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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어머니의 탄원서, 임성근의 탄원서

입력 2024-07-03 17:00 수정 2024-07-03 17:00

채 상병 어머니, 경북경찰청에 "안일한 군 지휘관 처벌" 탄원
임성근 전 사단장, 지난 5월 "군인은 군말 없이…부하 선처" 탄원
경찰 수사심의위원회에 어머니·임성근 탄원서 모두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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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어머니, 경북경찰청에 "안일한 군 지휘관 처벌" 탄원
임성근 전 사단장, 지난 5월 "군인은 군말 없이…부하 선처" 탄원
경찰 수사심의위원회에 어머니·임성근 탄원서 모두 제출

 
지난해 채 상병 안장식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출처=연합뉴스〉

지난해 채 상병 안장식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출처=연합뉴스〉


탄원(歎願).

국어사전에는 '사정을 하소연해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채 상병의 어머니가 경북경찰청에 '사정을 하소연해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문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어제(3일) 〈JTBC 뉴스룸〉 보도를 통해 전해진 뒤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경찰에 '탄원'을 했는지 감히 알 수 없지만 지난달 어머니가 해병대를 통해 공개한 '편지'를 보면 그 마음의 일부는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남원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산부인과를 왕복 8시간 다니며 어렵게 아이를 가져 2003년 1월 아들을 출산하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장시간 차를 못 타 멀미를 해가며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고 한 번 유산 후 어렵게 출산을 하여 병실에서 너무나 좋아 행복함에 뜬눈으로 아이만 쳐다보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라 더없이 행복했고 모든 게 새롭고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그런 우리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저희는 모든 것이 무너졌고 멈춤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략)

"아들 1주기 전에 경찰 수사가 종결되고 진상이 규명되어 아들 희생의 원인과 진실이 꼭 밝혀져서, 더는 아들 희생에 대한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에는 우리 아이만 추모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 군대에서 갑자기 순직했으니 1년이 되기 전에 제발 우리 아들이 왜 숨졌는지 알려달라는,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이 편지로 공개돼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바 있습니다.

편지엔 탄원서를 낼 수밖에 없었던 마음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7월 19일이면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1주기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수사에 진전이 없고 엄마의 입장에서 염려가 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찰 조사에 출석하고 있는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출처=연합뉴스〉

경찰 조사에 출석하고 있는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출처=연합뉴스〉

임성근 "부하들 책임이지만 선처해달라"

어머니의 편지가 공개되기 2주 전, 경찰에 먼저 '탄원서'를 낸 사람이 있습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의 핵심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인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입니다.

임 전 사단장은 왜 탄원서를 내는지 그 이유를 맨 앞쪽에 썼습니다.

"군의 고급장교로서 그리고 다른 피의자들의 원소속 부대 지휘관이었던 사람으로서 정상적인 군 작전활동에서 발생한 이번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군령에 따라 작전활동에 참여한 군인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의 문제점을 말씀드리고, 아울러 제 부하들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기 위함입니다."

어렵게 썼지만 앞뒤 내용을 함께 정리하면 요지는 이렇습니다.

·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안타까운 일이다
· 하지만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 사건으로 지휘관들을 처벌하는 건 문제가 있다
· 부하들을 선처해달라

그리고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이 언급한 '군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습니다. 이 중에 논란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들입니다. 경찰과 군대가 다른 점은 군대는 죽으라는 지시를 해도 따라야 하지만 경찰은 자신이 피해를 받는 상황에서 자기 구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 나라를 지키는 군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군말 없이 죽어주어야 한다'는 표현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특히 '실종자를 찾기 위해 안전장비도 없이 급류에 들어갔다 휩쓸려 숨진'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두고 '군말 없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분노한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부하들을 선처해달라는 부분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사건의 원초적 원인은 포11대대장이 포병대대의 선임대대장으로서 포병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작전대상 지역의 자의적 확대한 작전지침 전파, 포7대대장은 의욕에서 또는 과실에서 그 작전지침을 오해하여 작전대상 지역이 수변에 국한됨에도 허리까지인 경우에는 수중도 포함된다고 오판하고, 그 판단에 기초하여 부하들에게 하천 본류에까지 들어가 작전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사고 발생 원인에 대한 제 판단이 옳다고 할 경우, 이러한 사안에 대해 포7대대장의 작전명령을 따른 하급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포11대대장, 포7대대장도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하는 것은 적절한 법 적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어려운 표현이 많은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포11대대장은 포병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작전대상 지역을 자의적으로 확대했다
· 포7대대장은 의욕 또는 과실로 그 작전지침을 오해해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 하지만 '군의 특수성'을 고려해 부하들을 선처해달라

이 부분을 두고는 '선처 호소를 가장한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6859자짜리 기나긴 탄원서 어디에도 해병대수사단이 애초 지적한 임 전 사단장의 혐의 사실,

· 애초 실종자 수색 임무를 빨리 알리지 않았다
· 이로 인해 구명조끼나 안전로프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못한 채 출동했다
· 현장을 방문해 복장과 경례 태도를 지적했다
· 현장에서 유속이 빠른 것을 보고도 안전대책을 지시하지 않았다
· 순직 사건 당일 새벽,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등의 내용은 한 마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의 혐의사실에 대해선 앞서 낸 수백 쪽짜리 진술서를 통해 충분히 소명했기 때문에 '탄원서'에 적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부하들의 선처를 구한다'는 탄원서를 보내면서 자신의 혐의를 뺀 부하들의 혐의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적은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채 상병의 어머니가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어제 'JTBC 뉴스룸'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출처=JTBC〉

채 상병의 어머니가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어제 'JTBC 뉴스룸'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출처=JTBC〉

채 상병 어머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도 처벌해달라"

JTBC가 파악한 채 상병 어머니 탄원서의 내용은 편지 내용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탄원'의 방향은 편지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안일한 군 지휘관들의 행동으로 아들이 희생됐다"
"혐의가 있는 지휘관들은 합당한 책임 져야 한다"

는 취지의 바람을 전한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일(安逸).

사전엔 '편안하고 한가로움 또는 편안함만을 누리려는 태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부분을 통해 채 상병 어머니의 탄원 취지를 감히 짐작해본다면, 경찰이 '유속이 빠른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시적 지시한 사람만을 처벌하려다가,

· 안일하게도 실종자 수색 임무를 빨리 전달하지 않은 지휘관
· 안일하게도 안전장비를 챙기지 않도록 한 지휘관
· 안일하게도 안전대책 대신 복장과 경례 태도 지적만 한 지휘관
· 안일하게도 수중수색 사진을 보고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휘관

에 대해서는 처벌을 빼놓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 부분까지 빠짐없이 봐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보내신 것으로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모레(7.5)면 경북경찰청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열고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의 마지막 절차를 밟게 됩니다.

수심위엔 어머니의 탄원서와 임 전 사단장의 탄원서가 모두 제출됩니다.

그리고 경찰은 수심위의 권고를 참고해 채 상병 순직 1주기(7월 19일) 이전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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