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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입력 2024-07-08 08:01 수정 2024-07-08 10:4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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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3)

글로벌 시장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의 압박을 받는 것은 모든 수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웃 나라에선 기업들이 직접 정부에 에너지 정책을 손볼 것을 요구했는데요, 우선,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일본 기업들이 지난 6월 25일 촉구한 정책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재생에너지 발전 및 가격 책정의 비용 효율성을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전가 가격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할 것.
둘째,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현재(2022년)의 121GW에서 늦어도 2035년까지 363GW로 3배 늘리는 목표를 수립할 것.
셋째,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력 구매자와 공급자간 장벽을 없애 물리적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와 가상 PPA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할 것.
넷째, 전력망 보강 및 전력망 운영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고, 신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망 연결 시간을 단축하고, 기존 재생에너지의 사용량을 극대화하여 커테일먼트(발전소의 출력 제한)를 방지할 것.
다섯째, 2025~2030년까지 17조~18조 1천억엔의 공공 및 민간 투자를 재생에너지 및 관련 기술에 쏟아부을 것.

일본 기업들이 자국 정부에 권고한 에너지 정책안의 내용은 비단 '재생에너지 확대'에 그치지 않습니다. RE100 이행을 위해 노력중인 '전기 소비자'로서의 기업이 왜 그 밖의 정책까지 제안했던 것일까요.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하루 중 태양광발전의 비중이 최대 30% 이상으로 높아진 상황입니다. 일본의 경우, 연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우리의 3배 수준(IEA 기준, 2022년 한국 7.1%, 일본 22.5%)인 만큼, 태양광발전의 한낮 발전비중은 30%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루에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 발전사업자와 전력시장 운영자, 송배전망 사업자 모두의 숙명이고요. 이런 가운데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시각각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도, 반대로 시장의 흐름에 따라 발전량을 대폭 조절할 수 없는 원자력 발전의 경직성도, 모두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을 위해선 기존의 양수발전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시스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자국 정부에 제안한 5가지의 주요 정책안 가운데 2번(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2022년의 121GW에서 늦어도 2035년까지 363GW로 3배 늘리는 목표를 수립할 것)과 5번(2025~2030년까지 17조~18조 1천억엔의 공공 및 민간 투자를 재생에너지 및 관련 기술에 동원할 것)과 같은 내용이 담긴 것이죠.

지난주 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것에 이어, 이번엔 나머지 1번(재생에너지 발전 및 가격 책정의 비용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전기 가격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할 것)과 3번(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력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 장벽을 없애 물리적 PPA와 가상 PPA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할 것), 그리고 4번(전력망 보강 및 전력망 운영 개선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신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망 연결 시간을 단축하고, 기존 재생에너지의 사용량을 극대화하여 커테일먼트를 방지할 것)에 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일본은 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전력 가격이 비싼 나라 중 하나입니다. 2019년 기준, 0.212달러/kWh로, OECD 회원국 및 BRICs 등 42개 주요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높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전기 가격'과 '전력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 간소화된 전력구매계약'을 촉구한 이유입니다. 무탄소 여부와 상관없이, 여타 발전원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연료비는 0원이기에, 기업이 발전사업자와 1대1로 직접 계약을 체결한다면 시중의 전력 가격보다 경쟁력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 때문에 전기요금이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한국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전 세계 주요국 통계로 보나, 아시아 통계로 보나 최상위권에 위치한 일본의 가격과 반대로, 우리는 산유국 수준의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료비 0원'의 발전원을 활용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발전설비에 대한 고정비용이나 송배전망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일까요. 아시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고, 그 화석연료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산유국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력 가격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셈입니다. 결국 누군가는 그런 인위적인 가격 억제의 부담을 대신 짊어질 수밖에 없을뿐더러, 발전소든, 송배전망이든, 유연성 자원이든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재원 또한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연초, 220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만 늘리면 끝? '에너지전환의 첫 걸음' 전력망〉에서도 설명해드렸던 것처럼, 전력망 확충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설치되는 기간 대비, 그 설비가 연결될 송전망은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 가격 자체도 전 세계적으로 저렴한 상황에서 그 요금 중 전력망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세계 평균, 선진국 평균, 신흥 개도국 평균보다도 낮습니다. 말 그대로 '갈 길이 먼' 상황인 것이죠.

