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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놓인 정치”

입력 2023-12-18 08:00 수정 2023-12-18 09:4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4)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 4주년 기획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전문가에게 묻다
현실로 찾아온 기후위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11)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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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14)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 4주년 기획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전문가에게 묻다
현실로 찾아온 기후위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11)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


“기상(날씨)이 사람의 기분과 같다면, 기후는 성격과도 같다.” 국립기상과학원의 초대 원장을 역임한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가 기후변화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강조할 때, 자주 예를 들어 쓰는 표현입니다. 기분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뀔 수 있을지언정,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면 이는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니까요. 기후변화로 우리가 사는 지구가 '다른 지구'로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린 그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넘어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을 '후순위'로 미뤄왔습니다. 1998년 4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대응을 위한 첫 범정부 대책기구를 만들고, 2001년 9월엔 이를 기후변화협약 대책위원회로 확대·개편하고, 2009년 2월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데에 이어 2021년 5월엔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드는 등 기구와 그 기구가 다루는 내용은 점차 커졌고, 목표 또한 높아졌지만,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 경제산업의 탄소 집약도는,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이,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7월 17℃를 넘어서게 됐습니다. 단순히 관측 이래를 넘어 과거 10만년 가량의 기간 중 가장 높은 온도가 기록된 겁니다. 급기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의 시대가 끝났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죠. 한반도 또한 가뭄과 호우, 폭염, 태풍 등으로 올 한 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

알면서도, 피해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변화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기후변화 대응의 각 분야별 전문가 11명과의 연속 인터뷰, 마지막 인터뷰이는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입니다.


Q) 원장님께서는 오랜 기간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오셨습니다.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을 맡으셨을 당시,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정책 여건이나 사회 전반의 관심도는 해외와 비교했을 때 어땠나요?

A) 기후위기에 대해 우리나라는 해외와 비교하여 거의 비슷하게 알려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회 전반 관심도는 떨어집니다. 우리 정치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안에 매몰되다 보니 기후위기는 항상 뒤 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기후위기 정책은 전 세계 흐름에 겨우 끌려가고, 그 수준은 뒤처져 있습니다.

Q) 이후로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와 지금, 보시기에 우리 사회는, 정부는, 산업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아니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까요?

A) 세계 주류 시장에서 그 참여 조건으로 RE100이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기후위기 대응이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에서도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외치고 있으나 실제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을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산업과 사회의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 장기 전략도 미진하고 통합 추진 체계도 없습니다. 그저 시민들에게 계몽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놓인 정치”
Q) 2050년 탄소중립에 앞서 국제사회와 약속한 시간인 2030년은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가장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가장 부족하고,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일까요?

A) 자연은 생산 '과잉'으로 파괴되고 사회는 서로 간의 '경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 옆 동료를 이기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불안이 우리 삶을 짓누릅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원동력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이 불행의 원동력이 우리를 서로 간 더 치열하게 만들고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하고,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환경을 파괴하고 생물을 멸종시키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칩니다.

기후위기는 문명 자체의 위기이므로 해오던 방식대로 메꾸기만 하거나 현실에서 미래를 투사한다면 지속할 수 있는 미래로 갈 수 없습니다. 현실이 모든 것을 지배하면 새 세상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결정자가 기후위기로 인한 전환 시대에 그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위기를 위기라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더는 맡겨 둘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놓인 정치”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함께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에 연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은 우리를 더 쪼개려고만 합니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후위기가 점점 더 커지는 것보다 우리 공동체의 연대가 점점 더 약해지는 것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시민들이 깨어나 공동체의 연대를 키우는 것입니다.

Q) 2050 탄소중립 달성 여부를 두고 볼 때, 여러 면에서 다른 선진국 대비 열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강점,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이를 통해 그저 '안 될 일'이라고 낙담하기보다 작게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A) 우리는 여러 위기에서 회복뿐만이 아니라 도약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회복탄력성이 큽니다.

인류는 기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기후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가 닥치면 자연만을 통제할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정치, 경제와 사회도 급속하고 심각한 변화와 불확실성에 내몰려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보다 인류에게 더 제한을 가하는 지배적인 조건은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을 것입니다. 지금껏 달려왔던 세상을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위기가 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기후위기의 파국 상황에서 도리어 길을 찾는다는 뜻의 '해방적 파국'이 일어날 여건이 마련된다고 보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려야 최선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죠. 기후위기라는 파국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 문제점을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기후위기로 인해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된 것입니다.

미래 세상은 미리 주어진 조건이 아니기에 기후위기는 불가피한 미래가 아닙니다. 기후위기는 우리 스스로 만든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바꾸면 됩니다. 바야흐로 모든 것이 가능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

Q)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있어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서 일반 시민 독자와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관계자, 입법을 하는 국회 관계자, 각종 활동의 주체인 산업계 관계자 각각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정치가 놓여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기존 시스템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 기후위험 앞에서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까?'하는 문제입니다. 전환시대에 기존 틀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필패입니다. 기존 틀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에 도전하는 것이 정책결정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입니다. 지금은 더욱 그래야 할 때입니다. 불가능한 세상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후위기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놓인 정치”
병든 지구에서 이윤 추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눈감고, 난제와 한계에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나라 스스로 정한 과제가 아닙니다. 유엔 차원 국제 정치적 합의뿐만이 아니라 세계 주류 시장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우리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프레임입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트렌드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면 우리 산업은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재생에너지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지 도태할 것인지 결정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에너지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수출 위주의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산업 경쟁력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재생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후위기 이전에 경제위기가 먼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병든 세상을 인식하더라도 정치 참여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면 망해가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시민들은 정치가를 포위해 들어가 압박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깨어난 시민이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라고 자문해야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에 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놓인 정치”
11주에 걸쳐 진행된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 4주년 기획, 〈녹색성장 15년, 탄소중립 선언 3년…전문가에게 묻다: 현실로 찾아온 기후위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릴레이 인터뷰. 이 인터뷰는 조명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18대 환경부 장관), 서정석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전문위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 이동근 서울대학교 교수(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장),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성창모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특임교수(녹색기술센터 초대 소장),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 이선경 대신경제연구소 ESG리서치센터장, 조공장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 등 11명의 전문가와 함께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절망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사이에 놓인 정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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