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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끓는 지구, 그 와중에 화두가 된 가스전

입력 2024-06-17 08:00 수정 2024-06-17 11:0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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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0)

지구촌 곳곳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습니다. 전 지구 일평균 기온을 나타낸 지도는 검붉게 물들었고, 곳곳에선 역대급 고온 기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 지구 일평균 기온의 추이를 보면, 2024년은 1월 1일부터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24년 2월과 4월은 전국 평균기온은 각각 4.1℃, 14.9℃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기온의 상승세는 다행히 6월에 접어들면서 한풀 꺾인 모습이나, 아직 제대로 찾아오지 않은 한여름의 상황과 올겨울의 모습 등 하반기 상황에 따라 2년 연속으로 기록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당장 미국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국립해양대기청)의 NCEI(National Centers for Environmental Information, 국립환경정보센터)는 올해가 '역대 5위권'에 들 만큼 더울뿐더러, 지난해의 역대 최고기온 기록을 깰 확률이 61%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우리도 긴장의 끈을 놓기 이릅니다. 올해 '생각보다 왜 이렇게 일찍 더워졌지?'라고 느껴진 것과 달리 5월 전국 폭염일수는 0일로 2014년(5월 1위, 1.1일), 2019년(5월 2위, 0.5일)에 못 미치지만 5월에 폭염일수가 0일이었던 것은 '역대 최장 폭염일수'가 기록된 2018년(연간 31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끓는 지구, 그 와중에 화두가 된 가스전
문제는, 더위도 더위인데 물난리도 걱정스럽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시작된 엘니뇨의 영향으로 전 지구 해수온은 연초부터 역대급 고온 상태를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엘니뇨가 점차 쇠퇴함에 따라 해수온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역대 최고' 기록인 2023년 수준과 비슷한 상황이고, 설령 엘니뇨의 쇠퇴를 넘어 라니냐에 접어든다 하더라도 예년 수준과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고온인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즉, 비구름이든, 강력한 태풍이든 바다가 품고 있는 에너지가 만들어 낼 불확실성에 우리 모두가 노출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기상청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의 기상 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점차 라니냐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선 엘니뇨보다 라니냐가 더욱 달갑지 않은 존재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 일대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던 2022년, 그리고 전국적으로 수십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2020년 집중호우 때 모두 라니냐 시기였습니다. 물론, 한반도 기상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적도 부근의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인 Nino 3.4 지역의 해수온만이 아닙니다. 북극 진동과 해빙 면적의 변화 등 주변의 상황도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점은, 올해도, 앞으로도 불확실성의 증대로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재해 대비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인간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 지구적인 온난화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있죠. 아직도 여전히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는 증가하고 있고, 직접적인 배출량 또한 전 세계적으로 증가세가 줄어들긴 했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이런 노력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돈의 흐름'입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세계에너지기구)는 최근 〈World Energy Investment 2024〉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IEA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에너지 부문에 있어 어디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끓는 지구, 그 와중에 화두가 된 가스전
최근 10년간 전 세계 에너지 분야의 투자 추이를 보면, 분명한 흐름이 보입니다. 화석연료 투자의 감소와 무탄소 에너지 투자의 증가라는 흐름 말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위기와 더불어 엔데믹 효과에 따른 에너지 수요의 증가까지 더해져 전체 에너지 투자 규모 자체가 최근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위의 그래프를 두고 '화석연료로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일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전 세계가 공동의 대응을 약속한 2015년 이래로 에너지 분야의 투자는 감축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젠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및 에너지 저장 분야의 투자 규모가 완전히 화석연료 분야 투자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2024년, 화석연료 투자 규모는 1조 1,160억달러(추정치)로 2015년 대비 약 18.8%(2,580억달러) 줄었습니다. 반면, 감축을 위한 투자는 늘어납니다.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는 7,710억달러로 2015년의 2.2배가 되고, 효율 및 최종 사용 분야엔 6,690억달러, 전력망 및 저장 분야에도 4,520억달러, 원자력 등 무탄소 전원엔 800억달러, 그리고 저탄소 연료엔 310억달러가 투입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끓는 지구, 그 와중에 화두가 된 가스전
세계 금융의 흐름이 에너지 부문의 어떤 분야로 흘러가는지를 보고, 우리도 이를 참고해 '돈이 모이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엔 재생에너지든, 원자력이든, 전력망이든,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투자를 대폭 늘리려는 노력이 시급한 2024년인데, 대규모의 투자가 필수적인 유전 및 가스전 탐사에 갑작스레 정부의 눈과 귀와 머리와 지갑이 집중되려는 모습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2030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도, 2050년 탄소중립도 달성이 요원해 보이는 오늘인데, NDC도, 넷제로도 특정 부처만의 '자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범정부, 국가 차원의 목표인데 말이죠. 또한, 쉘, BP, 토탈에너지 등 전통의 Oil & Gas 기반 기업조차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누구의 돈으로 탐사가 진행될지, 믿을 만한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을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탐사의 리스크가 얼마나 될지… 온실가스 배출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사업성 측면에서의 우려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2017~2024년 사이, 중동 및 아시아 지역의 국영기업을 제외하고는 업스트림(원유 및 가스 생산) 부문의 투자를 줄여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로벌 민영기업의 투자는 이 기간 240억달러 감소했고, 위 두 지역을 제외한 국영기업들의 투자는 290억달러 감소했죠.

