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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입력 2024-06-10 08:01 수정 2024-06-10 09:54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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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39)

우리나라의 15년간 전력수요를 전망하고, 이에 따른 전력설비 확충을 위해 2년마다 세우는 계획이 있습니다. 바로, 전력수급기본계획입니다. 2002년 제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차례의 계획이 나왔고, 지난 5월 3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실무안이 공개됐습니다.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계획으로, 이번 실무안은 전문가위원회(총괄위원장 정동욱 중앙대학교 교수)가 마련한 안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략환경 및 기후변화영향평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이 만들어집니다. 2038년까지 우리나라의 전력수급을 책임질 계획의 밑바탕이 될 이번 실무안은 10차(2022~2036년) 계획과 어떤 차이를 보였을까요.

우선, 전문가위원회가 예측한 수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경제성장과 날로 더워지는 여름, 갑작스런 이상 한파의 겨울, 산업구조와 인구구조의 변화 등은 모두 전력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이를 반영한 모델 예측으로 위원회는 그 수요가 128.9GW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최대 수요(98.3GW)보다 30.6GW나 늘어난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변화에 기반한 모델 예측에 더해, 전문가위원회는 향후 에너지 사용이 급증할 수 있는 요인들을 추가로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의 조성, 데이터센터 및 AI의 확산 등 추가로 16.7GW의 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이러한 수요 급증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비효율적인 만큼, 전문가들은 수요관리를 통해 16.3GW의 수요를 줄여낼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수요와 그에 따른 적절한 예비율 등을 반영한 11차 전기본실무안의 2038년 목표수요는 129.3GW였습니다. 이는 10차 전기본의 2036년 목표수요인 118GW보다 11.3GW 높은 수준으로, 당시 예상한 연평균 증가율(1.5%)을 반영하더라도 더 큰 수치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럼 이 수요를 어떤 발전원으로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이번엔 발전믹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11차 전기본에서 전문가위원회는 2030년 원자력 204.2TWh(31.8%), LNG 160.8TWh(25.1%), 신재생 138.4TWh(21.6%), 석탄 122.5TWh(19.7%) 등 총 641.4TWh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총 발전량 621.8TWh의 10차 전기본 대비 3.2% 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실무안은 10차 전기본 대비 원자력과 신재생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원자력 발전량은 10차 대비 2.5TWh, 신재생 발전량은 4.3TWh 더 높게 목표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전력의 탈탄소화' 효과는 크지 못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전체 발전량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차 42.6%, 11차 42.5%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석탄과 LNG의 비중에서 차이를 보이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량 측면에선 일부 감소가 있겠지만, 전체 화석연료 발전량이 10차 때의 264.9TWh에서 272.7TWh로 늘어난 만큼 그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10차 전기본과 11차 실무안의 마지막 계획연도 목표에서도 소폭의 차이가 있습니다. 10차 전기본은 마지막 계획연도인 2036년, 원자력 230.7TWh(34.6%), 신재생 204.4TWh(30.6%), 석탄 95.9TWh(14.4%), LNG 62.3TWh(9.3%), 수소 및 암모니아 47.4TWh(7.1%)의 발전량을 목표로 했습니다. 전체 발전량에서 무탄소 발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2.3%에 달합니다. 11차 실무안의 경우, 마지막 계획연도인 2038년, 원자력 249.7TWh(35.6%), 신재생 230.8TWh(32.9%), 수소 및 암모니아 38.5TWh(5.5%)로 무탄소 비중 74%를 목표로 했습니다. 10차 대비 원자력 및 신재생 발전량 목표가 크게 늘었고, 수소 및 암모니아의 경우 10차 때보다도 더 줄었습니다. 이는 수소 발전의 현실적인 상용화 시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실무안에는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기간 동안 대략적인 신규 발전설비의 투입 계획도 담겼습니다. 이미 확정된 설비와 설비들의 예비율을 감안했을 때, 2031년부터 발전 설비의 부족이 예상된다는 것이 전문가위원회의 판단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2038년까지 총 10.6GW 규모의 설비가 필요한데, 위원회는 가장 먼저 이 부족분을 메울 설비로 LNG를 꼽았습니다. 2031~2032년, 2.5GW 규모의 신규 발전설비가 건설을 마치고 가동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탄소 발전원으로 이를 채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전문가위원회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안팎의 시간이 흐른 2033~2034년에도 대규모 무탄소 발전원의 진입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봤습니다. 이에, 해당 시점에 신규로 추가되어야 할 1.5GW 규모의 발전설비를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해선 2년 후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결정해야 할 숙제로 남겨놨습니다. 2035~2036년 사이 추가로 필요한 2.2GW의 발전설비의 경우, 대부분인 1.5GW 규모는 무탄소입찰시장을 통해 시장 경쟁에 따라 결정된 발전원이 맡고, 나머지 0.7GW는 현재 개발중인SMR의 몫으로 남겨놨습니다. 부지확보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167개월(13년 11개월)의 긴 리드 타임을 소요하는 대형원전의 경우, 2037년 이후부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위원회는 내다봤습니다.

