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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입력 2024-10-07 08:01 수정 2024-10-07 09:34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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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56)

2024년 9월 30일, 영국의 국가전력망운영공사(National Grid Electricity System Operator)의 발전 현황판에서 석탄화력발전량의 숫자가 '0'을 기록했습니다. 일시적으로 '0'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국내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함으로써 탈석탄을 실현한 것입니다. 선진국들 가운데 첫 탈석탄입니다. 공사 측은 “래트클리프 발전소를 마지막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전력 시스템에서 떠나게 됐다”며 “영국서 142년간 이어져 온 석탄화력발전의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탈석탄의 다음날, 이 공사는 이름을 국가에너지시스템공사(NESO, National Energy System Operator)로 바꾸고, 석탄 없는 시대의 에너지 시스템을 맞이했습니다.

영국의 탈석탄에 왜 세계가 주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가장 먼저 대규모로 석탄을 이용한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기 때문입니다. 1769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함께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급증했습니다. 증기기관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왔고, 이윽고 석탄은 그런 기계의 연료를 넘어 발전원으로 거듭났습니다. 1882년, 세계에서 최초로 영국 런던에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생산해내는 나라로 자리매김했고요. 지금이야 석유와 가스 생산을 도맡는 미국과 중동, 러시아 등이 글로벌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과거 영국은 석탄을 통해 패권을 거머쥐게 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1700년 이래 영국의 석탄 생산량과 수입량을 통해 변화를 찾아봤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석탄에 주목했던 영국의 생산량은 1913년 2억 9,203만톤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국 수요를 수입산으로 대체해서 줄어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점차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에 나섰기 때문이었죠. 바로, 석유로의 전환입니다. 1910년대 영국 해군의 해군력 증강 프로그램은 당시 영국 에너지전환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됩니다.

1905년, 영국의 새로운 전함 설계를 이끌던 해군제독 존 피셔는 연료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뛰어난 기동성과 작전반경 등 내연기관은 증기기관을 뛰어넘는 성능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 내에선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자국 내에 양질의 에너지원이 충분히 있는 상황에서, 수급이 불안정한 외산 석유로 군함을 가동해야 하느냐는 우려에서 비롯된 반발이었죠. 해군을 비롯, 정계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불거진 우려에도 이러한 전환을 추진한 것은 당시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 덕분이었습니다. 처칠은 당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석유 연료 함정을 늘린다는 것은 해군의 우월적 지위를 지키는 수단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필요한 만큼의 석유가 발견되지 않았다. 평시든, 전시든, 먼 타국에서 이를 해상으로 수송해야 한다. 반면, 국내엔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석탄이 끝없이 있다.

석유로의 전환은 '고통스러운 바다와의 투쟁'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한다면, 영국 해군의 힘과 효율성은 세계 최강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패권은 모험에 대한 보상이다.”
윈스턴 처칠 당시 해군장관

결국 처칠은 1912~1914년, 세 차례에 걸친 해군력 증강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이는 '사상 최대의 화력 및 군비 증강'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영국 해군은 이를 통해 당시 해군력 팽창에 나섰던 독일에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영국 해군의 에너지전환 직후인 1914년 7월 28일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내연기관의 연합국과 증기기관의 동맹국 간의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에너지 측면에서 이를 바라봤을 때엔 말이죠.

물론, 이러한 전환에도 영국의 전체 석탄 생산량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1952년, 우리가 의무교육과정에서도 배우는 런던 스모그로 4천명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도 그래프 곡선의 기울기는 그리 가팔라지지 않았죠. 런던 스모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1980년, 영국에서 가장 큰 발전비중을 차지했던 발전원은 석탄이었습니다. 무려 7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1986년, 영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가 준공되고, 이후 영국의 전력생산은 석탄 중심에서 가스 중심으로 변화했습니다. 2008년 기후변화법이 제정된데 이어 2015년엔 정부가 탈석탄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고요. 1913년 정점 이후 100년의 시간 동안 차근차근, 석탄과의 이별 수순이 이어진 셈입니다.

