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1만 3천명 '조기사망', 피해액 58조원…국내 석탄발전소 피해 따져보니

입력 2021-05-03 09:32 수정 2021-05-03 10:0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76)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76)

국내외 할 것 없이 탈석탄에 대한 요구는 거세지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겐 멀게만 느껴졌던 '지구를 살리자'는 이유뿐 아니라 실제 코앞의 경제적 문제를 이유로도 곳곳에서 탈석탄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죠. 석탄이 좌초자산이 되고, 석탄에 들어간 돈이 매몰비용이 됐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일찍 이 목소리가 커졌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이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지구도 지키고 지갑도 지켰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질 여유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와 해외에선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어지고 있으니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1만 3천명 '조기사망', 피해액 58조원…국내 석탄발전소 피해 따져보니

얼마전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우리나라가 석탄발전소로 입은 피해와 앞으로 입게 될 피해에 대해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종류의 건강 피해를 입었는지, 그로 인해 얼만큼 비용이 발생했는지 따져본 겁니다. 대기확산모델과 화학수송모델, 인구데이터와 질병 발생률 통계 등 다양한 데이터가 투입됐습니다. 이를 분석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석탄발전으로 인한 피해는 처음으로 구체화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500MW급 이상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한 1983년부터 지난 연말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이용함으로써 발생한 사회적 비용은 160억달러, 우리 돈 약 17조 8천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인명피해도 상당했습니다. 9500명에서 많게는 1만 3천명이 조기사망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눈으로_보는_오염물질

 
석탄발전소로 인한 대기오염 시뮬레이션 결과. (좌측부터) 초미세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농도 (자료: CREA)석탄발전소로 인한 대기오염 시뮬레이션 결과. (좌측부터) 초미세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농도 (자료: CREA)


석탄발전소에선 모두가 아시다시피 다량의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이 배출됩니다. 이 물질들은 초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물질이기도 하죠. 석탄발전소에서 비롯된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수도권과 충청권, 호남권. 고농도 때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흔히 접하는 '서쪽지역' 말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총 12곳의 석탄발전소는 해마다 4만 5400톤의 이산화황과 4만 8100톤의 질소산화물, 3천톤의 미세먼지를 뿜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건설중인 4곳(7기)까지 추가할 경우, 해마다 전국의 석탄발전소에선 5만 5300톤의 이산화황과 5만 6500톤의 질소산화물, 4700톤의 미세먼지가 나올 전망이고요. 이쯤되면, 비단 온실가스만이 문제가 아닌 셈입니다.

배출량 자체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면, 농도는 어떨까요. 발전소 인근 34㎢에 거주중인 5800명의 주민들은 시간당 최고 200㎍/㎥의 이산화질소에 노출됩니다. 이산화황의 경우 더 심각합니다. 발전소 인근 140㎢에서 주민 2만 3천명이 시간당 최고 211.267㎍/㎥의 이산화황 농도를 겪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세먼지와 이를 유발하는 물질 말고도 우리 인체에 해로운 물질은 더 있으니까요.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는 석탄발전소로 시민들이 수은에 노출될 위험성도 지적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에 따른 연간 수은 퇴적량 (자료: CREA)석탄화력발전소 가동에 따른 연간 수은 퇴적량 (자료: CREA)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해마다 600kg의 수은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이중 절반은 땅과 담수 생태계에 쌓이게 되고요. 보고서는 이중 135kg 가량의 수은이 농경지에 쌓이게 된다며 이를 통해 한국인의 주식인 쌀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논에 있던 무기수은이 메틸수은(유기수은)으로 바뀌어 먹이사슬을 통해 궁극적으론 우리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게다가 석탄화력발전소가 해안가에 위치한 만큼, 이는 연근해어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연간 1핵타르의 공간에 125mg의 수은이 쌓일 경우 어업에도 위험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의 지도에선 이 수치를 넘는 지역, 짙은 파랑을 넘는 곳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그 면적은 2700㎢에 달하고, 영향을 받는 인구수만도 37만 6천명에 이릅니다.

