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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입력 2024-08-26 08:01 수정 2024-08-26 10:1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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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50)

지난해 전 세계 승용 전기차(BEV+PHEV) 판매량은 총 1,388만 7,816대에 달했습니다. 6년 전인 2017년 111만 3,479대의 12.5배에 달합니다. BNEF(Bloomberg New Energy Finance,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는 최근 공개한 〈Electric Vehicle Outlook 2024〉를 통해 전기차의 국가별, 종류별 판매 추이를 분석했습니다.

국가별로는 2023년 판매된 전기차의 58.85%는 중국에서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22.54%), 미국(10.52%), 캐나다(1.33%), 일본(1.01%), 대한민국(0.98%)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중국 한 나라에서 판매된 전기차의 수가 EU 회원국들과 미국, 캐나다,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전기차 수보다 훨씬 많았던 것입니다. 동남아 지역의 경우, 개별 국가 단위로는 그 수가 많지 않지만, 지역으로 묶었을 때엔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가운데 1.06%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종류별로는 BEV(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 전기차)가 69.6%, PHEV는 30.4%를 차지했습니다. 그래프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듯, 전기차 판매량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더욱 늘어났습니다. 팬데믹과 함께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됐음에도, 여기에 미중간의 무역 갈등 심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더해져 원자재 수급 불안과 가격 인상 등의 악재가 잇따랐음에도 2021년엔 전년 대비 배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2022년엔 전년 대비 1.6배, 2023년엔 전년 대비 1.3배 늘어나는 등 성장세를 거듭한 것입니다. 유독 국내에선 '전기차 판매량이 줄었다'는 보도와 유튜브 콘텐트가 쏟아졌던 것과는 상반된 통계입니다.

이는 '성장세 둔화'가 '절대량의 감소'로 잘못 풀이된 결과입니다. BNEF가 아닌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의 통계를 살펴보더라도, 최근 10년간 전기차의 연간 보급량은 전년 대비 줄어든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2017년 판매량의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판매 절대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BNEF는 “전체 내연기관 운행차량수는 2025년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며 “2027년 연간 판매량은 정점인 2017년보다 29%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BNEF는 2023년까지의 전기차 관련 통계에서 눈에 띄는 3가지 요소로 ①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귀환, ② 중국의 배터리 저가 공세, ③ 예상을 뛰어넘은 전기차의 연간 주행거리 등을 꼽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① PHEV의 귀환: 2019~2023년 5개년의 HEV(Hybrid Electric Vehicle, 일반 하이브리드), PHEV, 그리고 BEV의 판매 추이를 살펴봤을 때, HEV는 연평균 18% 성장한 반면, BEV는 연 평균 57%, PHEV는 연평균 65%씩 늘어났습니다. BNEF는 “최근 PHEV의 판매량 급증은 중국 시장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2022년까지만 해도 PHEV의 최대 시장은 유럽이었지만, BYD와 Li Auto 등에서 저렴한 PHEV 모델을 쏟아내며 중국이 이를 뛰어넘었다는 것이죠. 또한, 2023년 기준 전 세계 PHEV의 평균 전기 주행가능거리가 80km였던 반면, 일부 중국 기업의 PHEV가 100km 넘는 거리를 전기만으로 달릴 수 있었던 것 또한 중국의 PHEV 확산을 이끈 배경으로 꼽혔습니다. BNEF는 “이처럼 PHEV 시장의 귀환이 목격되곤 있으나 이것이 짧은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 PHEV가 전기차로의 전환 과정에서 보다 오랜 기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② 중국의 배터리 저가 공세: 전 세계 평균 LFP 배터리의 가격은 kWh당 95달러(2023년 기준)에 달했던 반면, 올해 중국의 LFP 배터리 평균 가격은 kWh당 53달러로 매우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BNEF는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셀의 과잉 생산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 현상은 중국에서 가장 심각해 가격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중국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중국의 배터리 생산량은 2026년까지 시장 수요의 7배 가까이나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중국 내에서 BEV 및 PHEV의 판매를 늘린다 하더라도, 자국 내 배터리 과잉 공급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는 것이 BNEF의 설명입니다. 보고서는 “낮은 배터리 가격은 수요 측면에선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전기차 공급망을 현지화하려는 중국 외의 국가나 비 중국 자동차 제조사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③ 예상을 뛰어넘은 전기차의 연간 주행거리: 자동차의 보급 확산을 살펴볼 수 있는 지표는 판매량이나 등록대수만 있지 않습니다. 실제 그 자동차들이 얼마나 많은 거리를 누볐냐를 살펴보는 것 또한 유의미한 지표입니다. 단순 호기심에, 혹은 세컨드를 넘어 서드카(Third Car)로 구매했다면, 실제 그 차량의 운행 빈도는 낮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BEV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습니다. 중국(66%), 네덜란드(56%), 노르웨이(40%), 스웨덴(15%), 캐나다(14%) 등에서 BEV는 전통 내연기관 대비 더 긴 연간 주행거리를 기록한 것입니다. 포드와 GM 등 자국산 내연기관과 더불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각축장인 미국의 경우, 전국 차원에선 BEV의 연간 주행거리가 내연기관 대비 38% 적었습니다만, 가장 선도적인 전환에 나서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만 한정에서 살펴볼 때엔, BEV의 연간 주행거리가 내연기관보다 8% 더 길었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는 표현하지 않았습니다만, PHEV와 전통 내연기관의 주행거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중국(14%), 네덜란드(48%), 노르웨이(42%), 스웨덴(34%), 캐나다(8%)에서 PHEV가 한 해 동안 달린 거리는 내연기관이 달린 거리보다 더 길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PHEV의 연간 주행거리는 내연기관 대비 불과 5% 적었을 뿐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만 따질 때엔, PHEV의 연간 주행거리가 내연기관보다 26% 많았고요.

