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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강경화 전 장관이 '남긴 것'과 정의용 장관이 '만들 것'

입력 2021-02-10 16:34 수정 2021-02-1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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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떠나도 외교부는 영원히 있는 것"

강경화 전 장관이 외교부를 떠나던 지난 8일, 기자실에 잠시 들러 출입 기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강 전 장관이 기자실에 들어서자 기자단은 박수를 쳤고, 그는 "이제서야 박수를..."이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재임 기간 언론의 따가운 질타를 마음에 담아뒀던 모양입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임기를 꽉 채울 걸로 예상됐던 강 장관에게는 한때 '오(5)경화', 'K5(K는 성 '강'의 영문 머리글자)'등의 별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3년 8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후임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입니다.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신임 외교장관 하마평에 거론도 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도 그가 오는 것을 미리 예상하진 못했었다고 하더군요. 청와대는 인사발표를 하면서 마치 '히든카드'를 꺼내듯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떠나간 '강 전 장관'이 남긴 것
강경화 전 장관의 활약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K방역'이라는 걸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데는 외교부의 공이 컸습니다. 특히 강 전 장관의 외신 인터뷰나 국제무대에서의 연설이 'K방역'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수단이 됐습니다. 조직 내에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통했습니다. 사실 임기 초에는 외부에서 온 강 전 장관이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거란 우려도 많았고, 실제 어려움도 있었던 걸로 전해졌습니다. 그럼에도 강 전 장관과 김현종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의 갈등이 강 전 장관이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데 도움이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국 순방 때 벌어진 일입니다. 김 전 차장이 외교부 직원의 실수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강 전 장관과 언성을 높이고 싸우다 막판엔 영어로 싸웠다는 건데요. 이때 강 전 장관이 외교부 직원들을 감싸주며 김 전 차장에 맞섰다는 겁니다. 물론 이건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선 강 전 장관의 '따뜻한 리더십'이 통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여성장관으로서의 한계, '외교부 패싱' 등 비판적인 시각도 따라다녔습니다. 특히 2018년, 남북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한창 진행될 시기에 외교부의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모든 사안이 대부분 청와대 주도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북한의 공무원 총격 사망 사건이 일어났을 때, 9월 23일 새벽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에 강 전 장관은 참석 대상조차 되지 못해 '외교부 패싱' 논란도 일었습니다. 또 각국 공관에서의 성비위, 갑질 사건 등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임기 마지막 날 강 전 장관의 얼굴에서는 그야말로 '시원섭섭함'이 묻어났습니다. 강 전 장관은 이번 인사 이전에 이미 사의표명을 한 적이 있었고, 당시엔 청와대에선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당장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웠었단 이야기이겠지요.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첫 여성, 최장수 외교장관'이란 타이틀에 걸맞은 '레거시(legacy)', 유산도 분명히 남겼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외교부청사를 떠나는 강경화 전 장관 〈사진=연합뉴스〉지난 8일 서울 외교부청사를 떠나는 강경화 전 장관 〈사진=연합뉴스〉


◇돌아온 '정 장관'이 만들 것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정의용 당시 안보실장을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안보실장을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해외순방 기간 중엔 공식일정 이후에 기자들과 조금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계기에 만났던 정 신임장관은 일부 언론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군기반장'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외교장관'으로 관측되는 정 장관에게 주어진 임무는 뚜렷합니다. 바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입니다. 정 장관은 장관 취임 첫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정 장관이 외교부 수장으로 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2018년 당시 남북미 관계에 이미 큰 기여를 한 데다, 안보실장 자리에서 물런난 뒤에는 운동을 즐기는 등 건강관리를 하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외교장관 인사 하마평에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즉 이번 '깜짝 인사'는 북한과 미국에 보내는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정 장관이 오면서 외교장관의 역할도 이전과는 달라질 걸로 보입니다. 장관은 '남북미' 문제에 '올인'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 외의 다자외교는 아마도 차관들의 몫이 되겠지요. 현재 외교부 라인업도 남북미 바퀴를 다시 돌려보자는데 초점을 맞춰놨습니다. 정 장관은 이미 외교부 내에 최종건 1차관과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습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외교부로 옮겨온 모양새이지요.
이제 정 장관이 풀어야할 숙제는 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에 몰려있습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북한부터 새로운 행정부 아래 '동맹국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 미국의 요구사항이 돼버린 일본과의 관계개선, 계속되는 미?중 갈등까지...쉽진 않겠지만 이제부터 외교부가 중심이 돼서 풀어나가야 할 부분들입니다.
 
지난 9일 서울 외교부청사로 첫 출근하는 정의용 신임장관 〈사진=연합뉴스〉지난 9일 서울 외교부청사로 첫 출근하는 정의용 신임장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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