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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입력 2020-08-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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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지난 8월 13일 오전, 서울 청계천 일대에 공항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주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방재직(소방대, 야생동물통제직원)과 공항 보안검색 직원들입니다.
 
[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전면 재논의하라


이날 집회의 핵심 구호였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인국공에서 이 사람들을 '직접 고용'한다고 발표한 게 불과 두달 전 일이기 때문이죠.

언뜻 '공사에서 직접 고용해주겠다는데 뭐가 불만이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사가 말한 '직고용'의 숨은 이면은 바로 해고였습니다.

▶ 비극의 시작은 3년 전으로… 

우선 밝혀두고 싶은 건, 이 취재설명서는 '공사 직고용'이 정당한지를 따져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총액인건비제도'나 '신규채용 일자리 감소'와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직고용 과정에서 벌어진 '황당한 해고'의 뒷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복잡한 사연은 3년 전 5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취임 뒤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하지요. 당시 발언입니다.

"안전과 생명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그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항 근로자 대부분은 공사가 아닌 '용역회사' 소속 계약직이었습니다.

계약기간마다 갱신을 하는 개념으로 공항에서 일해 왔던 것이죠. 문 대통령의 이런 발표는 당연히 근로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게 됩니다.

공사는 그 뒤로 '정규직 전환'이란 대전제 아래, 일단 기존 용역회사 대신 '자회사' 계약직으로 근로자를 보냅니다.

▶ 차일피일 미뤄지는 '정규직 전환'…그 사이 2년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 '정규직 전환'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얽혀 있는 관련 법도 따져봐야 하고, 무엇보다 법개정이 필요한 사안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러는 사이, '자회사 계약직'으로 갔던 근로자들의 근무기간 2년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계약을 해지하던지, 아니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시점이 도래한 것이죠.

먼저 2년이 돌아온건 소방대 등 방재직이었습니다. 공사는 이 사람들을 일단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해줍니다. (이 정규직의 성격을 두고, 현재 첨예한 해석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방재직들은 2020년 1월 1일자로 '자회사 정규직'이 됐습니다. 공사 정규직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정규직인 것이죠. 뒤이어 보안검색 C(공사엔 보안검색 노조가 4곳 있습니다) 직원들이 5월 1일자로 자회사 정규직이 됩니다.
 
[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즉, 문제의 6월 23일 전까지 방재직과 보안검색 C 직원들은 이미 '정규직'이었던 겁니다.

'이미 자회사 정규직'이라는 것, 이번 논란의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역설

공사는 적어도 5월 1일(혹은 보안검색C와 협의가 이뤄진 3월 6일)까지는 이들을 직고용할 계획이 없던 걸로 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계약을 맺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6월 23일 공사는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고 비상을 준비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냅니다. 매우 긴 내용이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1. 생명, 안전 밀접 3개분야 2,143명 공사 직고용
2. 보안검색요원 청원경찰 전환
3. 공개경쟁 원칙에 따른 전환

쉽게 말해, 2,143명은 전환 채용시험에 합격해야 공사 정규직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채용이 정당(혹은 공평)한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강제로 봐야하는 채용시험에서 떨어지면, 이들은 자회사로 '원대복귀'되는 것이 아니라 '해고'(공사는 계약 해지라고 말합니다)를 당합니다. 이미 멀쩡한 정규직인데도, 내 의사와 관계 없이 해고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이미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이 보장된 사람들에게 강제로 시험을 보게 하는 것도 위법한 측면이 있지만, 여기서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해고되는 것은 더 이상하지요. 관련법 위반으로 볼 여지가 상당합니다.

▶ 법무법인조차 우려한 해고

이 때문에 법무법인 광장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의견서를 공사에 보냈습니다.
 
[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6페이지) 정규직 채용절차에 탈락해도 (중략) 근로관계는 그대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사료됩니다.
(7페이지) 근로계약이 정규직 채용절차 확정까지 기한부 내지는 해제조건부 계약으로 평가될 가능성은 낮다고 사료됩니다.
(7페이지) 정규직 채용절차에 탈락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경우,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사료됩니다.

