 가공식품, 석유류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들 또한 시차를 두고 가격이 유의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그렇다면, 기온이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1년간 지속적으로 1℃ 상승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온 상승의 충격이 발생하면서 점차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상승을 시작해 첫 충격 발생으로부터 1년 후엔 0.7%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근원물가의 주요 품목별로 그 영향을 살펴보면, 농산물의 경우 가격이 최대 2% 오르고, 가공식품은 0.4%, 석유류 또한 1.6%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기후변화 영향이 우리나라의 물가인상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한국은행은 미래 기온 상승 시나리오를 반영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장기영향을 따져봤습니다. 글로벌 중앙은행들과 감독기구들이 2017년 12월 설립한 NGFS(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 녹색금융협의체)의 기온 상승 예측치에 기반해 현재 정부가 도입된 정책 외에 추가적인 감축 노력이 더해지지 않은 '현 정책 수준' 시나리오부터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1.5℃ 이내로 억제하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그리고 2050년 탄소중립 달성과 더불어 에너지 절약 및 효율 증대로 에너지 수요가 크게 줄어든 '에너지 수요 급감 시나리오'를 각각 가정해 물가의 변동을 전망해본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그 결과, 2050년까지 국제사회가 탄소중립을 달성할 만큼 노력하는 경우에도 2040년 전체 소비자물가는 0.4% 이상, 농산물 가격은 0.8%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지금의 정책 수준이 이어질 경우, 그 상승폭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고요. 감축 노력이 지연되거나 추가적인 대책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농산물 가격은 1% 이상 오르고, 전체 소비자물가수준에 대한 영향 또한 대략 0.6%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한국은행은 “이와 더불어 글로벌 기후변화에 따른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간접 효과까지 감안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인플레이션 상방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과 그로 인한 국내 물가 영향은 이미 발생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해외에서 기후변화로 카카오, 커피, 올리브유 등의 생산이 감소하면서 가격은 급등했고, 이는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 가공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은행은 “해외 연구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곡물 등 세계 식량가격이 1% 상승하는 경우, 2년 후 유럽 지역의 소비자물가가 최대 0.08%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며 “국내 연구에서도 온난화로 해외 농산물 등의 수입가격이 10% 상승하면, 국내 산업별 생산품 가격이 3~9%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단기적인 물가상승 압력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국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이상기후가 잦아지면서 기후플레이션 문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중장기적 시계에서 국가적 차원의 계획성 있는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점차 달라지는 국내 기후환경에 적합한 농작물의 품종 개발,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가격 변동이 다른 품목으로 전이되면서 전반적인 물가 불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관리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그럼에도 우리는 즉각적이고도 대대적인 감축을 주저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에는 돈이 들고, 결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 결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대응을 안 한다고 해서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서 한국은행의 보고서 내용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매를 먼저 맞는 심정으로 착실히 감축을 해나간다면 어떨까요.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4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제시된 우리나라의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과 조기 감축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GDP의 영향을 따져봤습니다.

과거 연재에서도 전해드렸던 것처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지금 우리의 NDC는 그 숙제는 미래에 미뤄두었습니다. 이는 위의 좌측 그래프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2028년까지 연간 감축률은 5%가 채 되지 않죠. 그러다 2029년, 그리고 2030년 갑자기 감축량을 늘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입니다. 반면 조기 감축시나리오의 경우, 감축폭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갑니다. 초기엔 NDC 대비 감축 부담이 커보이지만, 이 또한 2028년을 기점으로 역전이 되죠.

그로 인한 경제 영향은 어떨까요. 현행 NDC에 따르면, 감축의 부담을 미룬 만큼 초반 GDP 성장률 악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28년부터 감축폭을 대폭 늘려야 하는 만큼, 온실가스 감축은 우리나라 GDP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2028년 ?0.1%였던 영향은 2029년 ?0.2%, 2030년엔 ?0.8%으로 커집니다. 조기 감축 시나리오의 경우, 2024~2028년 초기 5개년 ?0.1% 안팎의 악영향을 미치나 2029년부턴 도리어 GDP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NDC 시나리오의 경우, 초기 완만한 감축에 따라 화석연료 수요에 대한 제약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성 개선에 따른 편익이 수반돼 생산과 소비 등 주요 거시변수들의 증가율이 양(+)의 값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목표 연도인 2030년에 접근하면서 목표 감축량이 크게 증가해 에너지 수요 제약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생산성 개선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압도했다.

반면 조기 감축 시나리오의 경우, 감축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초반엔 감축에 따른 비용이 상대적으로 커졌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생산성 개선 효과가 누적돼 감축에 따른 편익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정책처는 이 연구 결과가 “지속적인 탄소감축 기술개발을 통해 에너지 효율적인 경제구조로 전환할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고,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생산성 개선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배출량 제한에 따른 부정적 효과를 넘어서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기후변화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 노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는지 답은 나왔습니다. 정답지와 해설서가 나왔고, 심지어 다른 나라가 먼저 걸어간 에너지전환의 길은 기출 족보처럼 역사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외길을 고집할까요. 언제쯤 갈라파고스를 넘어 세계적 흐름에 올라타 그 흐름을 이끌 수 있을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자연재해 넘어 기후플레이션으로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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