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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잃어버린 세월호 7시간, 박근혜는 최순실과 있었다

입력 2018-03-28 18:37 수정 2018-03-2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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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작할 때 저희가 잠깐 얘기했지만요. 검찰이 오늘(28일)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침실에 있었고, 오후에도 최순실과 함께 관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첫 보고 시각, 대통령의 지시 등 박근혜 청와대가 밝혔던 내용은 모두 거짓으로 확인됐습니다. 오늘 최 반장 발제에서는 4년 만에 드러난 세월호 7시간의 진실, 그 의혹과 관련된 내용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망각의 동물' 인간이 과거를 잊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기억의 장치로 감각을 끄집어 냅니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어렸을 적 기억을 되찾죠.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망각의 대상이 아닌 감각으로 각인이 돼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예외였을까요.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 답하지 않았습니다.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는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한 인터넷 방송에서도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지만 동정심에 호소뿐이었습니다.

[박근혜/전 대통령 (지난해 1월 25일/ 화면출처: 유튜브 정규재TV) : 품격 떨어지는 얘기예요, 한 마디로. 민망스럽기 그지없는 얘기들이. 뭔가 이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또 여성 아니면 그런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겠죠.]

그리고 대한민국은 오늘 4년 만에 세월호 참사의 '잃어버린 7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답을 내놨습니다. 검찰 조사 결과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침실에 있었다고 합니다. 침실 앞에서 수 차례 부른 안봉근 전 비서관의 목소리를 듣고 10시 20분쯤 밖으로 나온 박 전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다시 침실로 들어가 김장수 전 실장에게 전화로 지시를 합니다.

그리고 오후 2시 15분, 최순실씨가 청와대를 찾아옵니다. 늘 그랬듯이 이영선 전 행정관이 최씨를 데리고 들어왔고 두 사람은 관저에서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 보도를 지켜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윤전추 전 행정관은 당일 최순실 씨를 보지 못 했다고 했었죠.

[윤전추/전 청와대 행정관 (지난해 1월 5일) : 4월 16일은 워낙 위중하고 좀 특별한 날이라서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외부인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외부인이 들어온 적은 헤어하고 미용 빼고는 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부인이 없었다고 한 것은 윤전추 전 행정관 입장에서는 최순실 씨는 외부인이 아니라 청와대 내부인이었던 것일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 받은 시각이 무단으로 수정된 것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당초 청와대는 오전 9시 30분이었던 첫 보고 시간이 10시로 조작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임종석/청와대 비서실장 (지난해 10월 12일) :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점을 30분 늦춘 것입니다. 보고 시점과 대통령의 첫 지시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이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검찰 조사는 정반대였습니다. 20분을 당긴 것인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초로 보고를 받은 것은 오전 10시 20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10시로 수정한 것으로 파악이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월호 조타실에서 발견된 시계는 오전 10시 17분에 멈춰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 역시 10시 17분이었죠.

당시 청와대 역시 10시 17분을 골든타임이라고 봤습니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해 시계조차 멈춘 뒤인 10시 20분 처음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 됩니다. 결국 당시 청와대가 골든타임 전 대통령 보고와 지시가 있었다고 꾸미기 위해서 보고 시간을 조작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고 중대본을 방문하기까지의 미스테리도 당초 7시간의 의혹에서 7시간 30분의 의혹이 됐다가 결국 6시간 40분으로 바뀐 셈입니다.

2~30분 시간이 바뀌기는 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국가의 위기 순간에도 박 전 대통령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고 또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근혜/전 대통령 (지난해 1월 1일) : 그래 갖고 막 걱정하면서 해경한테 챙기고 이렇게 하다가 그러면서도 저는 계속 여러 수석실로부터 보고도 받고 일 볼 거 보고 했는데 '전원이 구조됐다' 그래 갖고 너무 기뻐서 아주 그냥 마음이 아주 안심이 되고 이렇게 잘 될 수가 있나 너무 걱정을 했는데…]

하지만 최씨가 오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은 침실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참사 소식을 접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이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한 것은 최순실이 오고 나서였습니다. 그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문고리 3인방 등 5명의 회의가 열렸고요, 이 자리에서 중대본 방문이 결정이 됩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한 달 동안 열리지 않던 수석비서관 회의가 최순실 씨의 말 한 마디에 열린 적도 있었죠. 그러니까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통령을 움직이게 한 것도 최순실 씨였다면 정말 믿기 힘들겠지만 이 나라의 대통령은 최순실이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이마저도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정호성 전 비서관 윤전추 전 행정관에게 미용사 자매를 부르라고 지시합니다. 윤 전 행정관은 상황이 급하니 빨리 청와대로 오라고 요청을 했고 화장과 머리 손질이 끝난 뒤 관저를 출발해 5시 15분 중대본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때마침 오늘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재판 방청권 추첨이 진행이 됐습니다. 99명이 신청해 경쟁률은 3.3 대 1이었는데요. 525명이 몰려 7.1 대 1을 기록했던 첫 재판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징역 30년이 구형된 박 전 대통령의 1심은 다음달 6일 선고됩니다.

오늘 발제는 이렇게 정리해보겠습니다. < 잃어버린 세월호 7시간, 박근혜는 최순실과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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