이처럼 전에 없던 새로운 발전기술을 도입해야 하고, 이를 대규모로 설치해야 하며, 그러한 발전설비를 기존 전력망과 연결시키려면 송전선로나 변압기 등 각종 인프라의 설치가 뒤따라야 합니다. 모두 '돈이 드는 일'입니다. 때문에 '재생에너지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그리고 중국과 인도의 전력 가격과 재생에너지 및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살펴봤습니다. 2014~2019년 사이, 모든 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공히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독일과 일본, 인도, 프랑스의 전력 가격은 저렴해졌습니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증가=전력 가격 인상'으로 설명될 수 없는 통계입니다. 재생에너지와 이를 활용한 발전설비의 특성상 초기 비용 부담은 분명 적지 않지만, 이후 실제 발전 과정에서의 고정비용은 기존 대형 상용발전설비 대비 저렴한 만큼 장기적 관점에선 도리어 비용 절감의 효과 또한 크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물론, 우리나라에선 당장 비정상적인 전력 가격 체계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위의 다른 6개 나라 대비 한국의 전력 가격이 크게 저렴해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습니다. 재생에너지와 함께 무탄소 발전원으로 꼽히는 원자력의 발전비중이 우리보다 높은 프랑스 또한 전력 가격은 우리보다 높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2014~2019년 사이 화석연료의 발전비중이 높아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정해진 발전사업자, 정해진 송배전 또는 도소매 사업자로 참여자가 고착화해온 시장에 새로운 발전원, 새로운 발전사업자가 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에 없던 발전 기술의 등장에 세계 각국은 여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 수단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FiT(Feed-in Tariff) 또는 FiP(Feed-in Premieum)과 같은 차액지원제도로 아직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자에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나, RPS(Renewable Energy Portfolio Standard)처럼 기존 대형 발전사업자들에게 재새에너지 공급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재생에너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시장에 수요를 불어넣는 제도, 그리고 시장의 원리에 따라 경매에 붙이는 제도로 말이죠. 이들 3가지 수단을 병행하거나 적절히 섞음으로써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6월 27일, 〈재생에너지 보급 제도 개편 연구 중간 결과 발표회〉에서 위의 7개 경우의 수가 갖는 재생에너지 보급효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향후 개편될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보급 제도 개편안의 기틀이 될 수도 있는 발표였죠. 발표를 맡은 조상민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글로벌 재생에너지 정책수단에 변화가 찾아왔다”며 “주요국들은 RPS를 일몰시키고, 경매 제도로 전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이어 실제 재생에너지의 보급 효과가 FiT/FiP와RPS, 경매를 모두 병행하는 경우에 가장 높고, 이어 FiT/FiP와 경매를 병행하는 경우, 경매만 도입한 경우, RPS와 경매를 병행한 경우, FiT/FiP와RPS를 병행한 경우, FiT/FiP만 도입한 경우 순으로 효과가 컸다고 밝혔습니다. RPS만으로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VRE(Variable Renewable Energy,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보급효과가 미미한 것을 넘어, 아예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 보급 정책으로 2001년 발전차액 지원제도를 도입했다가 2012년 RPS 제도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RPS는 지금도 유효한 보급 정책이고요. 해외 선진국들의 경우에도 재생에너지 도입 초기, RPS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RPS이 본래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 했다는 설명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경매 제도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RPS를 대체할, 한국의 새로운 재생에너지 보급 제도로 소개됐죠.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발표에서 대표적인 'RPS 일몰 사례'로 언급된 영국과 일본, 이탈리아의 재생에너지 확산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이들 나라는 우리나라가 RPS 제도 도입 당시 벤치마크로 삼았던 곳들입니다. 이탈리아는 2013년, 영국은 2014년 하반기, 일본은 2017년부터 경매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연구원 측은 가격 불안정에 따른 소비자 부담의 확대나 발전원간의 경쟁 저하 등이 RPS에서 경매 제도로의 전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이날 RPS 제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선 ① 시장의 불확실성, ② 시장의 복잡성, ③ 불명확한 목적함수, ④ 진입 관리의 어려움, ⑤ RE100 수요 경합 총 다섯 가지로 정리됐습니다. 발전원별 REC 가중치가 3년마다 개정되고, 정책에 따라 수시로 바뀌기도 하는 불확실성이 크고(시장의 불확실성), 복잡한 계약 방식과 간접적, 사후적 비용정산에 따른 때늦은 가격 신호와 같은 시장의 복잡성이 시장 참여를 막을뿐더러(시장의 복잡성), 발전사업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면서 전력의 생산자임에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이중적 지위가 부여돼 결국 비용 최소화나 개발 역량 강화의 유인이 부족하고(불명확한 목적함수), 개별 발전원별 할당이 없이 전체 신재생에너지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전원 포트폴리오나 시장규모의 관리가 어렵고, 주민수용성 및 계통수용성 문제가 불거졌다(진입 관리의 어려움)는 것입니다. 여기에, 최근 재생에너지 분야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자국산 부품 사용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는 추세인데, 여기에 대응이 제대로 안 될뿐더러, RE100 이니셔티브의 확산으로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급등하는 등의 문제까지도 나타났기에 재생에너지 보급 제도의 개편이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수급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된 영국, 일본,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최근 15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추이를 살펴보면, 많게는 5.6배, 적게는 3.2배 차이나는 만큼, 근본적으로 재생 전력의 공급량 자체가 매우 적은 상황에서 산업계를 중심으로 수요는 급증했기에 신속한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고요.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신재생에너지원별로 시장을 구분해 정부 주도의 공공경매로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의 용량에 대한 선도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조상민 실장은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국가나 정부의 계획에 기반해 원별 물량을 설정하면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대처하기 더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경매 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을 환경이 국내에 조성됐냐는 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일본이 경매 제도를 시행했던 2017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15.5%에 달했습니다. 영국(2014년 18.4%)도, 이탈리아(2013년 35%)도, 재생에너지가 나름 '주요 발전원'으로 거듭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공급 시장이 정부의 보조와 지원으로부터 졸업해 경쟁에 돌입할 만큼 성숙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연간 한 자릿수의 발전비중에 그치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공급 시장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 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설비와 사업자가 더욱 늘어나고,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재생 전력의 양 또한 늘어나게 된다면, 자연히 그 안에서 1차적으로 경쟁이 일어날 텐데, 아직은 그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이죠.