완곡하게 에둘러 말하지만, 사실상 경고에 가까운 의견입니다. 법무법인이 클라이언트에 대해 이정도까지 말하는 건 사실상 '하지 말라는 의미'란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공사는 다른 법무법인(법무법인 바른)에 유사한 질의를 다시 넣었고, 이때 원하는 답변을 얻은 걸로 보입니다. (공사는 법무법인 바른에서 받은 질문-답변서를 공개해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가 가장 적었던(241명) 방재직 직원들에 대한 전환 시험이 치러졌고, 그 결과 47명이 시험에서 떨어집니다.

47명은 어떻게 됐냐고요? 공사가 말한 대로 '해고 당했습니다'.

▶ 직원 해고한 근거는 '법무법인의 유권해석'

공사는 예전 구본환 사장의 법인카드 논란(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61436 ) 때와는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반박을 해왔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1. 관련 서류를 보완해 후속 법률자문을 법무법인 바른에 넣었다
2. 이에 따르면, 방재직과 보안검색C 근로자는 '직고용 채용 절차 완료시까지' 한시적 기한부 계약이었다
3. 따라서 직고용 채용절차가 완료됐으니, 근로계약 기간 만료로 근로계약은 종료된 것이다
4. 당연 계약 종료니, 해고절차 진행이 아니다

쉽게 풀자면, '공사 직고용'이 될 때까지만 채용하는 한시적(조건부) 계약이었으니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해고하는 건 정당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아래 근로계약서를 한 번 보시죠.
 
[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보안검색 C 직원의 근로계약서입니다. 근로계약서 어디에도 '조건부' 혹은 '한시적 채용'과 같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공사 말대로 '조건부 정규직'이었다면 근로계약서에 그 비슷한 조건이라도 들어있는 게 정상입니다.

공사에 물었습니다. 혹시 근로계약서가 아니더라도 '조건'을 적어놓은 문서가 있다면 공사의 입장에 설득력이 있는 것이니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답은 '없다'였습니다. 그러면서 '유권해석'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조건을 유권해석으로 만든 뒤, 이를 근거로 직원을 해고하는 셈입니다.

이는 대법원 판례로도 반박이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서와 같은 처분문서는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기재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기재내용에 의하여 그 문서에 표시된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1987. 4. 14. 86다카306 판결 등 다수).

해고 근로자들이 행정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낼 예정인데, 바로 이 부분이 향후 있을 법적 다툼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직고용 필요없다고 말하는 근로자들…손놓은 유관부서들

보안검색 직원들은 모두 1,902명입니다. 이들은 각각 4개의 노조로 나눠져 있는데, 1개 노조를 제외하면 모두 현재 공사 직고용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조섞인 말로 '직고용'이 '집보', 즉 집에 보내버리는 용도로 쓰인다고 말합니다.

1,902명 중 누군가는 조만간 있을 '벼랑끝 시험'을 본 뒤 정든 직장을 떠나야만 합니다. 방재직 직원의 비율을 감안하면, 대략 200명 이상의 해고자가 예상되죠.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공사 직고용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회사라도 고용 안정을 원하지요.

그런데 유관부서인 국토부와 고용노동부의 태도가 좀 이상합니다.
 
[취재설명서] '정규직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던 인국공 해고 사태…'직고'가 '집보' 된 이유는

방재직 노조가 유관부서에 '시험 탈락 뒤에도 계약 유지되는지'를 물었지만, 인국공 상급기관인 국토부는 '우리 소관이 아니라 노동부 소관이다'라며 답변을 피합니다. 노동부는 아직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비공식적으로 '법적으로 복잡한 사안이라 시간이 걸린다'는 답변을 해왔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안을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입니다.

보안검색C 노조도 같은 질의를 넣었지만, 양쪽 모두에서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 왜 갑자기 공사는 무리수를 뒀을까

6월 23일 발표는 자회사 노조는 물론, 공사 노조와도 협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공사 직원들이 발표 당일, 구본환 사장에게 거세게 현장에서 항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노조는 3월 6일~6월 23일 사이, 구체적으로 5월쯤에 어떤 계기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 여기선 언급할 순 없지만, '청원경찰화를 통한 직고용'을 두고 '누군가'와 '어떠한 논의'가 있었다는 의심입니다.

다시 8월 13일, 청계천 집회 날에 나온 구호입니다. "대통령은 생색내고, 나는 짤리고.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재논의하라"
 
과연, 공사가 노조와의 대화를 사실상 포기하면서까지 6월 23일 이런 발표를 강행해야만 했던 진짜 배경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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