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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입력 2024-01-15 08:00 수정 2024-01-15 15:3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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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8)

사상 최초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17℃를 넘었던 지난 7월 이래로 달궈진 지구는 좀처럼 식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23년은 역대 가장 뜨거웠던 때로 기록됐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13일, 2023년이 과거 그 어느 때와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로 가장 평균기온이 높았던 해라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기후변화 대응의 기준점으로 삼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지난해 전 지구 평균기온은 1.45℃(불확실성 범위 ±0.12℃ ) 높았습니다. 전 세계가 이 상승폭을 1.5℃ 이내로 묶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 마지노선에 실제 매우 가까이 다다른 것입니다.

1850년 이래 지구의 연 평균기온 그래프를 살펴보면, 그 기울기가 갈수록 가파르게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오르락내리락 변동하면서도 뚜렷한 상승세를 감지하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1920년대 이후부터 상승세는 확실한 추세로 자리 잡았고, 특히 70년대 이후부터 온난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기준점인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의 평균기온이 0.6℃ 이상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부터였습니다. 그로부터 26년 후, +1℃의 선이 깨졌고, 그로부터 불과 9년 만에 1.5℃의 마지노선에 근접하게 됐습니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줄인다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1.5℃ 선을 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IPCC의 보고서 내용이 눈앞의 현실로 찾아온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파리협정이 채택됐던 2015년, 당장 감축을 이행한다면 일시적으로라도 1.5℃ 선을 넘을 가능성이 0%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감축을 미뤄오면서, 이 가능성은 2017~2021년 10% 가량으로 높아졌죠. 그럼에도 여전히 감축을 '남의 일' 혹은 '미래의 일'로 여기면서, WMO에 따르면 2023~2027년 이 마지노선을 넘을 확률은 무려 66%에 달하게 됐습니다.

올해부터 WMO를 이끌게 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셀레스트 사울로 사무총장은 “엘니뇨가 보통 정점을 찍은 후, 전 지구 온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할 때, 2024년은 더 따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온이 변화하는 현상인 엘니뇨와 라니냐는 인간의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온난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연현상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유발한 온난화와 이 현상이 더해지면, 단순히 '역대 연 평균기온 기록 경신'을 넘어 폭우와 가뭄, 산불과 홍수, 혹서와 혹한, 태풍과 사이클론 등 온갖 자연재해로 사회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WMO의 이번 발표에 “최악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것은 우리가 전 지구 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하고, 기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목표를 가지고 지금 당장 행동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1850년 이래로 달라진 지구의 기온 그래프를 살펴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2005년 발간된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용된 에너지의 86%가 화석연료였고, 인간의 탄소 배출 중 4분의 3 가량이 이 화석연료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런데, WMO가 이번에 발표한 1850~2023년까지의 기온 그래프와 1850~2022년까지의 전 세계 1차에너지 소비량 그래프를 살펴보면, 에너지 사용량의 증가와 기온의 상승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수식과 계산을 통해 “기온 상승 요인 중 에너지 사용의 비중은 몇 %이다”라고 이야기할 것 없이, 간단한 그래프로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죠.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이정표만 봐도 아득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이미 이 이정표에 따라 갈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라들도 다수 있습니다. 당장의 걸음을 주저하는 일이 얼마나 미련하고도 위험한 일인지, 단순히 '조삼모사'의 수준을 넘어서 '조삼모구'를 부르는 일인지 우리는 다가올 불과 1~2년의 시간 사이에 직접 몸소 겪게 될 것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로드맵을 지난 연말 새롭게 발표했습니다. 첫 로드맵 발표 이후 2년 반 만의 일입니다. 그 시간 사이, 지구의 기온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부 반가운 변화도 있었습니다. 2021년 로드맵 당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제시됐던 기술 중 실제 상용화가 이뤄진 것은 50%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2년 사이 상용화된 기술의 비중은 64%로 높아졌습니다. 기술의 발달과 그 기술의 확산 속도가 빠른 덕분입니다.

