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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실오라기까지 온전히'…37년만 옛 광주교도소 발굴

입력 2017-10-25 19:19 수정 2017-10-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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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새 정부 출범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는 30일부터 행방불명자를 찾기 위해 옛 광주교도소 발굴 조사가 진행됩니다. 또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5·18 관련 기록을 왜곡, 조작하려 한 정황도 뒤늦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임소라 반장이 꼭 알아야 할 5·18 관련 소식을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기자]

['단상3353-고규석' <만인보, 고은=""> : 마누라 이숙자가 아들딸 다섯 놔두고 찾으러 나섰지 전남대 병원 조선대 병원 상무관 도청 (…) 그렇게 열흘을 넋 나간 채 넋 읽은 채 헤집고 다녔지 이윽고 광주교도소 암매장터 그 흙구덩이 속에서 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 가슴 펑 뚫린 채 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 거기 있었지]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했던 고영태 씨의 아버지 고, 고규석 씨는 5·18 희생자였습니다. 고은 시인의 시, 만인보에는 방금 들으신 것처럼 당시 다섯 살이었던 고영태 씨의 가족사가 그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이 시를 접하고 가슴이 참 먹먹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고 씨의 모친은 '광주교도소' 안에 묻혀있던 시신 더미 속에서 남편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미 시신은 부패된 상태였고, 손가락의 결혼반지를 보고 남편인 걸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3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5·18 행방불명자가 8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암매장 추정지 발굴 작업은 지난 2009년을 끝으로 8년째 중단됐는데 오는 30일부터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조사가 시작됩니다.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암매장 발굴 작업이 이뤄지는 것은 5·18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김양래/5·18재단 상임이사 (지난 23일) : 5월 23일 날 묻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5월 23일 날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 정도 걸쳐서 묻었다고 하는 것이고요. 그 2구씩 관이 없어가지고 가마니를 덮어서 묻었다, 그렇게 표현을 해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여기까지가 약 117m 정도 됩니다. 이 구역을 전체적으로 문화재 발굴 방식으로 조사를 해보려고 합니다.]

발굴 지역은 광주에 파견된 제3공수여단 소속 김모 소령이 95년 검찰 조사 당시 작성한 약도와 진술, 같은 제3공수여단 소속 부사관의 최근 제보, 그리고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있었던 재소자 최 모씨의 증언을 토대로 좁혀졌습니다.

[김양래/5·18재단 상임이사 (지난 23일) : 5월 18일 날 출소 예정된 재소자가 5월 18일 계엄령으로 인해서 한 달 간 이제 공짜 징역을 더 살고 6월 18일 날 출소를 하신 분인데 그런데 이 분은 1급수들하고 같이 그 공간에 살다 보니까 보안과가 있는 그 공간에서 오후 6시부터 7시 사이에 늘 담요를 털거나 빨래를 걷거나 이랬다고 그럽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포를 털던 시간에 최 씨는 교도소 담장 밖에서 '포크레인'이 작업하는 걸 봤다고 합니다. 당시 모범수들 사이에서는 '시신을 묻는 작업', 그러니까 암매장을 한다는 얘기가 당연히 나돌았다고 합니다.

이번 발굴 작업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첨단 장비가 동원돼 정교하게 진행되기 때문인데, 유해 발견 여부는 작업 개시 후 15일에서 20일 안에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5·18 기념재단은 '실오라기까지 온전한 발굴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런 가운데 어제 뉴스룸에서는 노태우 정권이 지난 88년 5·18 국회 청문회가 정권에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얼마나 철저히 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문건을 단독 공개했습니다. 청문회에 나설 증인은 간부급으로 골랐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지시했습니다.

[JTBC '뉴스룸' (어제) : 계엄군 부상자가 속출한 상황과 시민들의 무장 난동 사례, 그리고 자위권 행사의 불가피성 등을 말하라고 시나리오를 만들어줬습니다. 또 청문회장에서 상영할 영상은 시민들의 극렬한 시위 현장을 부각해서 편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특히 상황 개요는 아예 처음부터 조작돼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채워졌는데, 계엄군의 최초 발포 시간은 5월 21일 13시이지만, 이 문건에는 13시에 시민 사격이 먼저였고 13시 30분에 계엄군이 대응 사격을 한 것처럼 돼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북한 개입설'을 해외에 전파하려고 한 시도도 드러났습니다.

전두환 씨는 최근까지도 자서전에서 북한 개입설을 주장해 비난을 샀죠. 보도에 따르면 5·18 직후 외무부는 당시 국내 상황을 정리한 자료집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이 자료집에는 '고정간첩 '고첩' 및 용공 불순분자들도 이에 가세하여…방화 등 자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여…이로 말미암아 시위군중을 폭도화 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자료는 1800부 넘게 만들어져 당시 재외 공관에 배포됐고, 공무원들은 해외에 나갈 때 이걸 지참해야 했다고 합니다.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5·18 진상규명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만, 넘어야 할 벽도 여전히 높습니다.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이건리 위원장은 최근에 이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이건리/5·18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지난 23일) : 당시 및 현재 군 관계자들은 이미 40년이나 다 되어가는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어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 하면서 진상 규명에 집단으로 반발하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청와대 기사 제목은 < '실오라기까지 온전하게'…37년 만의 옛 광주교도소 발굴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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