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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입력 2024-06-24 08:00 수정 2024-06-24 11:0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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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1)

동해의 가스전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에너지전환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압박은 바닷속에 있을 확률이 20%라는 석유나 가스로 벗어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는 탈화석연료 압박, 즉, 무탄소 에너지, 그 중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압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16.9%가 RE100에 대한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무역협회가 2022년 이후 100만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보유한 기업 6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3곳이 고객사 등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넘어 RE100의 요구를 받았다고 답한 것입니다.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정책이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무역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전체 610개 기업 가운데 RE100을 인식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 276곳 중 32.6%는 자사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RE100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전기요금 등 에너지 비용의 절감(27.2%), 바이어 등 고객사의 요구(19.2%), 마케팅 및 홍보(10.9%) 등이 뒤이어 RE100에 관심을 갖게 된 주 목적으로 꼽혔습니다. '제1 목적'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이라는 응답이지만, 이 '지속가능'엔 앞으로의 지속적인 수출 혹은 고객사와의 관계 유지 등도 포함됩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RE100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기업은 610곳 중 16.9%였지만, 결국 RE100을 인식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37% 가량이 “그렇다”고 답한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RE100을 요구받은 기업 103곳은 단순히 RE100 가입을 넘어, 달성 시점에 대한 압박 또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무역협회는 이들 기업에 달성 시점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전체 103곳 중 달성 시점까지 요구받은 기업은 총 55곳으로, 이 중 3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최소 2040년 이전까지 RE100을 달성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역협회는 “2024~2025년부터 당장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압박받고 있어 기업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용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 관련 정보도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관련 데이터의 제출을 요구받는다고 응답한 기업은 44.7%에 달했습니다. RE100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기업의 입장에선 Scope 2 배출량의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보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업종별로는 플라스틱(33.3%)과 섬유 및 패션(30.2%) 업종에서의 압박이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석유화학 기업의 17.9%, 전기 및 전자 기업의 17.4%, 금속(철강) 기업의 16.1%,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기업의 12.9%가 RE100을 요구받았다고 응답했는데, 이들 기업의 생산 품목들은 공히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상품이기도 합니다. 재생에너지의 확보가 우리나라의 무역수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그렇다면, 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RE100을 이행하고 있을까요. 대기업의 경우 녹색프리미엄(26.3%), 자가발전(21.1%), 직접 PPA(15.8%), 지분투자(5.3%), REC 구매(3.6%) 순으로 재생에너지 조달을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실제로 현재 이행 중인 수단과도 동일한 순서로, 필요한 전력량 자체가 많은 만큼, 시장이나 계약을 통한 안정적인 공급에 방점을 둔 답변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면,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자가발전의 비중은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역협회는 “비교적 다양한 설치지원 사업 등으로 중소기업들이 태양광 발전설비에 대한 친밀감이 높고, 다른 수단 대비 상대적으로 도입이 쉬운 것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탄소배출권으로도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가발전을 선호한다고 답한 기업도 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가 더딘 만큼 이들의 애로사항 또한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역협회는 “수출제조기업들이 RE100을 이행할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은 '비용부담'으로 조사됐다”며 “각종 규제와 제도, 정책의 불확실성과 인센티브 및 지원의 부족도 애로로 작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 규모에 따라 가장 큰 애로사항엔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기업은 52.6%(1, 2순위 합산 기준)가 '각종 규제와 제도, 정책의 불확실성'을 가장 큰 애로로 꼽았고, 중견기업의 경우 1순위만으로도 50%가 '비용 부담'을 꼽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어떤 대응을 고려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그나마 존재하는 RE100 이행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제일 우선적인 RE100 대응 방안일 것입니다. 일부는 RE100을 요구하는 고객사가 아닌 다른 거래처를 물색하는 것으로도 드러났습니다.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 유일하게 '재생에너지 요구 기업과의 거래 중단'까지도 대응 방안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답변이 있습니다. 바로 “재생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지역으로 사업장을 이전한다”는 대응입니다.