IEA는 〈넷 제로 로드맵: 1.5℃목표 달성을 위한 글로벌 경로〉 보고서에서 이를 빠른 속도의 확산으로 회자되는 역사적인 혁신 사례들과 비교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보급 확산 속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항공기와 겨룰 정도였습니다. 당시 기술의 발달과 수요의 급증이 맞물리면서 미국산 항공기의 생산은 연평균 75%씩 증가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연평균 70%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비용은 연평균 19%씩 줄었습니다. 가격 측면에서 보면, 전쟁 속 폭발적으로 확산한 미국의 항공기보다 더 빠르게 저렴해진 것입니다. 태양광 모듈의 경우, 연평균 24%씩 보급량이 증가했고, 비용은 연평균 18%씩 저렴해졌습니다. 대량 생산을 통한 저렴한 상품의 보급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역사적 사례인 포드의 모델 T보다도 더욱 빠르게 그 가격이 낮아진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풍력 터빈의 경우, 가스 터빈과 견줄만한 혁신의 속도를 보였습니다. 오늘날 육상 풍력과 해상 풍력 보급의 증가 속도는 1970년대 본격 도입된 가스 터빈과 맞먹을 정도로, 연평균 비용 감축률은 오늘날의 '청정 터빈'이 더 컸습니다. IEA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항공기 생산의 증가와 비용 감축은 더 많은 R&D 투자와 같은 정부의 지원이 혁신을 더욱 빠르게 만든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우리의 인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과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우리는 에너지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목적지(탄소중립)와 도착시간(2050년)이 정해진 상황에서, 2030년까지 최소로 필요한 핵심 기술들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0년 필요로 하는 보급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풍력과 태양광발전은 현재 31~32%의 보급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중 태양광의 경우, 현존하는 생산설비의 가동을 최대로 늘린다면, 이미 66%까지도 감당 가능한 수준입니다. 현재까지 발표된 프로젝트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했을 때, 태양광발전의 보급은 최소 필요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130%)까지도 보급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 외 나머지 핵심 기술들입니다. 풍력발전의 경우, 현 시설 규모로는 더 만들래야 만들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생산 설비의 확대가 불가피한데, 현재까지 발표된 설비 구축 계획을 감안하더라도, 2030년 필요한 수준의 36%만을 충족할 정도입니다. IEA는 “풍력발전기 제조사들이 현재 공급망 이슈와 코로나 팬데믹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비용 증가로 인해 생산량 증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생산 역량 증대의 열쇠는 나셀과 타워, 블레이드 등 풍력발전기의 주요 구성요소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액면 그대로 보고서 내용을 바라보자면 '앞으로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풍력발전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걱정만 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산업의 기회라는 측면에서, 이는 '우리의 먹거리'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육중한 구조물을 지탱해야하는 철재 타워를 비롯해 해상풍력에 있어 바닷물 속에 잠겨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터빈만큼 중요한 하부 구조물, 그렇게 망망대해에 설치된 발전기로부터 전력을 끌어오는 전선 등은 우리나라가 이미 잘하는 분야이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글로벌 수요가 폭증한다 한들, 재생에너지에 대한 무관심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이 기회는 남의 몫이 되겠지만요.

한편, 다양한 기업이 제조 사업에 뛰어든 태양광패널과 달리, 풍력터빈의 경우 시장에서 '선수'로 불릴만한 기업이 많지 않은 상황 또한 생산 역량의 신속한 증대가 어려운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소수의 회사가 다양한 풍황에 대응할 다양한 터빈을 제조하기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풍족한 R&D 자금이 뒷받침된다면 얼마든 '맞춤형 터빈'을 개발, 생산할 수 있겠지만, 이는 곧 발전설비 가격 자체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우리나라가 주춤한 사이, 글로벌 탑 티어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우리나라의 풍력터빈 산업에 있어, 이는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 역시 재생에너지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진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기술이 발달하고, 그 기술이 빠르게 확산중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내뿜는 온실가스의 양과 그로 인한 온난화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인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 2030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6년뿐입니다. 감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오늘 '이런 로드맵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당장 동원 가능한 감축수단을동원해야하는 것이죠.

개정된 로드맵에 따르면, 전 지구 차원에서 2030년까지 무려 128억톤을 줄여야 합니다. 해마다 16억톤씩 줄이는 셈입니다. IEA는 이를 위해 최대한 실현 가능한 감축수단들을 따져봤고, 이를 위의 표로 그려냈습니다. 우리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배출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감축량 순으로는 풍력 및 태양광(41억톤), 전기화(27억톤), 에너지 효율 개선(23억톤) 등의 변화를 통해 대대적인 온실가스 줄이기에 나서야 합니다. 여기에 이러한 기술 기반의 접근법 못지않게 우리의 '행동'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후행동에 나서고, 소비 절감을 통한 수요 감축을 달성함으로써 무려 22억톤을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의 그래프는 '우리의 행동 변화와 수요 감축을 통해 22억톤을 줄일 수 있다'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 연재에서도 강조했듯, 이는 IEA라는 기구의 특징 때문입니다.

IEA는 글로벌 환경단체 등 NGO 같은 '친환경적'인 기구가 아닙니다. 1차 오일쇼크 직후(1974년), OECD 회원국들이 세계 석유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입니다. 오직 환경만을 생각해 정부나 기업에 지나치게 가혹한 일을 요구하는 기관이 아닌 것입니다. 여타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IEA에 직접 소속된 직원들도 있지만, 이곳엔 각국 정부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들도 있습니다. IEA의 로드맵을 '권고사항'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한', 소위 '최소 요구 사항'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IEA가 제시한 에너지 부문의 '숙제'는 무엇일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들여다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3년, 역대 가장 더운 해” 공식 확인…핵심은 에너지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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