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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입력 2021-08-09 09:32 수정 2021-08-09 10:24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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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1)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지난주 공개됐습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9개월여만,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위원장 김부겸 국무총리·윤순진 서울대 교수)'가 출범한 지 두 달여만의 일입니다. 위원회가 공개한 시나리오는 총 3가지 안입니다. 초안이고, 9월까지 이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을 진행합니다. 이를 반영해 최종 정부안은 10월 말 발표될 예정입니다.

#뚜껑이_열린건_시나리오만이_아니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이후 환경단체의 비판이 잇따랐다.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이후 환경단체의 비판이 잇따랐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첫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도 동시에 뚜껑이 열렸습니다. 시민사회도, 환경단체도, 기업들도, 저마다 입장은 다르지만 한목소리로 “말도 안 된다”고 외쳤죠. “3가지 시나리오 모두 탄소중립을 지향한다”는 위원회의 설명에도 열린 뚜껑은 좀처럼 닫히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위원회가 발표한 3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2050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1안 1억 5390만톤, 2안 1억 3720만톤, 3안 8260만톤입니다. '3안은 0이라면서?'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탄소중립'이라는 표현 자체는 '이산화탄소를 아예 뿜어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흡수할 수 있는 만큼만 뿜어낸다'는 것이죠. 그래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총배출량'이라는 개념과 '순배출량'이라는 개념을 이용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통상 배출량을 이야기할 때엔 '총배출량'을 기준으로 이야기했고요. 하지만 앞으로 각종 흡수 및 저감 기술들이 개발됨에 따라 순배출량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전체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뺀 '순배출량' 기준, 1안은 여전히 2540만톤, 2안은 1870만톤의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상태입니다. 오직 3안 만이 '순배출 제로'를 이야기하는 시나리오죠.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더니 진짜 탄소중립은 3안뿐인가' 싶어지는 내용입니다. 다만 1안과 2안이 '탄소중립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1, 2안의 잔여 순배출량은 파리협정이 허용한 해외 조림이나 국제 탄소시장을 통해 감축할 수 있다”는 거죠. 쉽게 말해, 2540만톤(1안 기준)의 온실가스를 흡수할 만큼의 나무를 우리가 해외에 심거나 그만큼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국제시장에서 사 오면 된다는 겁니다. '기술적 의미'의 탄소중립은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수천만톤의 온실가스를 이렇게 '해외 찬스'로 돌린다면 국제사회에서의 기후위기 리더십은 기대하기 어려울 테죠.

위원회는 “EU도 영국도 시나리오에서 일부 잔여 배출량을 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열린 뚜껑을 닫기엔 역부족인 듯 보입니다. 각 시나리오별 주요 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_순한맛(?)_1안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시나리오 1안에 따르면, 2050년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로 남습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현재 정상 가동 중인 발전기의 조기 중단을 위해선 법적 근거와 정당한 보상방안 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이 전제의 달성이 어려운 경우를 가정해 시나리오에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설사 석탄발전을 지속하더라도 CCUS(탄소포집·저장) 기술로 '순배출 0'을 달성할 것이라고도 덧붙였죠. 이 CCUS에 대해선 후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만, 일단 '1안에선 석탄발전이 부득이하게 들어가 있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설명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비중에서 전환(에너지) 다음으로 가장 큰 양을 차지하는 산업부문은 2018년 기준 2억 6050만톤을 뿜어내던 것에서 2050년 5310만톤으로 배출량을 줄이게 됩니다. 산업부문 감축의 핵심은 다배출 업종인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분야에 달려있습니다. 철광석에서 철을 만들어내는 데에 쓰이는 유연탄을 수소로 바꾸는 '수소환원제철'을 모든 철강산업에 100% 적용하고,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도 석탄의 비중을 줄이고 원료를 재활용하는 등의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석유화학산업 역시 연료 측면에서나 원료 측면에서나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공정상의 열 손실을 최소화하고 오래된 설비를 고효율의 신형 설비로 교체하는 등 지금의 공장 및 산업단지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당연하고요.

