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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군부 총에 동생 잃은 유리공장 미얀마 청년 "광주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입력 2021-03-11 11:00 수정 2021-03-11 11:04

"이주노동자들, 고국 걱정에 잠도 설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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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 고국 걱정에 잠도 설칠 정도"

지난 3일은 미얀마에서 '피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이날 하루에만 무고한 시민 최소 38명이 군경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어떻게 무기도 들지 않은 자기 나라 국민을 그렇게 죽일 수 있지?' 생각이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제게는 조금은 동떨어진 '국제 뉴스' 일 뿐이었습니다.

〈한국에도 미얀마 군부 폭압 피해자는 있다〉

그러다 탄조투 씨의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마킨 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외국인 대표와의 전화 통화 과정에서입니다. 미얀마 출신인 마킨 메이타 대표는 20년 전 한국으로 귀화했습니다.

●마킨 메이타 : 한국에 있는 미얀마 젊은이들이 군부 쿠데타 소식 때문에 정말 걱정이 많아요. 가족이나 친구가 혹시 위험해지지는 않을지. 잠도 설치고 밥도 잘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 청년들이 주로 공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어요. "집중해서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요즘 매일 말해요.
●기자 : 한국에 계신 미얀마 분 중에도 가족이 위험에 처한 분들이 계신가요?
●마킨 메이타 : 있어요. 얼마 전에 자기 사촌 동생이 시위 도중 군인 총에 맞아서 숨진 젊은이가 있어요.
 
마킨 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외국인대표 〈사진=마킨 메이타 대표 제공〉마킨 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외국인대표 〈사진=마킨 메이타 대표 제공〉

〈'인간 방패' 자청한 미얀마 젊은이들…군이 쏜 총알 2발에 스러졌다〉

주인공은 경기도 광주의 한 유리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26살 탄조투 씨.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지난 8일 늦은 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딴조투 씨와 화상 연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마킨 메이타 대표가 통역을 도와주었습니다.
 
 JTBC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 중인 탄조투 씨 〈사진=JTBC 뉴스룸 캡처〉 JTBC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 중인 탄조투 씨 〈사진=JTBC 뉴스룸 캡처〉

●탄조투 : 3일 오후 3시쯤 몽유와라는 도시에서도 역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어요. 교사들이 주로 있었고 21살인 제 사촌 동생은 맨 앞에서 방패를 들고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러다 군인이 총을 쐈고 제 사촌 동생은 배에 1발, 방광에 1발 맞고 죽었어요. 그날 이곳에서 동생을 포함해서 6명이 죽었다고 들었어요. 너무 마음이 슬퍼서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계속 울기만 했어요.
●기자 : 다른 가족들은 안전한가요? 매일 통화가 가능한 상황인가요?
딴조투 : 조금 전에 엄마와 통화했는데 "사촌 누나 부부도 군경에 잡혀갔다. 다른 남동생 하나도 잡힐까 봐 피해 다니고 있다"고 했어요.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걱정스러워요.

〈탄알에 구멍 뚫린 휴대전화...동생은 관 속에〉


 
숨진 사촌동생 장례식을 현지 사진 작가가 촬영한 사진 〈사진=탄조투 씨 제공〉숨진 사촌동생 장례식을 현지 사진 작가가 촬영한 사진 〈사진=탄조투 씨 제공〉
사촌동생이 지니고 있던 휴대폰에는 총탄 자국이 뚜렷하다. 〈사진=탄조투 씨 제공〉사촌동생이 지니고 있던 휴대폰에는 총탄 자국이 뚜렷하다. 〈사진=탄조투 씨 제공〉

그의 가족이 보낸 사진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속 사촌 동생은 관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사촌 동생이 지니고 있던 휴대전화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뚫렸습니다. (아래 사진)

〈광주의 역사와 닮은 미얀마〉

미얀마 시민들 사이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역사가 많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탄조투 씨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물어봐서 잘 알고 있다"며 "광주에서 희생자가 많았다고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탄조투 : 미얀마 사람들은 한 달 넘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어요. 광주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어요. 미얀마 내부의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의 상황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미얀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도요.

〈고국의 친구들에게〉

인터뷰를 마치면서 고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탄조투 : 우리 미얀마 국민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저희도 여기에서 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저희도 미얀마로 가서 같이 싸우겠습니다.
 
탄조투 씨의 메시지를 미얀마어로 작성했다.탄조투 씨의 메시지를 미얀마어로 작성했다.

마킨 메이타 대표와 딴조투 씨,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여러 사람이 주말마다 수원역 앞에서 피켓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켄 메이타 대표는 "지나가는 한국 시민들이 응원해줄 때마다 힘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수원역 앞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마킨 메이타 대표 제공〉수원역 앞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마킨 메이타 대표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소셜미디어에 "미얀마 국민들에 대한 폭력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민주주의와 평화가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오늘 5·18기념재단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합쳐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연대를 구성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미얀마 사람은 2만9294명(2019년 법무부)입니다. 3만 명 가까운 우리 이웃의 이 관심사가 '국제뉴스'로만 취급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가혁 기자(gawa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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