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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카메라 막아서고 기자 밀쳐내던 북한…이번엔 달랐다

입력 2018-04-06 07:55

취재활동 제약에 우리 취재진 강력 항의…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직접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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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활동 제약에 우리 취재진 강력 항의…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직접 사과

[취재설명서] 카메라 막아서고 기자 밀쳐내던 북한…이번엔 달랐다


#2006년 3월 21일

12년 전 이맘때쯤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마이크를 잡고 현장 상황을 전하던 방송사 기자를 건장한 남성 여러명이 둘러싸더니 밀쳐내기까지 한다. 전날 일부 언론이 '납북' '나포'란 표현을 썼고, 이를 문제삼으며 현장 취재를 막았던 거다.

후폭풍은 컸다. 가족간 개별상봉은 취소됐고, 예정된 귀환 수속은 10시간이나 늦어졌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 사회에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북측의 민감한 반응에 우리 언론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2018년 1월 9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의지를 보였다. 곧이어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간만에 성사된 대화 자리인 만큼 우리 정부로서도 비핵화 문제를 안 꺼낼 수 없었을 거다. 회담 중간에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취재진에 회담 상황을 중간 브리핑 했다. 우리측이 비핵화를 언급했는데 북측이 특별한 반응 없이 경청했다는 거다. 일제히 기사화가 됐다.

그런데 회담 말미에 이를 안 북측 대표단은 거칠게 반발했다. "얼토당토 않은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우리 언론의 보도 내용에 강하게 불만을 터뜨린 거였다.

#2018년 4월 1일

우리 언론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북측은 평창올림픽 기간 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간단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그간 쌓였던 감정의 골이 깊어서였을까. 아무튼 이런 와중에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우리 예술단은 평양 공연에 나섰다. 우리 취재진도 따라나섰다.

그런데 우리 예술단의 첫 공연이 있던 지난 1일, 우리 취재진은 데자뷰를 경험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예정에 없던 관람을 하면서 공연 시간이 두 차례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취재진이 공연장 안에 들어가질 못했다. 북측 관계자들이 막은 거다. 마치 12년 전 우리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막았던 것처럼.

우리 취재진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북측 관계자들은 "곧 귀가 탁 트이는 소식이 들릴 거다" "안절부절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결국 우리 취재진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북한은 변한 것 같았지만 그대로였다.

#2018년 4월 2일

다음날 아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느닷없이 우리 취재진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을 찾았다. 북한 실세 가운데 한 명이자,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우리 국민에게도 낯익은 인물이 오로지 우리 기자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부리나케 달려온 거다.

김영철은 우리 기자들에게 전날 상황을 들었다. 취재를 방해한 건 잘못된 일이라고 사과했다. 양해를 구한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진 거다. 그것도 김정은 위원장 측근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나온 거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날만 해도 북한은 변한 줄 알았지만 그대로였다. 그런데 확실히 변해있었다.

김영철은 우리 취재진이 평양 시내를 촬영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기꺼이 응했다. 평양 시내는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그런데도 봄기운을 숨길 순 없었다. 우리 예술단의 공연 제목처럼 봄이 온 거다. 뿌연 미세먼지와 스모그 그리고 안개 속에서 봄기운은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가수 정인은 북한 주민들 앞에서 '오르막길'이란 노래를 불렀다. 한걸음 또 한걸음이란 가사를 읊었다.

남북관계도 아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만큼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분명히 꽃은 피어나고 따뜻한 바람은 불어오고 있다.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이 바람을 타고 평양특파원이 필요한 날이 올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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