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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해고 36년..."피해왔던 아픔과 현실을 뒤늦게 직면하고 있다"

입력 2021-02-12 09:02 수정 2021-02-12 10:20

희망뚜벅이 여정을 마치며해고노동자 김진숙이 전하는 연대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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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뚜벅이 여정을 마치며해고노동자 김진숙이 전하는 연대의 중요성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합니까."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걸어온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사진=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인터뷰를 위해 김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일, 도보 행진 32일차였습니다. 애당초 함께 걸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행진을 따라오는 시민들도 버거워할 정도로 김씨의 걸음이 무척이나 빨랐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빨리 걷느냐에 대한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 복직을 요구하면서 46일째 단식하는 분들이 계세요. 제가 그분들의 단식을 한시라도 빨리 풀기 위해서 마음이 급합니다."

이날도 많은 시민이 도보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이백여명의 시민들이 김씨와 함께 걸었습니다. 행진을 잠시 쉬는 동안에도 김씨는 자신을 찾은 시민들의 사연을 듣고 공감하며 위로했습니다. 처음엔 세 명이 시작했던 도보 행진은 연대를 통해 어느새 수백명의 공동체가 됐습니다.

행진의 끝에서 묵묵히 걷고 계신 백발의 어르신이 눈에 띄었습니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양미화씨는 자신이 사는 지역 근처에 김씨가 오기를 기다려 함께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양씨는 노동자를 대표해 투쟁해온 김씨에게 고마운 마음과 빚진 마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30년 넘게 모든 걸 던진 분이잖아요. 걷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저도 동참해야죠."

인터뷰 내내 김씨는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36년전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고문과 해고를 당했을 때 김씨는 스스로 현실을 외면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당한 폭력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누군가 김씨의 해고 과정을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고 이름 붙여줬고, 김씨는 아픈 기억들과 조금이나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김씨는 이번 도보 행진도 그동안 피해왔던 아픔과 현실을 직면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지난 일요일, 청와대에 도착한 김씨는 끝내 자신을 복직시켜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LG트윈타워 노동자, 인천공항 하청 노동자, 코레일 네트웍스·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등 김씨는 자신이 만났던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하나하나 언급하며 한을 쏟아냈습니다. 민주주의는 싸우고 피흘리는 사람들이 만들어왔다고 말한 김씨는 10년 전 크레인 고공농성을 마치던 날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짧고도 길었던 여정을 마쳤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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