영국이 전 세계 석탄 생산 1위를 내려놓은 것은 1900년 무렵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석탄 생산량이 영국의 생산량을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1900년부터 2023년에 이르기까지 124개년의 시간, 국가별 석탄 생산량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봤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국 내에서 석탄을 생산하는 다양한 나라들이 있는 만큼, 1980년 기준 석탄 생산 글로벌 Top 10 국가들의 생산량 변화를 중심으로 말이죠. 이들 나라는 바로, 영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폴란드, 남아공, 호주, 인도, 체코입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석탄 생산국이었습니다. 1940년 기준, 3,477.5TWh의 미국에 이어 영국(1,560.3TWh), 독일(1,423.3TWh) 순으로 많은 양의 석탄을 생산했죠.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미국에 1위 자리를 내어줬지만, 독일보다는 더 많은 양의 석탄을 생산한 것입니다.

그러다 1950년대부터는 러시아, 독일, 그리고 중국에 그 순위를 내어주게 됐습니다. 결국 1980년엔 미국(5,455.3TWh), 중국(4,051.3TWh), 러시아(당시 소련, 3,551.8TWh), 독일(1,604.1TWh), 폴란드(1,084.3TWh)에 이어 영국은 971.1TWh를 생산해 6위로 순위가 밀렸죠. 그리고 2023년, 영국은 위의 10개 나라 가운데 가장 적은 생산량을 기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국(2만 5,860.7TWh)과 인도(4,652.7TWh)는 이제 20세기 이래 거의 '부동의 1위'였던 미국의 생산량을 넘어서게 됐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자국내 석탄화력발전의 142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영국의 전력 생산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금세기 이래 영국의 연간 발전원별 발전량을 살펴봤습니다. 절대적인 발전량의 측면에서 봤을 때, 초기 10여년간 석탄화력발전량은 큰 감소세를 보이진 않았습니다. 이 기간 석탄화력발전량의 최대치는 2006년의 148.85TWh였고, 그 다음으로 가장 많았던 때는 2012년(142.79TWh)이었을 만큼요. 하지만 2012년의 정점 이후로, 영국의 석탄발전은 급격한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부른 것은 바로, 영국의 정책이었고요.

2002년, 영국은 재생에너지의 확산을 위해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자가 발전하는 총량의 일정 부분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입니다. 통상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만큼, 이는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으로 꼽힙니다. 이어 2005년엔 EU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됐고요. 2008년, 영국 정부는 대형 화석연료 발전소들의 배출량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차근차근 발전사업자들에게 시그널을 보낸 것입니다.