발전량을 기준으로 한 계획을 살펴보면, 신재생은 2023년 현재 기준 발전량인 49.3TWh의 4.7배에 달하는 230.8TWh의 전력을 생산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전문가위원회가 제시한 '기간별 부족설비 물량에 대한 투입설비 안'에서 구체적으로 그 종류가 명시된 발전원은 LNG와 원자력뿐이었습니다. 위원회가 이야기한 '무탄소입찰시장' 등이 모두 신재생의 몫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국내외 기업은 발전설비를 생산 및 설치하는 전력의 공급자로서나, 대량의 전기를 소비하는 수요자로서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경영 활동을 계획하고, 사업 전략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번 실무안이 이들에게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지 못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입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에너지 시장 조사기관인 블룸버그NEF(BNEF)는 우리 정부의 11차 전기본실무안 발표 열흘 전인 지난 5월 21일, 신에너지전망 2024(New Energy Outlook 2024)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엔 2000년부터 현재(2022년)까지의 현황과 2050년까지의 전망이 담겼습니다. BNEF는 전적으로 시장의 선택에 의해 에너지전환이 일어나는 시나리오인 ETS(Economic Transition Scenario)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나리오인 NZS(Net Zero Scenario)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봤습니다. ETS의 경우, 2050년 전체 배출량은 27% 감소에 그치고, 그 결과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은 2.6℃를 기록하게 됩니다. NZS의 경우, 2050년 탄소중립은 달성하나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은 1.75℃로 '1.5℃ 목표'를 상회하게 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1.5℃ 목표 달성에는 못 미치더라도, 최소한 2℃ 선을 넘지 않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BNEF의 분석에 따르면, 무탄소 발전원의 대대적인 확대가 필수적입니다. 이는 나름의 에너지전환을 상정한 경제전환시나리오와는 전체 전력 수요부터 발전원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변화를 의미합니다. 2050년 기준, 전체 발전량은 48,680TWh의 ETS와 달리 NZS 하에선 무려 86,670TWh로 늘어나야 합니다. 단순히 발전원의 무탄소화를 넘어, 지금까지 화석연료가 쓰이던 온갖 장비들이 모두 전기화되는, 문자 그대로의 '에너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 와중에 전기의 탈탄소화 또한 병행해야 하는 만큼, ETS와 NZS 두 시나리오 상에 제시된 태양광과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발전량의 차이 또한 극명합니다.