시나리오 발표 직후 쏟아진 재계의 반발을 봤을 때, 여러 부문 중 가장 큰 폭의 감축을 하게 된 것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감축량으론 전환부문에 미치지 못하며(전환 -2234만톤, 산업 -2074만톤), 비율로는 수송부문에 미치지 못합니다(수송 -88.6%, 산업 -79.6%).

#보통맛(?)_2안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2안의 경우, 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1안과 더불어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서 지금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시나리오에 해당합니다. 다만 발전에 있어 1안과 달리 2050년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를 포함한 모든 석탄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게 됩니다. LNG 발전도 주요 발전원이 아닌 '유연성' 측면에서 가동을 간헐적으로 하는 '백업 자원'의 기능만을 하게 되죠. 그리하여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58.8%로 1안보다 소폭 높아집니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재 2억 6960만톤에서 3120만톤으로 줄어들고요.

산업부문은 공교롭게도 1안과 다른 바가 전혀 없습니다. 1안보다 더욱 강화한 시나리오라는 설명이 무색하죠. 수송부문 역시 1안과 내용이 동일합니다. 2050년 기준 전기차와 수소차의 보급률은 76% 이상이어야 하고, 기존 내연기관 차량들은 모두 기존의 휘발유나 경유가 아닌 바이오연료와 같은 대체 연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기차도 달라집니다. 현재 일부 남아있는 디젤 열차를 모두 전기나 수소 열차로 바꾸고, 다른 운송수단보다 탄소 저감에 소극적이었던 항공과 해운 역시 바이오 연료의 이용을 확대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금의 9810만톤에서 1120만톤으로 90% 가까이 줄어들게 됩니다.

#매운맛(?)_3안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끝으로 3안입니다. 발전부문은 자체적으로 100% 탄소중립을 달성합니다. 석탄발전소뿐 아니라 1, 2안에서 일부 남은 LNG발전소도 모두 가동을 멈춥니다. 물론, 열 공급을 위해 LNG가 일부 사용되긴 하지만요. 이는 재생에너지의 대대적인 확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전체 발전비중의 70.8%를 재생에너지가 책임집니다. 무탄소 신전원이 나머지 21.4%를, 원자력발전이 6.1%를 맡게 됩니다.

산업은 이번에도 1, 2안과 똑같습니다. 전환부문이 '배출 제로'를 달성하고, 수송부문도 배출량을 97% 줄이는데 말이죠. 이를 위해 전기차의 보급률은 80%를, 수소차 보급률은 17%를 넘어섭니다. 기존 내연기관은 '퇴출'이 아닌 3%로 일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입니다.

#무언가_이상함에_뜯어보니
이렇게 각각의 시나리오가 제시하는 미래를 살펴보면 의아한 부분이 나타납니다. 1~3안을 동시에 놓고 살펴보겠습니다.

..

위원회에 따르면, 1안은 “기존의 체계와 구조를 최대한 활용, 기술발전과 원료 및 연료의 전환을 고려한 시나리오”입니다. 변화의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2안의 경우 “1안에 더해 화석연료 이용을 줄이고, 우리의 생활양식 변화를 통한 추가 감축을 반영한 시나리오”입니다. 3안은 “화석연료 이용을 과감히 줄이고 공급하는 수소를 모두 그린수소로 바꾸는 시나리오”이고요.

뉘앙스 자체는 1, 2안이 '이 정도면 우리의 노력으로 그나마 가능한 안'이고, 3안은 '힘들지만 이상적인 안'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내용들을 따져보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 된 일인지, 산업부문의 배출량은 3가지 안에서 공히 5310만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에 비용을 물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고, 이어 미국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담긴 법안이 발의된 상태죠. 배출량 5310만톤이면 수출에 별다른 타격이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을까요. 아니면 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는 기업 임원들이 '더는 안 된다'며 사수한 '콘크리트 저지선'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발전부문(전환)은 얼핏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부문이구나' 싶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찬가지로 여러 의문이 남습니다. 3가지 안 가운데 현재의 기술과 가장 접점이 많다는 1, 2안인데 정작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동북아그리드'를 통한 전력 공급이 시나리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3안에선 동북아그리드는 '논외'로 하고 있습니다.

