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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신규 석유·가스 사업, 미래 날리는 일”

입력 2024-07-29 08:00 수정 2024-07-29 10:5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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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6)

“이번 주, 전례 없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7월 21일 일요일이 역대 가장 더운 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22일 월요일엔 수은주가 더 높아졌고, 23일 화요일 또한 같은 수준이었다는 예비 데이터를 방금 받았습니다. 즉, 지난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은 역대 가장 더운 3일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7월 25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우리는 연일 기록적인 기온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2023년은 연평균기온으로 보나, 일 최고기온으로 보나 '역대급'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엔 북극에서 적도, 남극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 일 평균기온이 사상 처음으로 17℃를 넘어섰죠. 단 하루, 어쩌다 17℃를 넘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며칠간 지속됐고, 특히 2023년 7월 6일엔 17.08℃라는 최고기록을 남겼습니다.

7월 초, 이렇게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기온은 연말에 이르기까지 여느 해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상태를 이어갔습니다. 당연히 가을이 찾아오고, 겨울로 넘어가면서 기온 자체는 낮아졌지만, 그 어떤 가을, 그 어떤 겨울보다 기온이 독보적으로 높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2023년은 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로 기록됐습니다.

2024년은 2023년 열기의 바통을 이어받아 벽두부터 '초격차'를 보였습니다. 상반기까지 2023년보다 항상 더 높은 기온을 이어온 것이죠. 이는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만 1년간의 평균기온이 '기후변화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1.5℃'를 넘어 1.64℃나 높은 결과로 이어졌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신규 석유·가스 사업, 미래 날리는 일”
이 격차는 여름이 찾아오면서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7월 초엔 기온이 2023년의 수준에 못 미치기에 이르렀죠. 전례 없던 상승세가 1년의 시간을 끝으로 한풀 꺾이려나 싶어지자, 기온은 돌연 다시 치솟았습니다. 7월 21일, 17.09℃로 지난해의 역대 최고기록을 넘어서고, 22일엔 17.16℃로 재차 기록이 깨졌습니다. 23일 또한 여전히 17℃를 넘어섰고요.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이 기간을 '역대 가장 더운 3일'이라 일컬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극한 기온 문제는 더 이상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주 또는 월 단위의 현상이 됐습니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세계 각국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더 많은 더위를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십억 인구가 50℃에 달하는 극한 폭염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끓는점의 절반에 이릅니다. 올해 사헬 지역(사하라 사막 남단)엔 살인적인 폭염이 닥치면서 입원 및 사망자 수가 급증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도 기온의 기록 경신이 이어지며 1억 2천만명이 폭염 경보의 대상이 됐습니다. 하즈(메카 성지순례) 기간, 1,300명의 순례자가 무더위로 숨졌고, 유럽에선 폭염으로 관광 명소가 잇따라 폐쇄됐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폭염 등으로 학교가 문을 닫아 8천만명 이상의 학생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여름철 더위 문제는 정말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WMO(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세계기상기구)와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등은 폭염의 규모와 강도, 빈도 및 지속 기간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지난 6월엔 공식적으로 13개월 연속 전 세계 기온의 기록 경신이 이어지는 등, 전에 본 적 없는 기온 상승이 찾아왔습니다. 폭염은 더욱 더 경제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훼손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폭염으로 매년 약 50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태풍 등 열대성 저기압보다 약 30배나 더 많은 수치입니다.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된 기후변화가 그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우리가 생명을 구하고, 그 영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2024년 7월 25일 발언)
 
[박상욱의 기후 1.5] “신규 석유·가스 사업, 미래 날리는 일”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다음의 3가지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첫째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폭염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수은주가 치솟을 때 가장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도시 빈민, 임산부, 장애인, 노인, 어린이, 병자, 이재민, 빈곤층 등이며, 이들은 냉방시설이 없는 열악한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의 열 관련 사망자는 20년 동안 약 85% 증가했습니다.

UNICEF(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오늘날 전체 어린이의 약 25%가 잦은 폭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2050년에는 그 비율이 거의 100%로 늘어날 수 있고, 폭염에 시달리는 도시 빈곤층의 수는 700% 증가할 수 있습니다. 폭염은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식량 불안을 부추기며, 사람들을 빈곤으로 더욱 밀어 넣습니다.