심지어, 이런 변화의 시작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늘려야 하는 것이죠. 당장 내년, 전 세계 발전량의 20.5%가 태양광(2,703TWh)과 풍력(2,575TWh)에서 비롯되고, 2030년엔 태양광(9,283TWh)과 풍력(7,733TWh)만으로 전체 전력의 42.6%를 공급해야 합니다. 바이오에너지(906TWh)와 기타 재생에너지(5,253TWh), 원자력(4,286TWh)까지 포함하면,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은 68.8%에 달합니다. 2050년 태양광(25,413TWh)과 풍력(38,027TWh)만으로 전체 전력 생산량의 73.2%를 공급하고, 원자력 또한 '발전비중' 측면에선 9.4%에 불과하지만, 2022년 2,630TWh의 전기를 생산했던 것을 넘어 2050년엔 8,146TWh로 그 양이 3.1배가 되어야 하죠. 넷제로시나리오 하에서의 2050년 무탄소 발전원의 발전비중은 91.1%. 사실상 거의 모든 전기가 무탄소 발전원에서 생산되며, 나머지 발전원 또한 필수적으로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이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연재에서도 '현실로 자리잡은 재생에너지의 확산세'를 자세히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확산 속도는 이미 그간 인류의 발전사(發電史)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를뿐더러, 그러한 확산세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이죠. 글로벌 에너지전환에 있어 재생에너지의 확산이 '원자력발전의 퇴보'나 '원자력발전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라고 설명드렸습니다. 확산의 속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재생에너지와 달리, 예년의 확산세를 이어갈 뿐이라고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때문에, 비단 BNEF뿐 아니라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도, IRENA(Internatoinal Renewable Energy Agency, 국제재생에너지기구)도,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국제원자력기구)도 모두 이러한 미래 발전믹스 전망에 있어 큰 이견은 없습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라고 해서 터무니없이 더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제시하지도, 반대로 국제원자력기구라고 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원자력발전 비중 목표를 제시하지도 않죠. 더 이상 '미래 전망'이라는 미명 하에 숫자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전통의 무탄소 발전원인 원자력발전뿐 아니라 '나름 새로운' 무탄소 발전원의 대표 격인 태양광과 풍력발전 또한 더는 '미래의',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발전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탄소 발전원의 신속하고도 대대적인 확대'라는 과업에 있어 우리나라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이 여전히 10% 미만에 머물고 있고, 또 다른 무탄소 발전원인 원자력은 석탄화력발전이 거머쥐고 있던 '제1 발전원' 타이틀을 가져온 상황에서 정부가 체계적인 로드맵과 확대 전략을 내놔야 하는 발전원은 과연 무엇일까요.

재생에너지의 신속한 확대를 위해선 신속한 인허가가 필수입니다. 인허가가 늦어질수록 발전사업자의 이자 부담은 늘어나고, 이는 곧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평균으로 보더라도 이미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용은 화석연료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해졌는데, 우리나라의 발전원별 발전비용 순위가 이러한 평균과 정반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더딘 인허가'일 정도입니다. 실질적인 원재료나 기자재, 공사비용 등과 같은 직접비만 봤을 때엔 해외와 비교해 볼만한 수준인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간접비로 전체 발전비용이 비싸진 것이죠.

현재까지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발전 프로젝트는 83개, 총 27.1GW 규모에 달합니다. 10차 전기본에서의 2030년 목표인 14.3GW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아직 사업 허가는 받지 못 했으나추진중인 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은 물량이 대기중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업 허가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수십개에 달하는 법률에서 각기 규정한 절차에 따라 인허가를 얻고, 실제 사업을 추진하기까진 지고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27.1GW가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지만, 실제 운영 중인 발전설비 규모는 0.1GW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해상풍력발전의 신속한 설치를 도모하고자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해상풍력 특별법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만 늦어지는 해상풍력 인허가는 비단 재생에너지의 확산만 늦추는 것이 아닙니다. 비영리 에너지·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는 그 영향이 탈석탄의 지연으로도 이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넥스트는 〈탈석탄 감시자 보고서〉에서 지금처럼 풍력발전의 확산이 지지부진한 상황과 재생에너지가 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상정한 모델 예측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부족한 풍력 발전량을 석탄이나 LNG가 대체하게 된다”며 “그 결과 재생에너지 최적 증가 시나리오 대비 석탄화력발전의 발전량은 3.6%, 가스화력발전 발전량은 19.2% 증가한다”는 것이 넥스트의 분석 결과입니다. 무탄소 발전원의 발전량 부족을 화석연료 발전원이 대체함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달성 여부를 판가름낼 중요한 계획입니다. 2024년부터 2038년 사이, 우리가 어떤 발전소를 얼마나 설치하고, 신규 건설을 시작하느냐와 같은 전력 공급 측면의 정책뿐 아니라, 여타 선진국과 달리 수십년간 늘어만 가는 1인당 전력 사용량과 같은 소비 지표를 어떻게 조절할지와 같은 전력 수요 측면의 정책에 있어 정부와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본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첫 실무안이 공개됐고, 이제 이를 보완해 최종안을 만들어내기까지 반년의 시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우리가 더 눈여겨 살펴봐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다음 주 연재에서 차근차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길목' 책임질 '15년 계획'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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