또한, 현재 전력시장에서 거래되는 전기의 수급현황과 실제 총 수급현황의 격차가 하루 중에도 최대 1.5~1.6GW나 납니다. 기존의 전력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재생 전력의 양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이 또한 정확한 관리가 전제되어야 할 경매 제도를 이야기하기엔 아직인 이유 중 하나고요. 관리를 통한 효율적인 재생에너지 확대가 실제 목적이라면, 전력시장 밖에서 이뤄지는 수요와 공급을 전력시장 안으로 끌어올 수 있는 노력부터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경쟁을 통한 효율적인 가격 설정이 목적이라면, 그래서 RE100 이행 등을 이유로 재생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계의 가격 부담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를 확대해 여기저기 흩어진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을 하나로 묶고, 일본의 기업들이 자국 정부에 촉구했던 것처럼 간소화한 PPA를 통해 발전사업자와 재생 전력 수요 기업이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비싼 가격으로 인한 수요자의 부담만이 아닙니다. 해외 주요 선진국을 넘어 글로벌 평균 LCOE와도 큰 차이를 보일만큼 비싼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LCOE의 주요 원인인 간접비는 국내 거의 모든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오랜 기간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어쩌면, 기존 RPS 제도에 이은 '새로운 보급 정책'이 집중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요. 실제 인도의 경우만 하더라도, 정교하지 못 한, 섣부른 경매 제도의 도입은 재생에너지 시장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불렀습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 IRENA(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국제재생에너지기구), 세계은행 등은 인도의 경매 제도 도입으로 대규모 사업자가 시장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고, 소규모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막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비단 '간헐성 전원의 확대'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분산전원의 확대', '전기의 프로슈머화'라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갖는 태생적인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국가가 이르되…”, “정부 가라사대…” 식으로 시장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더 큰 혼란을 부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재생에너지 공급 시장은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와 같은 대형 발전사업자가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로 뛰어든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 공급자로 참여한 대부분은 소규모의 개인 사업자들이죠. 이들이 지금의 한국전력공사처럼 장기간 적자를 감내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이러한 개편안의 초안이 나오는 데에 영향을 미친 재생 전력의 수요 기업 또한, 이런 상황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합니다. 일본 기업이 그저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 가격 인하'만 무턱대고 요구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프라의 중요성, 정부 역할의 중요성, R&D의 중요성을 내내 경험해온 그들이니까요. 가격 인하를 요구하려면, 정부의 R&D 지원이나 발전사업자 지원을 함께 촉구하든, 스스로 재생 전력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연구기관이나 재단, 기금을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규모에 상관없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뛰어드는 이들 또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완전한 경쟁 체제 하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고, 지금까지 재생에너지가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청정함 때문만이 아니라, 저렴한 가격 덕분이었다는 점 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발전설비를 넘어, 전력망이나 유연성 자원 등 인프라의 설치와 운영에도 비용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비용을 낮추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지원, 응원이고요. 안타깝게도 지원 중심에서 경쟁 중심으로, 이후 더 높은 효율 개선이 요구되고, 이뤄지는 재생에너지의 확산 방법론에서 중간 단계를 생략할 수 있는 '퀀텀 점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국내에서도 경쟁 강화를 통한 가격 인하와 효율 개선을 치열하게 논의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업계가 전기 가격과 송전망까지 이야기 한 이유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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