우리는 저탄소 냉방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이고, 자연 기반 해법과 도시 설계와 같은 '패시브 쿨링'을 확대하며, 냉방 기술의 효율을 높이는 등 냉방 기술의 청정화와 같은 대응에 나서야 합니다. 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유엔환경계획)는 이러한 조치를 통해 2050년까지 35억명의 인구를 보호하는 동시에, 배출량을 줄이고, 연간 1조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기 경보 시스템과 함께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와 WMO는 57개국에서 폭염 경보 시스템을 확대함으로써 연간 약 1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후 혼란으로부터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선 재정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선진국들이 약속을 지키고 적응 재정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보여줄 것을 촉구합니다.

둘째,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국제노동기구)는 오늘 발표된 보고서에서 전 세계 노동자의 70% 이상인 24억명이 폭염 노출 고위험군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태 지역의 근로자 4명 중 3명이 폭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랍 지역에선 10명 중 8명 이상이, 아프리카에선 10명 중 9명 이상이 폭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편,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폭염 노출 노동자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주 지역에선 폭염 관련 산업재해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폭염은 전 세계적으로 약 2,300만건의 산재 원인입니다. 또한 기온이 34°C 이상으로 오르면, 노동 생산성은 50%나 떨어집니다. 직장에서의 열 스트레스는 2030년까지 세계 경제에 2조 4천억달러의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1990년대 중반의 2,800 달러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인권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 보호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법과 규정이 오늘날의 폭염 현실을 반영하고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데이터와 과학을 활용해 경제와 사회의 회복력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폭염은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반시설이 무너지고, 농작물이 황폐해지며, 상수도와 보건 시스템, 전력망은 큰 압박을 받게 됩니다. 특히 도시는 전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속도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도시, 그리고 각 하위 부문별로 최고의 과학 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한 종합적인 맞춤형 폭염 대응 계획이 필요합니다. 또한 경제뿐 아니라 취약 부문이나 건축 환경을 폭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2024년 7월 25일 발언)
 
[박상욱의 기후 1.5] “신규 석유·가스 사업, 미래 날리는 일”
“끝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폭염의 영향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하지만, 기후위기의 다른 파괴적 증상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허리케인, 홍수, 가뭄, 산불, 해수면 상승과 같은 증상들 말입니다. 이 증상에 대처하려면, 우리는 질병과 싸워야 합니다. 그 질병은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지구를 태우는 광기입니다. 그 질병은 화석연료에 대한 중독이고, 기후 무대응, 무대책입니다.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깨어나 나서야 합니다.

이는 세계 각국의 정부, 특히 G20 국가뿐 아니라 민간 부문과 도시, 각 지역들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모든 국가는 지구 기온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나 국가 기후행동 계획을 이행해야 합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화석연료의 확대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이 이 이행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석연료 확산의 홍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석유 및 가스 사업안에 서명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미래를 날리는 서명과도 같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능력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의 리더십은 필수적입니다. 세계 각국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시켜야 합니다. 신규 석탄 프로젝트도 중단해야 합니다. G20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으로 전환시키고, 취약한 국가와 지역사회를 지원해야 합니다. 각 나라는 또, 기후행동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고, 산림 파괴를 종식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COP28에서 합의한 글로벌 목표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또, 이 기간 전 지구적으로 화석연료의 소비와 생산을 지금의 30%까지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넷 제로에 관한 고위 전문가 그룹의 권고대로, 기업과 금융기관, 도시 및 기타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1.5℃ 목표 이행을 위한 전환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기후행동엔 금융 활동도 필요합니다. 다가올 COP29에서의 강력한 금융 분야 성과를 위해 각국은 힘을 모으고, 혁신적인 재원 마련에 진전을 이루고, 다자개발은행의 대출 역량을 대폭 강화해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고, 부유한 국가들이 모든 기후금융 공약을 이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합니다. 더위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폭염은 인류와 지구에 극심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기온 상승이라는 도전에 맞서야 합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2024년 7월 25일 발언)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우리의 미래를 날려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한 선진국의 잘못된 행동은 당장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합니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 그리고 신규 석유 및 가스 사업의 추진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선진국이 진전을 보이기 바란다'는 시점으로 언급한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까지는 이제 만 석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석 달 후, 한국은 계속해서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까요. 아니면, 신속한 에너지전환과 기후금융 공약 이행으로 정상적인 기후 리더십을 보여주게 될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신규 석유·가스 사업, 미래 날리는 일”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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