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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글로벌 탄소중립 레이스의 시작…초반 판세는?

입력 2021-03-22 09:32 수정 2021-03-22 09:3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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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70)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다섯 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관계 부처는 발빠르게 많은 보도자료들을 내놨고, 여러 계획들이 공개됐거나 준비되고 있죠. 각 지자체는 하나, 둘 탄소중립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그린'을 내세운 여러 프로젝트를 발표하는가 하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있습니다. 얼핏 분주해 보이는 이 모습, 이러한 움직임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걸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글로벌 탄소중립 레이스의 시작…초반 판세는?


탄소중립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에,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에 있습니다. 비단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을 넘어 각종 장비와 설비 등… 석유를 태워 움직이던 것들을 전기로 움직이는 것으로 바꾸고, 석탄으로 만들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일 말입니다. 이를 얼마나 잘 추진하느냐에 따라 탄소중립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죠.

재생에너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글로벌 NGO '국제재생에너지정책네트워크(REN21)'는 지난 18일 '세계 도시 재생에너지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지구촌 곳곳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시 단위로 평가한 겁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인 55%가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의 4분의 3이 도시에서 일어날뿐더러 마찬가지로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5%가 도시의 몫입니다. 국가 단위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실질적인 변화와 성과를 살펴보기엔 도시별 분석이 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계 도시 재생에너지 현황 보고서 (자료: REN21)세계 도시 재생에너지 현황 보고서 (자료: REN21)


#의미있는_숫자들
2020년은 한국뿐 아니라 지구 차원에서 '탄소중립으로의 여정'이 출발한 해였습니다. 전 세계 1852개 도시가 기후 비상 선언을 했습니다. 1327곳은 자체적인 재생에너지 목표나 정책을 준비한 상태고요. 1327개 도시의 규모는 얼마나 큰 것일까요. 인구수로는 최소 10억명, 전 세계 도시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규모입니다. 단순히 '심각하다'고 비상 선언을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체적인 탄소중립 선언을 한 도시도 796곳에 달하고요.

또한,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설정한 도시의 수는 834곳에 이르고, 이중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계획을 세운 곳은 617곳이나 됩니다. 도시 및 지역 단위로 제시된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만도 1088개에 이릅니다. 이중 135개 목표는 이미 달성된 상태이고, 전체 60%에 달하는 657개가 2030년 이전을 달성 시점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43곳의 도시에서 화석연료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24곳에선 이러한 내용의 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내연기관 자동차만을 금지하는 것에 그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난방에서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도시 전체의 '탈 화석연료'를 의미합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시점별 현황 (자료: REN21)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시점별 현황 (자료: REN21)


탄소중립이나 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은 큰 폭의 변화는 아니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을 세운 도시는 최소 1만 500곳에 달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북미나 유럽에서만 목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댓글창에 '원흉'이라며 소환되는 인도와 중국도 위의 흐름에 적극 동참한 상태죠.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 역시 '기후 악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전 지구적으로 '공공의 적'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인도와 중국은 도리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감축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이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_한국은?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분야가 있었습니다.

"Municipal governments in the Republic of Korea have dominated the number of climate emergency declaration issued in the region, representing 228 out of the 288 as of 2020."
"한국의 지방 정부들은 2020년 아시아 지역 기후 비상 선언 선포 건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전체 288건 중 한국의 선언이 228건이다."

한국이 지역 단위 기후위기 선언 행렬을 이끌고 있는 겁니다. 위의 '한국발 선언' 228개 중 226개는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의 비상 선언에 해당합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앞서는 분야는 또 있었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목표나 정책을 수립한 도시가 1327곳, 인구로는 세계 도시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규모였는데, 한국의 경우 5곳(서울과 인천, 세종, 수원, 당진)이 이를 준비한 상태입니다. '5곳일 뿐인데 앞선다고 할 수 있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인구로는 한국 인구의 55%에 해당하는 260만명을 차지하는 규모입니다.