이처럼 배터리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친환경차의 확산은 이미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굳건히 자리잡았습니다만, 국내에선 유독 '전기차 시기상조 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2024년 8월의 첫 날,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BEV인 EQE 350이 불에 타고, 주차장에 있던 140여대의 차량이 피해를 입은 대형 사고가 벌어진 이후부턴 '시기상조'를 넘어 모든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입차 금지 등이 거론되는 '포비아'로도 번졌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배터리에서 비롯된 화재의 경우, 기존 '유류 화재'에 해당하던 내연기관 자동차의 화재와는 종류도, 양상도, 진화 방법도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과 비교도 못 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 2021년 12월, 한국방재학회 논문집에는 내연기관과 BEV로 구동방식만 다른 동일 차량(레이)을 이용해 실제 화재를 발생시켜 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담겼습니다. 실험은 차량의 우측 뒷바퀴 쪽에 2리터 가량의 등유를 사용해 불을 붙여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차량을 태우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화재의 내부 전이는 탑승자의 안전을 좌우하는 '골든 타임'입니다. 가솔린차의 경우, 화재가 차량 내부로 옮겨 붙기까지 8분이 소요됐습니다. 전기차 버전의 레이는 15분이 걸렸습니다. 그 후 차량이 완전히 다 타버리기까진 두 차량 모두 공히 40분 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소방용수나 소화약제, 방수포 등이 쓰이지 않은, 말 그대로 '더 이상 탈 것이 남아나지 않아 불이 끝나는 순간'까지 걸린 시간은 구동방식과 상관 없이 비슷했던 것입니다. 화재로 인한 최고온도의 경우, 가솔린차는 외부 935.4℃, 내부 1,362.9℃가 기록됐습니다. 전기차는 외부 631℃, 내부 1,362℃의 온도가 기록됐고요.