동북아그리드가 에너지뿐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고립된 우리나라에 유용한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현재 우리가 전기를 생산해내는 주요 발전원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연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인다 하더라도 '유연성'과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버퍼'는 필수적입니다. 주변 나라들이 서로 국경을 넘나드는 그리드(에너지망)를 통해 전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EU가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죠. 허나 이 역시 아직은 가정 혹은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연료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료전지를 통한 발전량은 3안(17.1TWh)이 아닌 1안과 2안(121.4TWh)에서 가장 많습니다. 수소 연료전지를 이용한 자동차를 전면에 내세우며 '수소경제'를 외쳤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3안에서 재생에너지 다음으로 가장 비중이 높은 것, 정작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무탄소 신(新)전원'입니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이미 해외에선 진행 중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각 시나리오별 다양한 발전원 간의 전원믹스에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은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포집(포집 후 활용, 포집 후 저장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탄소 포집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현재 기술과 가장 가깝다는 1, 2안이 상정하고 있는 탄소포집활용 및 저장량은 각각 9500만톤, 8500만톤으로 3안의 5790만톤을 압도합니다. 분명, 탄소배출량을 따져봤을 땐 1안이 가장 많고 3안이 가장 적다 보니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온갖 포집 기술이 3안에 몰려있겠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 현실은 정반대였던 겁니다. 위원회는 “3안의 경우, 최대 가용 저장량은 6000만톤이나 넷제로 달성을 위해 실제 필요한 양은 4250만톤”이라며 탄소 저장량이 줄어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만약, 1안과 2안처럼 탄소포집저장에 동일한 신뢰, 동일한 기대를 하고 있다면 이를 최대한 활용해 다른 부문을 조절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지금은 없는 기술'인 포집은 이렇게 대거 포함시킨 것과 달리 '지금도 있는 것'인 산림의 역할은 쪼그라들었습니다. 앞서 뉴스룸 보도와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에서도 자세히 전해드렸듯, 우리나라의 산림은 급격히 탄소흡수원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무의 개체수가 줄어들어서라기보다 '산림의 노령화'에 따른 일입니다. 이 때문에 생태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들은 더 오래 건강히 남아있을 수 있도록 관리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의 경우 적극적으로 수종 갱신에 나서야 하고요.

하지만 시나리오에선 1~3안 모두 공히 2400만톤 안팎밖에 흡수하지 못 하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산림의 영급(나이) 구조 개선, 숲가꾸기 등으로 흡수능력을 강화한다”는 위원회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수치입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산림 조성을 거의 포기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동상이몽_탄소중립위원회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이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 안을 발표했다.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이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 안을 발표했다.

에너지의 전환은 문명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해왔습니다. 인류가 불을 지필 수 있게 되었을 때,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을 발명했을 때,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전에 본 적 없던 세상에서 살아가게 됐죠. 탈탄소, 탈화석연료라는 또 한 번의 큰 전환을 앞두고 위원회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위원장 2명을 포함해 총 97명의 위원의 면면은 다양합니다. 고위 공직자, 전문가, 학자, 기업인, 시민단체 대표 등등… 위의 3가지 시나리오를 보노라면,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얽힌 이들이 고민한 결과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그러한 '서로 다름'을 다 담아내느라 상충하는 내용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졌지만요.

탄소중립 선언 이후 처음으로 미래상을 보여주는 시나리오가 나왔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만족하기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너무도 짧습니다. 이 3가지 안을 갖고 9월까지 의견을 수렴해 10월에 확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단 2개월. 위원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시나리오는 향후 검토 및 논의를 위한 자료로써 가정과 전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다”고요. 열린 결말을 보여준 위원회의 개방성에 박수를 쳐야 할지, 대전환을 앞둔 중차대한 결정에 무책임함으로 일관했다고 비판을 해야 할지. 2개월 후엔 분명해지길 바라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뚜껑 열린 탄소중립, 결말만 담긴 시나리오…동상이몽 결정판?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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