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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점차 옥죄어오는 탄소 감축 압박…탈석탄만으론 택도 없다?

입력 2021-05-24 09:32 수정 2021-06-26 22:4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79)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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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79)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1/6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압박이 전방위로 거세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향해 외교적 측면으로 가해지는 압박은 시작한 지 오래죠. 지난 3월, 67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유엔 퇴짜 맞은 감축목표〉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의 쓴소리를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어 지난달 75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투자된 국민연금, 돈다발 쌓으면 성층권까지〉에선 미국과 영국, EU 등이 한국 정부에 탈석탄을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을 알려드리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아직 탈석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탈화석연료 압박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점차 옥죄어오는 탄소 감축 압박…탈석탄만으론 택도 없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 18일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 시점으로 내세운 2050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분야에 있어 어떤 노력들이 기울여져야 하는지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2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만, 당장 우리나라에 해당하는 내용을 꼽자면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① OECD 국가의 경우 2035년까지 발전 부문에서 화석연료를 퇴출,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② 석탄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화석연료를 캐내는 행위는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③ 재생에너지는 대대적으로 빠르게 확대되어야 한다. 당장 이 3가지만 보더라도 순식간에 충격과 공포가 몰려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는 마당에 당장 15년 안에 발전 부문의 탈석탄도 아니고 아예 “화석연료를 퇴출,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니.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는 호주 바이롱에 석탄광산을 개발하겠다며 광산 개발을 불허한 현지 정부기관과 소송전에 나서는가 하면, 민간기업인 SK E&S는 현지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호주 티모르 해역에서 LNG 가스전 개발을 추진하는 마당에 “화석연료를 캐내는 행위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니. 제아무리 재생에너지 확대가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더라도(물론 목표 자체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무색하게 낮지만)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니. 탄소중립 레이스에서 한 번 뒤처지기 시작했더니 점점 그 갭이 감당 어려울 만큼 벌어지는 것인가 우려될 정도입니다.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보고서 (자료: IEA)'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보고서 (자료: IEA)


세부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IEA는 여타 글로벌 환경단체와 같은 '친환경적'인 곳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나리오가 결코 '환경만 생각해 시민사회나 기업, 정부에 지나치게 가혹한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1.5도 보고서의 주 저자인 조리 로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기후변화환경연구소 연구 책임자는 “IEA가 제시한 이번 로드맵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데, 시나리오에서 상당 부분을 바이오에너지와 CCS(Carbon Capture Storage, 탄소포집저장)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을 정도였죠. 바이오에너지의 경우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친환경적으로 느껴지지만, 탄소배출은 결코 제로가 될 수 없고, CCS의 경우 아직 상용화와는 거리가 먼 '미래의 희망 사항'이니까요.

국가 단위 탄소중립 선언 현황 (자료: IEA)국가 단위 탄소중립 선언 현황 (자료: IEA)


최근 여러 언론 보도나 정부의 정책 발표 등을 통해 기후위기,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탄소중립 선언을 한 거야?' '괜히 우리나라만 앞서가는 것 아냐?' 같은 질문 혹은 의심 역시 그만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는 내용 역시 이번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탄소중립 선언에 나선 나라들을 따져보면 전세계 인구로는 약 40%, 탄소배출량과 GDP로는 70%를 넘는 규모라고 말이죠.

경제적인 측면에 강한 IEA인 만큼, 탄소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산화탄소의 톤당 가격은 2025년 75달러에서 2030년 130달러, 2040년 205달러, 2050년 250달러로 급격하게 치솟을 전망입니다.

이산화탄소 가격 전망 (자료: IEA)이산화탄소 가격 전망 (자료: IEA)


'아니 무슨, 누가 탄소에 값을 매기냐'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미 세계 각국에선 온실가스에 가격을 매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지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바로 그 예입니다. 탄소 배출을 강제로 금지할 수 없는 만큼 가격이라는 요소를 통해 감축을 유도하는 것이죠.

지금이야 이를 국가 내에서만 반영하고 있습니다만 EU와 미국은 탄소의 '관세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품 혹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뿜어냈는지를 따져서 수출입 과정에 관세처럼 부과하겠다는 겁니다. 당장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는, 특히나 철강과 자동차 등 제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높은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탄소 배출 시나리오. 초록색은 한국 등 OECD 국가들, 연두색은 그 외 국가들을 의미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탄소 배출 시나리오. 초록색은 한국 등 OECD 국가들, 연두색은 그 외 국가들을 의미 (자료: IEA)


IEA는 이어 2050년 넷 제로, IPCC가 권고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 1.5℃ 이내'를 달성하려면, 탄소 배출량이 어떻게 줄어들어야 하는지도 따져봤습니다. 그래프의 기울기는 2030~2040년까지 급하다 차츰 완만해집니다.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처음엔 그나마 감축이 쉬운 편이지만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실가스 걱정 없이 뿜어내던 시절, 배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굵직한 부문부터 해결하다 보면 감축 초기엔 줄어드는 폭이 크겠지만 넷 제로 목표 달성을 앞두고서는 정말 세세한 곳곳에서 쥐어짜 내듯 줄여야 간신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탄소 배출량을 이렇게 가져가기 위해선 각 분야별로 어떤 변화가 이뤄져야 할까요.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분야별 탄소 배출 시나리오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분야별 탄소 배출 시나리오 (자료: IEA)


당장 코앞의 2030년까지 발전 분야의 경우 지금보다 60%, 수송과 산업 분야의 경우 지금보다 20% 이상 줄여야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 기준이 아닌 지구 전체 기준의 시간표에 따른 결과입니다. OECD 국가의 경우 이보다 더 감축 속도가 빨라야 하는 상황이고요. 각 분야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선 추후 연재에서 보다 상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로벌 환경단체뿐 아니라 IEA마저 한국이 얼마나 즉각적이고도 신속, 과감한 감축에 나서야 하는지 과학적 근거를 내놓았습니다. 정부 또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고요. 오는 30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녹색성장 및 글로벌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 정부와 산업계, 시민사회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이 정상회의엔 우리나라가 석탄발전소를 짓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 두 나라(인도네시아, 베트남)도 참석합니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시민사회가 P4G를 계기로 이들 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와 어떤 공동 선언을 할지도 관건입니다. 파리협정을 이끌어낸 유엔사무총장을,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IPCC를 이끄는 의장을 배출한 나라, 국제사회에 '푸른 하늘의 날'을 제정하자고 나서 이를 통과시킨 나라이기에 국제사회의 기대치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계획이나 선언이 아닌, 감축의 행동을 보여줄 때이니까요.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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