다만, 실험 당시 전기차는 배터리를 100%로 완충했던 반면, 가솔린차엔 연료가 불과 3리터밖에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폭발 위험성이 높고, 안전 확보를 위하여 최소 연료계통의 연료만 채울 수 있는 양으로 실험을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레이의 연료탱크 용량은 38리터로, 만약 연료가 가득 담겼다면, 완전 연소까지 소요된 시간은 가솔린차의 경우가 더 길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연구진은 “휘발유의 영향으로 가솔린차의 화재 확신이 더 많이 일어나고, 높은 온도까지 상승했다”며 “전기차는 배터리의 일부 팩이 폭발 양상은 보였지만 가솔린차처럼 초반에 연소 확산이 일어나지는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측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전기차 화재는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2024년 6월,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집엔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이라는 제목의 실험 결과가 담겼습니다. 실험은 지하주차장과 동일한 조건으로 총 3칸의 주차선에 차량 3대를 두고, 가운데에 자리한 전기차의 화재가 인접 차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 실험 결과는 2024년 5월 17일, LH의 연구보고회에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총 4차례에 걸친 실험 가운데 1차 실험은 통상적인 지하주차장과 같은 상부 주수 스프링클러만 작동되는 상황에서 실험이 진행됐고, 2~4차 실험에선 상부와 하부 주수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켰습니다. 실험 결과, 상부 주수 스프링클러만으로도 전기차의 화재는 양 옆의 차량으로 번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접차량의 도장면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상부 주수 스프링클러와 하부 주수 스프링클러가 모두 작동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화재는 인접차량으로 번지지 않았습니다. 4차 실험에선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 바로 옆 차량의 도장면에도 손상이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상부 주수 스프링클러 설비를 고려한 실험 결과, 인접차량의 앞문 및 뒷문 온도는 80℃ 이하, 하부 온도는 38.1℃ 이하를 유지함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스프링클러로 인한 화재 확산 차단 효과는 실제 화재 사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지난 5월 8일, 전북 군산에서도 아파트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쉐보레 볼트EV) 화재가 발생했지만,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면서 화재는 45분 만에 진압됐었죠. 인천 청라의 EQE 화재의 경우에도,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이번과 같은 대규모 피해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부 주수 스프링클러의 중요성도 실험 결과 확인됐습니다. 위에서 물을 뿌리는 일반적인 스프링클러에 더해 하부 쪽으로도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가 함께 작동했을 때엔 인접차량의 측면 및 하부 온도가 30℃ 이하로 유지됐던 것입니다. 또한, 배터리의 열폭주 또한 50% 가량으로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한편,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EQE 차량의 경우, 당초 제조사가 홍보했던 것과 다른,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제조사가 생산한 배터리가 장착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자동차 제조사들의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잇따랐죠. 리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K-배터리를 사용한 기업에겐 찬사가, 중국 제조사의 배터리를 사용한 기업에겐 야유가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이 차는 불이 안 난다'거나 '이 차는 화재 위험이 크다'고 구분지을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간 '영업 비밀'이라는 이름 하에 비공개로 감춰졌던 배터리 제조사를 누구나 알게 되고, 향후 문제 발생시에 책임 소재를 보다 명확히 하는 데엔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말이죠.

