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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세월호 당일 박근혜의 '침실 4시간' 여전히 의문

입력 2018-03-29 19:00 수정 2018-03-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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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 저희가 다뤘던 내용인데요. 검찰이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어제(28일) 내놨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의혹이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순실 씨를 만나기 전까지 침실에 있던 박 전 대통령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겠죠. 또 세월호 후속 대책 관련해서 최 씨가 과연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도 다시금 의혹이 커지고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최 반장 발제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세월호 관련 의혹을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기자]

검찰이 밝힌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은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먼저 전화 지시 두 번, 그리고 최순실 회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손질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테리의 시간이 있습니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침실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박 전 대통령뿐입니다.

그리고 오전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한 뒤 오후 2시를 넘어 최순실 씨가 올 때까지 4시간, 4시간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체 관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박근혜/전 대통령 (2014년 1월 6일) : ('대통령이 업무가 끝나고 관저로 돌아가시면 도대체 뭘 하시냐?') 실제로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습니다. 그래서 그거 보면서 장관 또 수석과 수시로 통화도 하면서 이것저것 결정하고 나면 그냥 뭐 어떤 때는 막 훨씬 밤늦은 시간도 되고 그러는데, 또 국정의 최종 책임을 진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면 사실 제 개인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여기에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참모들의 대면보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반박하면서 요즘은 대면보고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보고 방법이 있었다고도 했었습니다.

[박근혜/전 대통령 (2015년 1월 12일) : 옛날에는 대면보고만 해야 되지 않습니까? 전화도 없고, 이메일도 없고 지금은 여러 가지 그런 것이 있어서 어떤 때는 대면보고보다도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 빨리 해야 될 때가 더 편리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걸려온 김장수 국가안보 실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비서실의 이메일 보고도 바로바로, 곧바로 확인을 하지 않았죠. 그러니까 전화와 이메일 모두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상황병이 보고서를 들고 직접 이렇게 달려간 것이죠.

그래서 첫 보고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검찰도 뛰었습니다. 직접 뛰었습니다. 상황실부터 관저까지 검찰이 달려가 봤더니 아무리 빨라야 7분이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10시 12분에서 13분 보고서 완성 시각을 토대로 첫 보고 시각을 10시 19분에서 20분으로 파악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보고서는 침실 앞 탁자 위에 놓여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첫 보고는 안봉근 전 비서관이 침실 앞에서 소리쳐 박 전 대통령이 나왔을 때였죠.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청와대 출입로그 기록을 통해 확인이 됐습니다. 안 전 비서관이 탄 승용차가 본관에서 출발한 것이 10시 12분이었고, 관저에 도착한 것이 10시 20분이었던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직 당시 검색 절차 없이 관저에 들어올 수 있는 '보안손님'은 A급, 그리고 B급으로 구별이 됩니다. 정문을 통과해 마당까지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A급, 그리고 정문까지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B급이었는데요. A급은 최순실, 김영재, 박채윤 단 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B급은 기치료사, 왕십리원장 등 비선진료인으로  출입기록이 A급, B급 모두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참사 당일 최순실의 관저 방문은 어떻게 확인을 했을까요? 바로 이영선 전 행정관의 행적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급박했던 날 이 전 행정관의 승합차가 오후에 두 번이나 남산1호 터널을 통과한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모두 강남에서 시청 방면이었는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압구정동의 한 김밥집에서 결제한 카드 내역도 확보를 했습니다. 강남과 압구정, 바로 최순실 씨 집 근처였던 것이죠. 이 전 행정관은 당일 최 씨를 태우고 청와대로 온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관저에서 대기하고 있던 문고리 3인방 모두 최씨의 출입을 인정했고 "중대본을 방문하는 게 어떻겠냐"는 최 씨의 제안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아들인 뒤, 중대본 방문이 전격 결정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최 씨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경재/변호사 (음성대역) : 검찰이 말하듯 5인 회의니, 중대본 방문 결정에 관여한 것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사적 부분에 조력한 사람으로서, 그에 관한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도리입니다.]

하지만 검찰에 따르면 관련자들은 "참사 당일 최씨의 방문에 굉장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게 드러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고 그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사실상 최 씨의 결정이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최 씨의 손은 과연 어디까지 뻗었던 것일까요.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첫 담화에서 내놓은 극약 처방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박근혜/전 대통령 (2014년 5월 19일) :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해경은 자신들이 해체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또 국무회의조차 거치지 않아 논란이 커지자 박 전 대통령은 "내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냐"며 역정을 냈다고 하죠. 그 의혹의 실마리가 이제 풀리는 것일까요.

[송영길/더불어민주당 의원 (2016년 11월 11일) : 해경 측에서는 대통령께서 해경에 대한 개혁으로 담화를 발표한다고 지시가 와서 개혁안을 다 준비를 해 놨는데 갑자기 5월 19일 담화에서 해경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이게 최순실의 지시라는 것 아닙니까. 왜 그런지 아십니까? 7시간 은폐하기 위해서, 해경에다 책임을 돌리고.]

오늘 발제는 이렇게 정리해보겠습니다. 기사 제목은요. < 세월호 7시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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