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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감축 기회 놓친 '잃어버린 30년'…앞으로 30년은?

입력 2021-08-30 09:32 수정 2021-08-30 09:3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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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4)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꼬박 3개월이 지났습니다. 위원회의 이름처럼 '2050년 탄소중립'엔 여야 할 것 없이, 정·재계 할 것 없이 한목소리가 나옵니다. 하지만 그 목표점까지의 중요 이정표인 2030년 감축 목표를 두고는 “너무 낮다”, “너무 높다” 상반된 목소리가 나옵니다. 탄소중립,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정말 갑작스러운 일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감축 기회 놓친 '잃어버린 30년'…앞으로 30년은?


#1990년대_지구온난화의_시대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해왔을까요. 그리고 지금의 '위기'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1990년대, 지금의 기후위기 문제를 두고 지구온난화라는 표현을 쓰던 때입니다. 미국에선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앨 고어 부통령이 적극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나섰던 시기죠.

 
1990년대 초반, 온실가스와 관련한 국내 보도 헤드라인 (자료: 연합뉴스)1990년대 초반, 온실가스와 관련한 국내 보도 헤드라인 (자료: 연합뉴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국제협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실가스를 현재와 같이 계속 방출할 경우, 2025년엔 1℃, 2100년엔 3℃ 기온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에너지와 환경의 문제는 별개로 다룰 수 없다. 21세기엔 석유 자원의 고갈도 문제지만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지구 환경의 파괴가 심각해질 것이다.”

국내 통신사가 보도한 뉴스에 담긴 내용입니다. 심지어 1994년엔 미국과 유럽의 탄소세 도입에 대한 우려도 큰 화제를 모은 뉴스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과 EU, 일본 등 선진국 그룹이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에 탄소세를 부과할 때, 자국 상품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을 막으려 수입품에 대해 상계 관세를 부과하거나 국경세를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세 부과시 우리나라 주력 상품 15종의 수출은 연간 16.3억달러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정됐다. 상계 관세로만 미국에 2.4억달러, 일본에 7천만달러, EU에 5천만달러를 내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EU가 발표한 '탄소국경조정(CBAM)'이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EU는 CBAM을 2023년부터 시범 도입하고, 2026년부터 본격 적용하기로 했죠. EU의 이러한 조치에 이어 미국에서도 탄소국경조정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하원에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밀레니엄_전후_기후변화의_시대
이러한 해외 각국의 움직임에 우리나라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바로 1998년 4월, UN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 대책기구를 마련한 겁니다. 이 기구의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았습니다.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10개 부처가 이 기구에 포함됐습니다. 이 기구는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계획을 세우는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산업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바꾸고, 청정에너지의 보급을 늘리는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었죠. 마치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데자뷰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외환위기로 '회복'과 '성장'에 모두가 집중하던 때였습니다. 여러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할 때 “우린 아직 경제성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감축에 난색을 표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압박에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계획을 만드는 기구를 마련한 거죠.

우리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00년 12월,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내년(2001년)부터 개발과 보전을 함께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998년 당시 '청정에너지'라는 표현이 2년 후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바뀌었을 뿐, 재생에너지의 수급 대책은 주요 논의 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각종 경제적 유인책도 검토하기로 했죠. UN 기후변화협약 대응방안 역시 핵심 논의 대상이었습니다. 1998년엔 '범정부' 차원이었다면,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민간과의 협력도 꾀했습니다.

#해외서도_나타난_데자뷰
그런 와중에 2001년 3월, 미국이 돌연 교토협약을 탈퇴한다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며 탈퇴를 선언한 것이죠.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프랑스는 “매우 도발적이고도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맹비난했고, 미국의 우방인 영국 역시 유럽과의 관계가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했죠. 우리 정부도 미국의 결정에 우려를 표하면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고요. 마치 그로부터 18년 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2019년 파리협정을 탈퇴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감축 기회 놓친 '잃어버린 30년'…앞으로 30년은?

그런데, 이러한 우리 정부의 말과 선언, 각종 정책과는 정반대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습니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1998년, 전년 대비 무려 14.1%가 줄었던 것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증가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냥 늘어난 것도 아니고, 'OECD 최고 수준'이었죠. 지난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환경장관 회담에서 우리나라는 이같은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게 됐습니다. UN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1992년 당시와 2001년의 '한국의 지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1996년,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서 점차 국제사회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도 무거워졌죠.


#2010년대_기후위기의_시대
지구온난화라는 표현은 기후변화로, 기후위기로 차츰 달라졌습니다. 이를 나타내는 '이미지'도 달라졌고요. 빨간 수은주를 입에 물고 땀을 뻘뻘 흘리는 지구의 모습은 비쩍 마른 북극곰의 모습으로, 다시 곳곳에서 발생한 폭우와 산불로 피해를 입은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더는 물러설 곳도, 더는 대응을 주저할 시간도 없습니다. 1990년, IPCC는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10년에 0.3℃씩 기온이 올라 2025년엔 1℃, 2100년엔 3℃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90년대 기준 '지금처럼' 배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역대 최고'를 경신했죠. 그 결과 지구는 이미 산업화 이전 평균(1850~1900년)보다 1.09℃나 더워졌고, 극한 고온 현상은 산업화 이전보다 4.8배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응을 미룬 30년, 한반도의 기후도 달라졌습니다. 1991~2000년, 전국 평균 10.4일이던 우리나라의 폭염일수는 2011~2020년 평균 14.9일로 늘어났습니다. 열대야일수도 6.2일에서 9.9일로 늘어났고요. 같은 기간, 113일이었던 여름의 길이는 127일로 2주가 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위상도 달라졌죠. 개발도상국에서 OECD 가입국으로, 그리고 국제 공인 선진국으로 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감축 기회 놓친 '잃어버린 30년'…앞으로 30년은?

과연 지금의 탄소중립 움직임이, 온실가스 감축이 '갑작스러운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30년은 나름의 '여유 부릴 수 있는 시간'이었을지라도 앞으로의 30년은 다릅니다. 지금 당장 지구가, 한반도가 처한 환경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지위로 보더라도 말이죠.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묶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지금 당장 즉각적인 감축을 시작해 2030년엔 50% 감축, 2050년엔 탄소중립을 이룩하는 바로 그 시나리오 말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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