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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유치원을 정상화"…학부모들은 왜 화가 났을까

입력 2021-02-13 09:02 수정 2021-02-13 09:13

위험 노출된 원생들…육영재단, 조치 약속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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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노출된 원생들…육영재단, 조치 약속했지만

"이거 좀 제대로 써주세요. 저기 보세요. 아이들이 저 펜스 넘어서 버스 사이에서 논다니까요"

유치원을 취재진이 찾은 날,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가 한 말입니다. 학부모가 가리킨 펜스 뒤로는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탄원서만 이름 올린 학부모만 수십 명…이 유치원에 무슨 일이>

문제가 불거진 유치원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어린이회관 유치원입니다. 다른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데다, 아이들이 뛰놀 야외 공간이 많아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학부모들이 유치원 환경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지난해 말부터입니다. 지난해 동안 유치원 관련 복지가 하나둘씩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방과 후 이용하던 수영장이 일단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온 뒤 '나 수영장에서 놀다 왔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로 사랑받던 시설이었다고 합니다.

또 어느 순간부터 유치원 주변에서 강아지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놀던 수영장이 '애견 수영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눈썰매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강아지가 돌아다닌다고 해서 꼭 나쁜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강아지들이 돌아다니면서 오물이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또 등·하원 시간에 유치원 정문 앞 2~3m 앞을 강아지가 돌아다니다 보니, 학부모 처지에선 불안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취재진이 유치원을 찾았을 때는 덩치가 큰 강아지가 마침 유치원 정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큰 강아지 = 위험하다'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인 학부모들의 입장은 매우 달랐습니다.

<버스 사이에서 뛰노는 아이들>

가장 큰 안전 위협 요소는 유치원 바로 앞에 대형 버스 주차장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유치원 좌우로 대형 버스가 들어올 수 있는 주차장이 있는데, 대형 버스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계속 유치원 앞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 유치원은 세 차례 정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대형 버스가 오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은 버스 사이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이 사전에 받은 사진에는 눈이 오던 날, 아이들이 버스 사이를 오가며 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은 갑자기 뛰쳐나가는 등 예측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라며 "인솔 교사가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라고도 말합니다.

이 유치원은 특히 야외 활동이 다른 유치원보다 많은 편인데, 그만큼 지나다니는 버스와 아이들이 자주 마주칠 가능성이 큰 셈입니다. 게다가 주차장에서 시동을 끄고 있지 않은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도 큰 문제로 판단됐습니다.

이 밖에 올해부터만 5세 반 보조 교사 운영을 폐지하겠다는 통지가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등 학부모 처지에서는 갈수록 유치원 환경이 열악해진다고 볼 상황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문제는 돈…재단도 할 말이 있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재단의 주 수입은 원래 건물 왼편에 있던 결혼식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결혼식장이 문을 닫으면서 연 10억 이상의 수입을 잃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남는 부지에 대한 임대 사업에 나서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애견 관련 단체에 수영장을 넘겨주는가 하면, 대형 버스에 월 비용을 받고 주차 터를 제공해주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애초 결혼식장이 벌어들이던 만큼의 수입만큼은 나지 않는다는 게 재단의 입장이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19의 영향도 컸다고 털어놨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재단 관계자는 "결혼식장이 문을 닫지 않았으면 대형 버스에 주차장을 내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란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시정 약속한 재단…한시름 놓은 학부모들>

재단 측은 취재 뒤 JTBC에 문제가 된 사안을 시정하겠다는 태도를 전해 왔습니다. 우선 가장 안전에 위협이 되던 재단 우측 문화관 앞 주차장 버스를 모두 이동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반려견 시설을 찾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다른 출입구를 사용하도록 조치했다고도 전했습니다. 보조 교사 폐지 문제도 학부모의 의견을 받아들여 백지화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확인 결과, 재단 측은 주차장 한 곳에 모든 버스를 모으는 식으로 주차장 한 곳을 비웠고, 보도가 나간 뒤 반려견들이 유치원 앞을 지나다니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버스 주차장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재정난에 시달리는 재단으로서는 최선의 조치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 교육청 현장 확인이 이뤄지고 언론사가 취재에 나서기 전, 재단 측이 조금 더 학부모들의 말에 일찍 귀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해당 유치원이 예전의 우수한 교육 환경으로 하루빨리 되돌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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