#숫자로_구체화하는_인명피해
2019년 기준,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자의 수는 연간 716명, 최대 987.3명에 이르는 것으로 들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그 피해 규모가 연간 10억 3370만달러, 최대 14억 427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해마다 수백명의 사람이 조기에 숨지고, 1조 6천억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1만 3천명 '조기사망', 피해액 58조원…국내 석탄발전소 피해 따져보니


이러한 피해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기사망자의 약 45%가 경기도(210.3명, 최대 290.2명)와 서울(116.6명, 최대 160.8명)에 집중된 겁니다. 가장 많은 수의 석탄발전소가 모여있는 충청남도(39.9명, 최대 55.3명)보다도 훨씬 많은 수입니다. 연구센터는 “이는 석탄발전소의 영향이 해당 지역에만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서울과 인천, 부산 등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들은 지역 내에 석탄발전소가 없다 하더라도 인근 석탄발전 밀집지역의 영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조기사망자의 수뿐 아니라 경제적 피해 역시 수도권에 집중됐습니다.

 
..

지역별 석탄발전소로 인한 연간 경제적 피해액은 전체 피해액으로도 인구 1인당 피해액으로도 모두 경기와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3억 310만달러(1인당 496달러), 서울은 전체 1억 6840만달러(1인당 400달러), 경남 7920만달러(1인당 368달러) 순이었습니다.


#2021년부터_2054년까지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점입니다. 보고서엔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그래프가 담겼습니다. 개별 발전소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죽을지, 해마다 얼마나 많은 경제적 피해를 입힐지 그래프로 만든 겁니다.

 
국내 모든 석탄화력발전소가 종료되는 2054년까지 연간 사망자 수 (자료: CREA)국내 모든 석탄화력발전소가 종료되는 2054년까지 연간 사망자 수 (자료: CREA)


현재 건설중인 석탄화력발전소가 30년의 수명을 다 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에선 탄소중립 목표 시점인 2050년을 넘어 2054년까지 석탄발전소가 가동됩니다. 석탄발전의 과거 40년간 9500명, 최대 1만 3천명이 석탄화력발전으로 숨졌다면 앞으로 30년간은 이보다 훨씬 많은 1만 6천명, 최대 2만 2천명이 추가로 숨질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결과입니다. 70여년의 석탄발전사(史)가 남긴 인명피해 규모는 2만 6천명, 최대 3만 5천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개별 석탄발전소가 만드는 사망자 수를 계산한 만큼, 어떤 발전소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낼지 역시 결과에 담겼습니다. 바로 충남 당진에 위치한 당진 석탄화력발전소입니다. 총 10기에 달하는 대규모 발전소인 만큼 그로인한 피해도 컸습니다. 특히, 당진과 영흥, 태안, 보령의 석탄발전소로 인해 조기에 숨진 사람의 수가 지금까지 석탄발전소로 인한 전체 조기사망자 수의 60%에 달한다는 것이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의 분석입니다. 그 피해가 가장 높아지는 시점은 바로 3년 후인 2024년, 바로 수명을 다한 석탄화력발전소들과 새롭게 가동하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교차하는 시점입니다.

 
국내 모든 석탄화력발전소가 종료되는 2054년까지 연간 경제적 피해규모 (자료: CREA)국내 모든 석탄화력발전소가 종료되는 2054년까지 연간 경제적 피해규모 (자료: CREA)


조기사망을 비롯한 각종 건강 피해는 곧 경제적 피해로 이어집니다. 1983년부터 2020년까지 석탄발전에 따른 대기오염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16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또, 2021년부터 2054년까지 추가로 210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이 경제적 피해의 68%는 당진, 영흥, 태안, 보령의 석탄발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이렇게 인적·물적 피해는 과거 40년보다 앞으로의 30년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분명 시간도 짧고, 과거 대비 신규 석탄발전소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효율과 개선된 오염물질 저감장치를 갖췄을텐데 말이죠. 연구센터는 “수도권이나 영호남에 위치한 발전소 인근 대도시들은 매우 인구밀도가 높다”며 “인구 측면으로나 GDP 측면으로나 석탄발전소 발(發) 오염에 따른 피해가 향후 더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람도 돈도 점차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그 피해 역시 커진다는 겁니다.

이러한 숫자들은 정부의 탈석탄 정책이 '신규 석탄 투자 중단'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격적일 만큼 큰 숫자들이지만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는 “매우 보수적으로 추산한 것”이라며 한국정부가 탈석탄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죠. 연구센터는 비단 정부뿐 아니라 '석탄 투자 큰손' 국민연금을 향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라우리 뮐비르타 선임 분석가는 “이번 연구는 한국이 석탄 투자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에 나서야 할 때”라고도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석탄 미련'에 대한 경고는 나라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석탄에 볼모로 잡힌 것은 과거의 투자금과 어른들의 목숨만이 아닙니다. 미래를 위한 나랏돈과 시민들이 낸 연금,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목숨도 볼모로 잡혀있는 셈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