2012년 석탄화력발전량의 21세기 두 번째 피크가 기록되고, 2013년엔 본격적으로 영국 내 탄소세가 도입됐습니다. 신규 발전소들에 대한 배출량 규제 또한 시행됐고요. 이를 계기로 영국의 석탄화력발전은 급감하기 시작했고, 재생에너지는 빠르게 석탄의 빈자리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렇게 재생에너지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내자 영국은 2014년 CfD(Contracts for Difference, 차액결제계약)에 따른 경매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고요. 발전사업자의 입장에선 장기간(영국의 경우 15년) 자신이 판매하는 전기의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장의 가격이 계약가보다 저렴해질 경우, 정부가 그 차액을 보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시장의 가격이 계약가보다 비싸질 경우, 발전사업자는 그 차액을 정부에 반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9년, 한국 국회에서 계속 표류중인 해상풍력특별법과 비슷한 '해상풍력 민관 협약'이 체결되고, 5GW를 초과하는 대규모 태양광에 대한 FiT(Feed-in Tariff, 발전차액지원제도)가 폐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해 영국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36.6%, 개별 발전원별로는 풍력 19.5%, 바이오 11.5%, 태양광 3.8%, 수력 1.8% 등이 기록됐고요. 그리고 이듬해인 2020년, 영국은 '에너지 안보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팬데믹과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르기까지 연료 가격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에너지 상황의 악화가 이어지자 무탄소 발전원의 확대와 수소 개발, 인프라 및 국제협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전략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 모든 정책은 결국 화석연료 전반과의 이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영국이 완전한 탈석탄에 돌입한 것은 2024년 9월 30일의 일이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석탄 없는 날'은 존재했습니다. 다른 발전원들이 점차 국가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책임져가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가동을 아예 멈추거나, 거의 하지 않은 시간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글로벌 기후 에너지 싱크탱크 Ember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에선 2017년부터 하루 중 석탄발 전력 공급이 전혀 없었던 날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주춤했던 2020년엔 무려 수개월동안 가동을 멈추기도 했을 정도였고요. 불과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래프가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으로 칠해진 날이 많았는데, 그 짧은 사이 잿빛은 점차 옅어졌고, '석탄발 전력 0%'를 뜻하는 초록색의 영역은 커진 것이죠. 위의 그래프에서 초록색이 보인 시간은 2017년부터 8개년에 불과하지만, 이는 오랜 기간, 차근차근 준비해 온 정책 덕분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탈석탄을 '갑작스런 전환' 같은 해프닝이나 '쉬운 일'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2023년 4월, 독일이 마지막 남은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멈춘 것에 이어 이번 영국의 석탄화력폐지는 우리 인류가 그동안 이용하고, 의존해온 기성 전력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이정표가 됐습니다. 전력 부문의 탈탄소는 이제 '그 나라만 그런 거야'라며 애써 외면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랜 기간 이어져온 석탄화력발전의 발전량을 '0'으로 만든 선진국은 영국이 처음일지 몰라도, 탈석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영국만이 아닙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2000년 이래로 한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발전원별 발전량의 추이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났습니다. 2000년 290.45TWh에서 2023년 617.92TWh로, 배 이상이 됐죠.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도대체 역사적 최고점이 얼마나 될지 예상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우린 그 수요의 대부분을 화석연료로 감당해왔고요. 한국의 석탄화력발전량은 2000년 114.88TWh에서 2023년 205.08TWh로, 가스화력발전량은 29.66TWh에서 168.82TWh로 크게 늘었습니다. 다른 발전원의 변화폭을 한참 뛰어넘는 숫자입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지난 20여년의 세월 동안 발전량을 유지하거나 줄여온 것과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영국의 발전량은 2000년 377.06TWh에서 2023년 285.92TWh로 프랑스는 2000년 532.56TWh에서 514.1TWh로 줄었습니다. 그렇게 전력 생산 자체를 줄여오면서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영국(2000년 2.6% → 2023년 47.3%), 프랑스(2000년 12.7% → 2023년 26.3%) 모두 늘려왔고요. 영국은 전력부문의 탈탄소를 재생에너지 확대로 달성해가는 중이고, 이미 원자력발전을 중심으로 전력의 탈탄소를 상당 수준 이뤄냈던 프랑스 또한 여타 선진국들 못지않게 재생에너지 확산에 박차를 가해온 것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이미 2000년 기준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이 5.1%에 불과했습니다. 그 숫자는 2019년부터 1% 미만으로 줄어들어 2023년엔 0.4%를 기록했고요. 프랑스 또한 완전한 탈석탄을 목전에 둔 셈입니다. 어쩌면 EU 역내에서 재생에너지 확산에 가장 열심인 것으로 알려진 독일보다도 더 이른 시점에 탈석탄을 완성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6월, G7이 탈석탄 합의문을 발표한 것은 그저 '말잔치'에 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 둘 우리의 눈앞에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따라가고 있을까요. 얼마나 의지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 변화를 그저 '일부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패권은 모험에 대한 보상”이라는 처칠의 표현을 다시 되새겨봐야 하는 때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제국' 영국, 선진국 가운데 첫 탈석탄 실현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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