이번 EQE의 화재,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들이 공개한 배터리 제조사 리스트를 통해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전기차로의 전환 과정에서 핵심 기술의 주도권에 혼돈기가 찾아왔다는 것이죠. 자동차 제조기업들이 전기차의 주요 원천기술에 갖는 기술 주도권이 미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인 셈입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내연기관의 역사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독자적인 엔진을 스스로 설계하고, 동력계통 전반의 원천 기술을 보유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협력사들은 자동차 제조사가 제시한 설계도에 기반해 생산을 대리해왔었고요. 그러나 전기차로의 전환 과정에서, 협력사는 더 이상 OEM을 맡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 배터리나 모터의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자동차 제조사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춰 조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동차의 핵심 원천기술의 주도권이 제조사가 아닌 협력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내연기관 체제에서와 같이 제조사가 최종적인 QC(Quality Control, 품질 관리)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신뢰도는 이전과 같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기차 개발을 이끄는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 부사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전성과 향후 품질에 대한 보증은 모두 벤츠가 담당하기에 배터리 셀 공급업체에 대해 소비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던 발언은 어찌보면 내연기관 체제 하에서나 가능했던 '호언장담'이었던 것이죠. 최초 R&D 과정부터 설계, 샘플의 생산 등 전과정을 자동차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내연기관 동력계통의 QC를 하는 것과 남의 원천기술로 생산돼 납품받은 배터리 및 모터의 QC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전환의 과정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표준과 기준, 법률 등의 제정 및 관리입니다. 이미 소비자가 100%로 충전한다 한들, 실제 배터리 용량의 100%를 채우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배터리 충전량을 90%로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지자체 발로 나오고,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BEV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입니다. 배터리 충전률이 걱정이라면, 계기판에 보여지는 숫자가 아닌, 실제 배터리의 총 용량에 기반한 관리가 이뤄져야 하고, 리튬이온배터리 등 이차전지가 걱정이라면, BEV뿐 아니라 대대적으로 판매된 PHEV, MHEV(Mild Hybrid Electric Vehicle, 마일드 하이브리드), 그리고 일반적인 HEV 차량까지 모두가 입차 금지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도 말이죠. 그저 감정에 치우친, 비과학적 대책을 내놓는 것은 실제 위험을 줄이기보다는 혐오와 공포만을 부추길 뿐입니다.

정부는 자동차 제조사들로 하여금 QC의 전문성뿐 아니라 책임 또한 더욱 키울 수 있도록 관련 법규나 지원책을 마련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현재 주차장에 설치된 소방 설비가 제대로 제 기능을 하는지, 혹은 충전 설비가 충전 완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전기차에 전력을 공급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전수 조사에 나서는 것이 일차적인 근본 대책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번 EQE의 사례를 계기로 정부는 향후 전기차로의 전환에 맞춰 우리는 제도와 법규, 기준, 표준, 인프라,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변화에 나서야 합니다. 충전 케이블의 연결 안전성이나 혹시나 모를 화재 위험에 대비해 주차선의 최소 폭 또한 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급 내연기관 대비 수백kg 무거운 전기차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만큼, 주차타워나 교량 등 인프라 설계시 가정하는 차량의 중량 계산 기준 또한 달라져야 합니다. 충돌시험 등 안전 기준 역시, 전기차 시대에 맞춰 개정 또는 개편이 뒤따라야 합니다. 충전 인프라의 양적 확장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질적 향상 또한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고요. 전기차로의 전환은 그저 엔진과 연료탱크가 모터와 배터리로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와 영향을 갖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BNEF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당장 올해, BEV 판매량이 1천만대를 돌파하고, 내년엔 BEV와 PHEV만으로도 2천만대 넘는 자동차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7년엔 이들 전기차의 판매량이 3천만대를 넘어서고요. 우리 기업의 이차전지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전기차 제조 기술이 뛰어나다고 안주할 일이 아닙니다. 당장 이차전지와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의 탄소배출계수도 높고,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그린스틸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엉뚱한 대책, 시민사회에서의 비과학적 포비아가 잇따른다면, 이차전지와 전기차에서 지금 우리가 쥐고 있는 주도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마치,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행됐던 '적기 조례'처럼 말이죠.

19세기 중반, 영국에선 '보행자 및 마차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이 조례가 시행됐습니다. 당시 자동차는 지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증기기관 자동차가 주류였습니다. 이 차를 운행하려면,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차량에 앞서 걸어가야만 했죠. 속도 또한 시속 2~4마일(시속 3.2~6.4km)로 제한됐습니다. 자동차의 의미 자체를 지우는 조치인 셈입니다. 이 조례는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독일 및 프랑스에 크게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졌고요. 오늘날 이 조례는 명문화한 목적과 달리, 실제론 마차와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자동차의 확산을 막기 위한 법률로 '나쁜 사례'의 대명사처럼 불리곤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유무형의 '전환의 기반'을 만들고, 전기차 전환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전기차 캐즘, 포비아, 그리고 적기조례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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