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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쿠팡에서 일한 뒤 쿠팡 안쓴다" 물류센터 노동자의 기억

입력 2021-06-28 14:28 수정 2021-06-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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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화재가 났던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초기 진압 모습. [사진=연합뉴스]지난 17일 화재가 났던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초기 진압 모습. [사진=연합뉴스]
"쿠팡에서 일한 뒤엔 쿠팡 안 씁니다. 안에서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걸 알아서…"

지난 17일 불이 났던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20대 대학생 노동자 A씨의 말입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던 A씨는 쿠팡물류센터에서 약 10개월간 일했습니다. A씨에게 '쿠팡의 핸드폰 반입금지'에 대한 생각을 물으려 전화했는데 A씨는 JTBC에 쿠팡에 대한 '이중적 감정'을 털어놨습니다.

"쿠팡 일자리 고맙지만, 안 쓴다"
A씨는 먼저 쿠팡에 대해 '고맙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자신에게 일자리를 줬고, 야간 수당 등이 더해져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꽤 넉넉한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밥도 주고 월급 정산도 깔끔하다고 했습니다. A씨는 "바쁜 일정이 마무리되면 다시 쿠팡에 돌아갈 계획"이라 말했습니다. 핸드폰도 없는 상태에서 불이 날까 두렵지만, 다시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쿠팡물류센터 노동조합이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JTBC뉴스룸 캡처]지난 7일 쿠팡물류센터 노동조합이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JTBC뉴스룸 캡처]
하지만 쿠팡에 대한 A씨의 기억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속도가 늦다"거나 "또 화장실을 갔냐", "일하기 싫으냐"며 반말하고 닦달하는 관리자. 현기증이 난다며 구석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 출근하면 당연한 듯 휴대폰을 걷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황당함까지.

A씨는 "쿠팡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쿠팡에서 일한 뒤부터는 쿠팡을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로켓배송을 위해 안에서 많은 동료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씨는 "솔직히 쿠팡만한 알바를 찾긴 어렵다"며 "'젊으니까 괜찮겠지''죽어도 쿠팡에서 쓰러져 죽자'는 생각으로 출근한다"고 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박모씨가 JTBC와 인터뷰하던 모습. [JTBC뉴스룸 캡처]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박모씨가 JTBC와 인터뷰하던 모습. [JTBC뉴스룸 캡처]
"쿠팡엔 절박한 노동자들 많아"
올해 4월까지 수도권의 한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박모씨도 A씨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박씨는 "쿠팡에는 쿠팡이란 직장을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절박한 노동자들이 많다"며 "휴대폰을 내라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분들"이라 말했습니다. 쿠팡의 강도 높은 노동 환경을 버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박씨는 또한 "쿠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켓배송의 마감을 맞추는 일"이라며 "안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이 이렇게도 빨리 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했습니다. 박씨는 "쿠팡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효율이라 노동자의 인권이나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뒷쳐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이달 초 출범한 쿠팡물류센터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직장을 잃을까 쿠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두려움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쿠팡의 고용 증가 그래픽. [그래픽=쿠팡]지난해 쿠팡의 고용 증가 그래픽. [그래픽=쿠팡]
쿠팡의 고용, 쿠팡의 노동
쿠팡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꼽힙니다. 지난해 9월과 11월 쿠팡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국민연금 가입자 수를 기준으로 쿠팡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에서 고용을 가장 많이 창출한 '고용 빅3 기업'에 올랐습니다.

쿠팡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1만 2277명을 새로 고용했는데 이는 같은 시기 국내 500대 기업이 줄인 일자리보다도 400여명 가까이 더 많은 숫자입니다. 일자리의 '질'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양적 측면에서 쿠팡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이란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또한 이런 일자리를 통해 많은 노동자가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근무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의 모습. [JTBC뉴스룸 캡처]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근무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의 모습. [JTBC뉴스룸 캡처]
하지만 쿠팡에서 일하며 쿠팡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쿠팡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을 드러냅니다. 쿠팡 화재 이후 SNS에서 번져가는 쿠팡 불매운동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쿠팡의 성장은 지속 가능할까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20대 노동자 장덕준씨의 어머니는 아직도 전국을 순회하며 쿠팡을 비판합니다. 지난해 2월 장씨의 산재가 인정됐지만 장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산재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쿠팡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기념 '오프닝 벨'을 울린 쿠팡 경영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사진=쿠팡]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기념 '오프닝 벨'을 울린 쿠팡 경영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사진=쿠팡]
쿠팡이 힘들어도 다시 쿠팡에 돌아갈 것이란 A씨에게 지난 3월 뉴욕증권거래소의 개장을 알리며 '오프닝 벨'을 울렸던 김범석 의장의 모습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A씨는 "쿠팡은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준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그래서 쿠팡에 일하면서도 쿠팡이 지속 가능할지,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쿠팡 화재는 쿠팡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을 재점검해야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쿠팡을 비롯한 IT기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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