사업장 이전을 RE100 대응 방안으로 꼽은 것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모두에서 나왔습니다. 전체 610개 응답 기업 가운데 46곳이 이를 '대응 카드'로 꼽은 것인데, 그렇다면 어디로 이전할지 가장 유력한 지역이었을까요. 응답은 동남아(52.2%), 미국(19.6%), 중국(10.9%), 인도(8.7%), 호주(2.2%) 순이었습니다. 동남아 지역은 재생에너지 가격의 저렴함뿐 아니라 낮은 인건비와 토지 임대 비용 등의 장점까지 겸비한 곳입니다. 중국, 인도 등의 경우 비용 절감과 더불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그 나라에 형성되어 있는 만큼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의 주요 수출국이자 해외 기업 유치와 자국 내 재생에너지 확산에 모두 적극적인 나라입니다. 자국 내 생산품,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사용 그 자체에 대한 인센티브까지 있는 만큼, 실제 국내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시설을 신축 또는 증설하고 있죠. 불투명한 한국의 재생에너지 확산 정책이 기업의 대외 경쟁력 감소나 수출액의 감소를 넘어, 국부와 일자리의 유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선 230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부문 감축, 시작은 에너지전환부터〉에서 국내 주요 RE100 가입 기업의 국내외 사업장별 재생에너지 사용 현황에 대해 정리해드린 바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해외 사업장에서 100% 재생전력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해외 사업장에서의 RE100 이행률이 97%에 달합니다. 사업장의 이전과 그에 따른 온갖 나비효과에 대한 우려를 그저 신소리로 넘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 31곳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60TWh를 크게 상회합니다. 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9.3TWh로, 31곳의 전력수요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최근 공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목표에 따르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138.4TWh까지 늘린다고는 하지만, 이때까지 계속해서 늘어날 이들 31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과 향후 추가될 RE100 가입 기업 수, 국내에 사업장을 둔 RE100 가입 해외 기업, RE100에 가입하진 않았지만 고객사의 요구로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중견·중소기업 등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제조 수출기업의 RE100 대응 실태와 과제〉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장현숙 그린전환팀 수석연구위원은 “이미 16.9%의 수출기업이 바이어나 공급망 원청업체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을 받고 있으며, 특히 단기간 내에 RE100 달성을 요구받고 있는 사례가 많아 대응이 시급하다”며 “각국의 탄소배출량 감축 관련 규제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및 투자기관이 RE100 등 기업의 탄소배출 저감 노력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으며 공급망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내 RE100 가입 기업들은 전력 다소비 기반의 제조업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전력소비량이 크다”며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높고, 전력 비중이 낮아 기업들의 수급 여건이 불리한 상황으로, 정부와 수출기업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경우, 재생에너지 보급과 인프라 확충의 가속뿐 아니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RE100 교육과 컨설팅, 금융지원 확대 등을 통해 기업의 대응에 따른 어려움을 시급히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전체 설문 대상인 기업 610곳 가운데 54.8%가 RE100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대기업의 경우, 전체 62.5%가 인지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중견기업(49.6%), 중소기업(39.2%) 등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RE100에 대한 인지도는 낮게 나타났습니다. 기업 규모가 작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가 늦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중견 및 중소기업의 경우, 절반 이상이 RE100 관련 정보 습득 경로를 묻는 질문에 '정보수집 안 함(중견 50.8%, 중소 51%)'이라고 답해 정보 제공에 대한 시급성 또한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의 투자전략 및 경영과정에 가장 큰 위험은 '불확실성'으로, RE100 대응에 있어 정부의 일관된 재생에너지 공급 정책 기조가 중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또, 기업들 또한 단기적인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시장점유율 향상, 이미지 제고 등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구매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정부의 지원사업뿐 아니라, 지자체 차원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인 〈경기RE100〉을 추진중인 경기도의 재생에너지 지원 사업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국산 화석연료'에 대한 정부의 기대가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는 기업들이 언급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IEEFA(Institute for Energy Economics and Financial Analysis,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는 “한국의 동해 가스전 개발이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이 사업 자체가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IEEFA의 김채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천연가스의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LNG에 대한 에너지원으로서의 신뢰성과 경제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더욱 높이는 것보다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나서는 것이 국가의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성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이는 화석연료 사용의 급격한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력수급기본계획과도 상충합니다. 지난 5월 31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실무안엔 2038년 가스화력발전의 발전량을 78.1TWh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는 2023년 가스화력발전 총량인 160.4TWh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입니다. 올해 안에 확정될 전기본에 아직 그 존재조차 확실치 않은 천연가스를 반영해 가스화력발전의 비중을 높이는 일은 전력을 생산하는 기업에게도, 청정전력을 소비해야만 하는 기업에게도, 모두 불확실성만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부를 것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앞서 지난 4월, IEEFA는 〈Global LNG Outlook 2024-2028〉 보고서에서 유럽과 일본, 한국 등 주요 LNG 수입국가의 수요가 줄어들고, 글로벌 LNG 공급량이 2028년까지 40% 증가하면서 공급과잉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본 바 있습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 카타르의 천연가스 증산으로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에 2026년부터 초과공급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곧 천연가스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동해 가스전의 사업성 악화로도 이어집니다. '화석연료 수입국'인 상황에선 호재가 될 수 있는 가격 하락 전망이 '산유국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상황에선 악재인 셈입니다.

IEEFA는 한국의 시추 결정에 대해 “성공률이 낮고, 검증되지 않은 고위험의 가스 탐사에 납세자의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상당한 좌초자산의 위험을 초래한다”며 탐사 단계에서의 성공 확률과 실제 상용화가 이뤄지는 비율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지난 2016년 ASEG(Australian Society of Exploration Geophysicists, 호주물리탐사학회) 학회지에 게재된 〈탐사 성공 확률 예측: 통계적 개념과 현실(Exploration Chance of Success Predictions: Statistical Concepts and Realities)〉에서 연구자는 리치몬드 에너지 파트너스가 실제 2009~2013년 사이 전 세계 40개 기업이 실시한 탐사 및 시추 작업의 성공률 분석 결과를 담았습니다.

평균 11%로 낮은 가능성이 제기됐던 사례(시추 전 성공률 예측 20% 미만 사례)에선 실제 4%만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평균 26%의 가능성이 제기됐던 케이스(시추 전 성공률 20~33% 사례)에선 실제 26%의 상업적 성공률을 기록했고, 평균 44%의 시추 전 성공률 예측 사례(성공률 범위 34~50% 사이)의 경우, 실제 39%만이 상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연구자는 “표본이 많은 사업의 경우, 시추 전후 예측의 차이가 5~7% 사이를 보였다”며 “샘플이 충분치 않은 경우, 예측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통계로는 실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확률이 액트지오 측이 제시한 가능성 20%보다 낮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액트지오 측이 제시한 가능성 20%와 우리 기업이 제기한 '한국 이탈 가능성' 7.5%(중소기업 9.5%, 중견기업 5.7%, 대기업 5%) 가운데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까요. 시추에도, 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의 확충에도 모두 충분한 재원을 투입할 만큼 나라 곳간에 여유가 있다면야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 질문입니다. 문제는 돈도, 시간도, 우리에게 남은 탄소 예산도… 어느 것 하나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출기업 7.5% “RE100 대응하려 해외로 옮길 수도”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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