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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병역비리 ① 청년 벤처사업가의 이중생활

입력 2016-08-11 15:48 수정 2016-08-11 16:25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제 악용…출근 도장만 찍고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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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전문연구요원제 악용…출근 도장만 찍고 사라져"

[취재수첩] 병역비리 ① 청년 벤처사업가의 이중생활


병역비리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그 중에는 대체복무제를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황제 병역비리' 사건을 일으킨 '한솔그룹 3세' 조모(25) 씨는 산업기능요원제를 악용했다. 조씨는 근무처로 지정된 업체 사장의 편의로 1년 10개월 간 근무를 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가 마련해준 오피스텔로 출퇴근했다. 그마저도 아프다는 핑계로 자주 나오지도 않았다. 결국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에게 덜미가 잡혔다.

(참고 기사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773557)

최근 서울지방병무청은 유사한 수법의 사례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당사자는 전기업계에서 청년 벤처사업가로 주목 받던 30대 초반의 A씨이다. A씨는 전문연구요원제를 악용했다. 석·박사급 이공계 인력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전문연구요원은 3년간 연구원으로 복무한다. 방위산업체 등에서 일하는 산업기능요원(34개월 복무)과 장소만 다를 뿐 복무 방식은 같다.

A씨는 2013년 하반기, 서울 유명 사립대인 K대학의 모 과정의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국립대인 I대 파견을 신청했다. 지도교수가 마땅치 않고, 연구에 필요한 특정 장비들이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I대 모 학과 B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를 수행하겠다며 2년간 파견을 허가 받았다.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관계로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쓰겠다던 장비 대여기록 없어…지방대 강의도 다녀"

약속과 현실은 달랐다. A씨는 상당 기간 실제 근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무단 결근하거나 연구실 지문인식기로 출근 등록만 하고 곧바로 퇴근하는 식이었다. 해당 연구실은 3~4학년생이 주로 쓰는 일종의 학부생 실습실이었다. 학생들은 "당시 연구실 안에는 A씨의 PC가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에 필요하다던 특정 장비들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I대 관계자는 "장비 대여 기록이 없다"고 답했다.

그사이 A씨는 영리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회사 업무를 보면서 모 지방대 강의까지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I대에서 A씨의 회사까지 거리는 2㎞이다. 자택 역시 캠퍼스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 회사는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청이 발주한 연구개발사업 등을 진행하며 수억 원의 정부 자금을 지원받았다. 또 A씨는 학술대회 참석을 이유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는데, 해당 학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병무청 고발 내용을 토대로 A씨를 수사 중이다. 병역법에 따르면 새롭게 병역 의무가 주어지고,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장비 유무 확인 않고 파견…지도교수 또 다른 비리 저질러"

사건을 뜯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럿이다. A씨가 I대로 파견을 간 경위부터가 문제이다. A씨는 K대에 특정 장비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해당 장비들은 K대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K대는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A씨의 파견을 허락한 셈이다. 이에 대해 K대 측은 "파견 중 발생한 개인의 비행을 학교가 관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A씨는 2년간 파견을 마치고 지난 5월 K대에 복귀한 상태이다.

I대는 병무청 조사 과정에서 사실관계 대부분을 확인했다. A씨를 지도한 B교수가 또 다른 연구비 횡령 의혹을 받고 있던 시점이었다. 대학 자체 감사 결과, B교수는 학생들의 통장을 관리하면서 연구비 2500만원을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본부 측은 B교수 해임을 건의했으나, 최종 감봉 3개월 징계가 내려졌다. 하지만 I대는 B교수를 대상으로 A씨 관리 소홀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I대 관계자는 "A씨의 파견이 끝난 상태여서 B교수에게 따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제 병역비리'의 주인공 조씨는 지난해 5월 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현재 서울 모 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산업기능요원 근무 당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 정신질환을 호소해 재검 결과 '4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애초 징병검사에서 조씨는 현역 복무에 해당하는 '2급' 판정을 받았다. 조씨는 훈련소에서 실시하는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아직 받지 않았다. '선 복무 뒤 훈련'을 택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30일 이상 입원하면 '5급'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기초군사훈련은 물론 예비군훈련도 받지 않게 된다.

병역비리는 진화한다. 들통난 수법을 다시 쓸 리 없다. 온갖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다 보니, 쫓는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조씨와 A씨는 운 나쁘게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까지 적발된 '운 나쁜' 사람의 면면을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돈으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적지 않다. '유전 특례, 무전 입대'의 악습은 뿌리가 너무 깊다.

김상진 정치부 기자 kine3@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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