글로벌 에너지전환의 흐름이 '태우던 과거'에서 '태우지 않는 미래'로 나아가는 가운데 투자의 흐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나 원자력과 같은 무탄소 에너지원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효율 및 최종사용 분야에도 재생에너지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질적인 돈의 흐름인 만큼, 이는 즉각적인 결과로도 나타납니다. 당장 선진국들의 에너지 효율 관련 지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산업부문, 그중에서도 에너지가 집약돼 탄소배출 집약도 또한 높은 제조업에서도 효율 개선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끓는 지구, 그 와중에 화두가 된 가스전
각 나라의 산업이 같은 금액의 돈을 벌기 위해 사용한 에너지의 양을 따져봤을 때, 미국의 제조업은 2000년 8.91MJ에서 2021년 4.52J로, 한국의 제조업은 8.36GJ에서4.38GJ로, 일본은 6.25GJ에서3.79GJ로, 독일은 4.24GJ에서3.08GJ로 더 적은 에너지를 투입했습니다. 에너지를 덜 쓰고도 같은 액수의 돈을 벌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이 이뤄진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그 양이 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투입된 대부분의 에너지가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라는 점에선 '과연 산유국과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 집약도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이 짙게 남습니다. 게다가 미국과의 제조업 분야 에너지 집약도 격차는 2000년 0.55GJ에서 2021년 0.14GJ로 좁혀졌습니다. 같은 금액을 벌기 위해 같은 양의 에너지를, 그것도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것은 '화석연료 수입국' 입장에선 '산유국 대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굳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따지지 않더라도 말이죠.

서비스업의 에너지 집약도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의 에너지 집약도는 2000년 1.23MJ에서 2021년 0.68MJ로 44.7%의 감축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산유국인 미국은 같은 금액을 버는 데에 0.55MJ(2021년 기준)의 에너지만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0.46MJ로 더 적고, 독일의 경우 039MJ로 우리나라의 57.4% 수준입니다. 이쯤 되니 철강 기업 등 일부 에너지 다소비,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이처럼 다른 선진국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고 있다는 것은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 정부의 에너지 수급 정책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정책적으로 산업계 전반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제대로 유도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거용 건물에 투입되는 에너지도 아쉽습니다. 상대적으로 아파트 중심의 거주문화를 갖고 있고,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축물이 주를 이루는 등 효율 측면의 이점이 있음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 단독, 목조 구조의 건축물 중심인 미국보다도 에너지 집약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래프에 담진 않았습니다만, 2021년 기준 승용 수송부문의 에너지 집약도 또한 우리나라는 2.12MJ/pkm으로 산유국인 미국(1.83MJ/pkm)은 물론, 1.64MJ/pkm의 독일, 1.4MJ/pkm의 일본보다도 높습니다. 산업계뿐 아니라 시민 개개인을 대상으로 한 수요 감축이나 효율 개선 등이 부족했던 셈입니다.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에너지의 특성상 '잘못된 가격 설정'과 '가격 신호의 실패'로 풀이될 수밖에 없는 숫자들입니다.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 온 국가에서 이렇게 같은 일을 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했는데, 그럼에도 소위 '성장'을 기록해왔다는 것은 그 국가의 국민 입장에선 다행이기도 하지만 모순이기도 합니다. 당장 개인이나 개별 기업의 입장에선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에서 이런 모순에 따른 부담을 대신 지고 있거나, 추후 누적된 모순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메랑은 그간의 부담을 짊어지던 기관이나 기업의 부도가 될 수도, 2030년 NDC의 실패를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탄소 예산의 조기 소진이 될 수도, 물가나 원가의 전년 대비 인상률이 반영된 수준을 넘어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에너지 관련 비용의 인상이 될 수도, 저렴하고도 청정한 에너지의 확보가 쉬운 해외로의 탈출 러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바다에서 발견됐다는 유전과 가스전이 국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는 것보다 에너지 수급 전반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끓는 지구, 그 와중에 화두가 된 가스전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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