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ㆍ18 성폭력 피해 할머니들이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국회도서관 강당에 들어섰습니다. 오늘(30일) 열린 '5ㆍ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용기와 응답'에 참석한 13명입니다. 피해자들이 수백명 앞에서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금 이 뉴스]에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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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공개한 첫 증언대회...44년 만의 증언에 '울음 바다'
최경숙 할머니는 네 살 쌍둥이 형제의 엄마였습니다.
운전을 잘해 지입차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1980년 5월 19일, 계엄군이 최 할머니의 차를 불러 세웠습니다.
[최경숙/5ㆍ18 성폭력 피해자 : 너 못 간다고, 차 받치라고(세우라고). 차 불을 질러버린다고 그래서...]
우악스럽게 차에 오른 군인들은 때리고 강간했습니다.
[최경숙/5ㆍ18 성폭력 피해자 : 제가 그때 당시 임신 3개월이었어요. 하혈을 너무 많이 하고, 배가 왜 이렇게 아픈고......]
뱃속 아이를 잃고 평생의 트라우마를 얻었습니다.
[최경숙/5ㆍ18 성폭력 피해자 : 아줌마, 아기가 유산됐으니까, 그렇게 아시라고. 어떻게 하실 거냐고 그래서, 그래서….]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어지러웠고, 냄새를 못 견뎌 10년 약을 먹어도 안 나았습니다.
[최경숙/5ㆍ18 성폭력 피해자 : 아저씨들 술 냄새, 땀 냄새, 입 냄새, 그 냄새조차. 지금까지 냄새를 맡으면 토를 합니다.]
5.18 성폭력 피해자 13명이 오늘(30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습니다.
손가락질당할까 숨겨온 이야기를 국회 도서관 강당에 모인 수백 명 앞에서 증언했습니다.
[김선옥/5ㆍ18 성폭력 피해자 : '여자 대빵을 잡아 온다'라고 다 구경나왔습니다. 나는 그때 인권이라는 건 완전히 잃고….]
[최미자/5ㆍ18 성폭력 피해자 : 제 상처 보실래요. 오른쪽 다리에 폭 파인 자리 있죠.]
무섭고 두려워도 나선 이유가 있습니다.
[김선옥/5ㆍ18 성폭력 피해자 : 저는 지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가 쏘아 올린 공은 영원히 묻히지 않고 이 자리에 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김복희/5ㆍ18 성폭력 피해자 :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에 용기를 참 내어 봤습니다.]
아직 사과도 못 받았고 제대로 된 배상 기준도 없습니다.
44년 만의 증언, 할머니들은 "여기 못 나온 피해자들도 우리를 보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영상취재 : 정철원
영상편집 : 백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