 
국가별 재생에너지 목표와 도시별 전기차 보급 목표 (자료: REN21)국가별 재생에너지 목표와 도시별 전기차 보급 목표 (자료: REN21)


전기차 보급에 있어서도 앞서나가는 편에 속했습니다. 국가 단위의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전기차 보급 목표를 설정한 세계 67개 도시 가운데 두 곳이 우리나라의 도시였던 거죠. 단순히 '보급 목표'만 세운 것이 아니라 아예 '100% 전기차'로의 전환을 선언한 해외 도시들도 있었지만요. 수송부문을 중심으로 배터리 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차의 보급과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REN21은 보고서에서 "유럽은 여전히 지역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있어 가장 '핫한 지역'이었지만, 2020년에 접어들어 다른 많은 나라들도 이러한 트렌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남아프리카, 미국이 대표적"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물론, 아쉬운 측면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목표를 세우고 건물들에 적극적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이 너무 적은 겁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가 전기를 만드는 데에만 쓰이는 것으로 여겨지는 점도 앞으로 달라져야 할 부분입니다.

 
재생에너지 분야별 정책 (자료: REN21)재생에너지 분야별 정책 (자료: REN21)

전 세계 799개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1107개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의 정책이 얼마나 더 세분화, 고도화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발전뿐 아니라 수송과 냉난방, 건축물의 자체적인 전력 및 냉난방 공급 등 다양한 분야로 이용되고 있고, 이를 보조하는 정책이 각 분야별로 시행중이죠.

정책 또한 규제 일변도가 아니었습니다. 정책의 종류를 살펴보더라도 규제보다 촉진책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시 자체적으로 재정 및 세제 정책도 마련되어 있죠. 앞서 68번째 연재글, 〈[박상욱의 기후 1.5] '내로남불' 국회만? 시의회도 마찬가지〉에서 설명드렸던 서울시의회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서울시 시 금고의 선정기준에서 탈석탄 투자 실천여부를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 일부 개정안이 시의회 문턱을 못 넘고 보류중인 모습 말입니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도시인데, 정작 이를 이행하려는 움직임에선 주저하는 겁니다.

앞뒤가 안 맞는 듯 보이는 점은 또 있습니다. 분명 '비상 선언'엔 모든 기초자치단체가 참여했는데, 정작 탄소중립 목표를 세워 정책화한 곳은 서울과 당진, 단 두 곳뿐이었으니까요. REN21은 "이는 전 세계적으로 비교했을 때 적은 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이행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녹색전환연구소는 최근 '기초지자체 그린뉴딜 계획 실행력 진단 토론회'에서 지역 단위의 대응의 중요성과 한계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기초자치단체는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이 집행되는 현장일뿐더러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발굴하고 실행할 수 있는 만큼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녹색전환연구소의 설명입니다. 스스로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한 만큼, 그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도 당연히 중요하고요.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구소는 ① 기초지자체의 권한과 자원의 한계, ② 예산(정부사업 매칭 부담, 재난지원금 지출), ③ 제도적 장벽, ④ 공무원과 거버넌스 역량, ⑤ 온실가스 감축 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데이터 부족 등 다섯 개의 한계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로인해 지자체가 목표와 이행 기반을 모두 갖춘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이 계획만 수립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죠.

정부는 원대한 목표를 발표하며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정작 현장에선 이를 따라주지 못 하는 상황을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장 미세먼지 대응에 있어서도 정부가 운행차 규제와 각종 미세먼지 배출 단속 확대 등을 천명했던 몇 년 전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정작 현장 단속 인력이나 장비 확보는 지자체에게 떠넘기면서 그나마 여건이 나은 수도권을 제외하곤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요.

탄소중립 이행과 그린뉴딜 역시, 섬세한 정책 설계 없이는 마찬가지의 결과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국가 차원의 목표나 큰 그림을 그리는 일뿐 아니라 기초단체에 대한 지원 역시 동시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초단체는 맞춤형 정책의 아이디어들을 모아 광역단체와 정부에 전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제안해야 할 테고요. 단순히 탑-다운, 혹은 바텀-업 일방적인 방향에선 정책의 무게감도, 실현의 가능성도 보장할 수 없을 겁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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