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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내 자식한테 상관 마!"

입력 2018-03-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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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내 자식한테 상관 마!"

▶ 내 자식인데 무슨 상관이야
 
[취재설명서] "내 자식한테 상관 마!"

- 된통 호통이 떨어졌다. "왜 남의 자식 가지고 난리야!" 가정사에 끼어들지 말라는 부모의 고함이었다. 학대아동 현장조사의 모습이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부모를 오히려 낮은 자세로 설득하는 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었다. 5분간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문은 거칠게 닫혔다. 집엔 들어가보지도 못한 상황. 상담원은 30여 분간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닫힌 문에 대고 연신 "아버님. 한 번 만요"를 외쳤다.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고 상담원은 쪽지만 문틈에 끼워놓은 채 돌아왔다. 치열하고 열악했다.

현장은 뉴스룸 기사로 확인할 수 있다.

"옆집 아이가…" 신고 받고 달려간 '학대아동 구조' 현장은
http://bit.ly/2GaazxH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게 이런 중앙아동보호기관의 상담원들이다. 학대아동을 찾아내고 보호하는, 말 그대로 아동보호의 최전선에 있는 분들인 셈이다. 그러나 인력도 모자랄 뿐더러 현장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는 등 매일매일 고투를 치른다.

젊은 상담원들은 특히 아동 부모에게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40~50대 부모 눈에는 결혼도 안 한 20대 상담원이 '자식 교육'에 대해 가르치려 하는 게 쉽게 인정되진 않을 것이다. 한 여성 상담원은 조사 시작부터 부모가 "결혼 해봤냐. 애는 낳아봤냐. 그런데 자식교육에 대해 뭘 아냐" 따져 물어 상담 진행이 안 됐다고 토로했다.

2014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후 경찰이 현장 조사에 동행한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부모가 '친권'을 앞세워 조사를 거부하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기란 어렵다. 법적으로는 아동을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외상 등의 명백한 학대 증거가 없으면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 그녀는 왜 항상 캐리어를 들고 다녀야 하나
 
[취재설명서] "내 자식한테 상관 마!"

(2018 3월 21일 소셜라이브/ 최수연, 강희연 기자)  - '아동학대' 기획은 강희연 기자와 함께 2주 넘게 취재했다. 주로 어린 시절 학대당해 온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데 주력했다. 그들이 꺼내놓은 기억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다.

[아동학대 피해자 A씨/ 인터뷰 중] "아빠에게 맞아서 넘어졌는데 배수로에 처박혀서 머리를 박은 거예요. 순간 기절했었어요. 맹장염 걸렸을 땐 배 안이 다 염증으로 차서 겨우겨우 응급수술을 했어요. 아파서 조퇴했는데도 때리더라고요."

부모는 A씨가 맹장염 염증이 터질 때까지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때릴 땐 쇠파이프와 막대 등 손에 집히는 모든 게 동원됐다. A씨는 현재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상처라며 눈물을 터뜨렸다.

가까스로 집을 나온 A씨는 현재 친구 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A씨는 언제 부모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여행용 '캐리어'를 가지고 다닌다. 언제든 부모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할 수 있다 보니 장소가 매번 노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캐리어'는 좀처럼 안정되지 못하는 삶의 상징이자, 그나마 부모에게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종의 보호장치였다.

▶ 트라우마

부모에게 학대당한 한 초등학생은 그림치료에서 '사람 잡아먹는 꽃'이나 '칼을 든 인물'을 그렸다. 가족과 세상에 대한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만났던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트라우마' 다. 수면제와 우울증 약은 이미 오래 전부터 먹고 있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아동은 학대 상황에서 감정을 억압받고 숨기게 되는데 내적으로 큰 우울감과 함께 공격성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아동보호기관 전문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대응은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만난 사례자 중에서도 전문기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는 분노와 좌절감에 자살 시도까지 이어졌지만, 초기에 아동전문기관을 통해 꾸준히 상담 등의 지원을 받은 경우는 달랐다. 그림과 음악치료 등을 통해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법을 배웠고, 쉼터에서 공부하며 원하는 대학에도 진학했다. 상담 치료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본인 역시 아동복지기관의 상담원이 되겠다고 준비하고 있다.

▶ 빅데이터로 찾는 학대아동

- 지난 19일부터 위기 아동을 상시 발굴하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숨어있는 학대아동들을 찾는 게 골자다. 아동의 장기 결석, 예방접종·건강검진 미실시, 양육수당·보육료 미신청 등 빅데이터를 분석한다. 고위험군 아동으로 분류되면 관할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해 확인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엔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계해 조사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시범사업 한 결과, 1만 3천여 명이 위기 아동으로 예측됐다.

진작 시행됐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여서 발견하는 게 가장 어렵다. 교사나 이웃주민의 적극적인 신고 없이는 파악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학대아동 발견율은 0.25%에 불과하다. 1000명중에 2~3명만 발견되는 수준이다. 미국의 9.4명, 호주의 8명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취재설명서] "내 자식한테 상관 마!"

아동학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빅데이터 지원 시스템'은 반갑지만 현장 전문가들의 우려는 크다. 신고가 늘어 방문할 가정 수가 훨씬 증가할 텐데 현장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아동인구가 약 870만 명인데 상담원 수는 894명으로 1인당 9725명의 아동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상담원 한 명이 담당하는 아동은 1860명으로 우리에 비해 1/5 수준이다. 상담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재학대 등을 막기 위한 부모 교육 등 사례관리에도 한계가 있다. 열악한 업무 환경에서 상담원의 이직률은 30%가 넘고 평균 근속 연수는 1.5년에 불과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시설 수도 부족하다. 현행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244개 모든 시군구에 1곳 이상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을 갖춰야 하지만 현재 61개만 운영 중이다. 인력과 시설을 늘리려면 예산이 수반돼야 하지만 올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254억 원으로 지난해보다도(266억 원) 오히려 줄었다.

이런 상황에선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인력 한계로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취지의 시스템이 효과를 보려면 그에 맞는 현장 지원이 필요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프라 확충, 상담원의 처우 개선 등으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 제2의 준희양은 언제나

사회는 '준희양' 사건과 같이 큰 일이 벌어져야만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는다. '제2의 준희양' 사건을 막자는 소리도 잠시 뿐이다. 아동학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상담원들이 현장에서 아동과 가족을 원활히 만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관심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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