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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입력 2023-07-17 08:01 수정 2023-07-17 08:0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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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2)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부 기준 지난달 25일, 중부 기준 지난달 26일 시작해 이제 만 3주가 지난 장마는 벌써 너무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예보를 하고, 각종 경보를 발령하고, 이를 전파하고… 이와 관련된 모두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할 겁니다. 문제는, 장마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강한 엘니뇨와 태풍 등 한반도 수재해에 영향을 미칠 다양한 변수들이 넘쳐난다는 점입니다.

“시간당 30~80mm에 달하는 매우 강한 비가 예상된다.” 이번 장마 기간, 가장 많이 접한 예보 내용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일정 기간 동안 내리는 비의 총량을 뜻하는 '강수량'을 넘어, 비의 강도를 강조한 경고입니다. 똑같은 100mm의 강수라 할지라도, 하루 내내 가랑비 내리듯 내려 100mm의 강수량을 기록한 비와 종일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다 심야 1~2시간 사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100mm가 쏟아진 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당 50mm 이상의 비가 내릴 때의 모습. 우산을 써도 온몸이 비에 젖고, 와이퍼를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어렵다. (자료: 기상청)

시간당 50mm 이상의 비가 내릴 때의 모습. 우산을 써도 온몸이 비에 젖고, 와이퍼를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어렵다. (자료: 기상청)

때문에 비의 강도를 의미하는 '시간당 강수량'은 각종 경고의 지표로도 쓰입니다. 당장 호우특보만 해도 그렇습니다. 호우주의보는 3시간 강수량이 60mm 이상이거나 12시간 강수량이 110mm 이상일 걸로 예상될 때 내려집니다. 호우경보는 3시간 강수량이 90mm 이상일 걸로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수량이 180mm 이상일 걸로 예상될 때 내려지고요. 호우로 긴급재난문자가 보내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시간 강수량이 50mm, 3시간 강수량이 90mm 이상일 때, 또는 1시간 강수량이 72mm 이상일 때, 재난문자는 즉각 보내지게 되죠.

하지만 이러한 예보와 각종 경고를 접하는 시민들은 정작 '시간당 강수량 ○○mm'가 의미하는 바를 알기 어렵습니다. 통상 우리가 '약한 비'라고 부르는 비는 시간당 3mm 미만의 비를 의미합니다. 시간당 3~15mm의 비가 내리면 '보통 비'라고 부르고요. 시간당 15~30mm 가량의 비부터 우리는 '강한 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시간당 30mm 이상의 비를 '매우 강한 비'라고 부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그렇다면, 그러한 강한 비는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시간당 20~30mm의 비가 내리면 이미 우산을 써도 옷이 젖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운전자의 경우, 조금씩 시야 확보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주행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죠. 시간당 30mm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하수구나 배수구의 역류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도로도 차츰 물에 잠기게 되죠. 많은 전문가들은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합니다.

시간당 50mm 이상의 비가 내리는 경우, 우산을 편들 온몸이 젖을 만큼 온 사방에서 빗방울이 튀게 됩니다. 지하 시설엔 빗물이 유입되기 시작하고, 운전자가 아무리 와이퍼를 작동한다 해도 전방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집니다. 지난해 서울 강남 지역의 침수를 떠올리며 '시간당 100mm 이상'을 재난재해 발생의 바로미터로 여긴다면, 큰 오산입니다. 시간당 30mm만 되더라도 우리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재해재난을 내다보고,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산사태로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의 사례는 바로 시간당 강수량에만 집중했을 때 '심각한 재해 대비 공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제주와 남부지방은 6월 25일부터, 중부지방은 6월 26일부터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장마 시작 이후 줄기차게 비가 온 것이 아니라, 이번 장마는 강수와 소강상태가 번갈아 찾아오며 1차, 2차, 3차로 나뉘어 내리고 있죠. 3차 장마가 시작된 7월 7일부터 산사태가 발생한 15일 새벽까지, 182시간 동안 경북 예천군의 강수 기록을 분석해봤습니다.

3차 장마의 첫 강수 시작부터 산사태 발생 때까지, 예천군에선 비가 내린 시간보다 비가 그친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7일부터 산사태 전날인 14일까지, 아무리 강하게 비가 쏟아졌다 한들, 시간당 강수량은 11mm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강수가 시작된 7일부터 만 나흘이 지나서야 누적 강수량이 100mm를 넘어섰을 정도였죠. 강수의 강도도, 강수의 총량도, 예보나 장마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주목받기 어려운 수준이었던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시간대를 좁혀, 산사태 전날인 7월 14일 01시부터 첫 산사태가 발생 직후인 15일 03시까지의 강수기록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4일 종일 '약한 비'~'보통 비'가 내렸습니다. 소위 '강한 비'라 분류되는 강도로 비가 내린 것은 딱 2시간, 15일 새벽 1시(시간당 20.5mm)~2시(시간당 16mm)까지였죠. 강수 강도만 놓고 보자면, 호우특보가 내려지기도, 긴급재난문자가 보내지기도 어려운 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시간당 강수량이 20mm를 겨우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사는 집들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미리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시간당 강수량'이라는 기존의 풀이방식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이번 산사태였기에, 원점에서 다시 상황을 돌아봤습니다. 당장 이번 산사태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의 감천면과 효자면의 두 마을은 지자체로부터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분류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봄철 해빙기, 지자체는 산사태 취약지역에 대한 점검을 하는데, 이들 지역은 그런 점검의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죠. 이는 단순히 지자체의 '모니터링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민들조차 우리 동네가 산사태에 취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웠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지난 7일부터 시작된 3차 장마 기간의 강수가 다른 지역들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간 누적된 강수량을 보면, 상황은 달랐습니다. 이 지역의 땅은 말 그대로 '물 먹은 땅'인 상태였습니다. 공식적인 장마 시작 전인 6월 15일부터 산사태 전날인 7월 14일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을 살펴봤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집중된 곳 중 하나가 바로 경북 예천군이었던 겁니다. 누적 강수량의 중요성에 대해 이우균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과 교수는 JTBC 뉴스특보 인터뷰에서 “누적 강수량이 많으면 토양이 많은 물을 머금고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산사태 위험이 높게 나타난다”며 “거기에 국지성 호우 등이 더해지면 산사태 위험이 더 높아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상 관측 데이터와 예보 데이터, 산림 정보와 그간의 산사태 기록 등을 종합해 머신러닝을 통한 산사태 예측에서도 예천군의 위험은 나타났었습니다. 고려대학교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이 지난 14일 저녁 6시에 발표한 산사태 예측에서 경북 예천군은 충남과 전북 지역 산지와 함께 산사태 위험이 '높음'~'매우 높음'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보다 자세한 원인 분석을 위해, 예천군의 산림 데이터도 확인해봤습니다. 작년까지도 산림이었던 곳들 가운데, 올해 더 이상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아 빨갛게 표시된 지점들이 눈에 띕니다. 고려대 오정리질이언스연구원의 이수종 연구원은 “과거 7년 동안의 산사태 이력 자료와 비교해보면, 감천면의 일 강수량은 평균(176mm)보다 낮았지만, 누적 강수량이 평균(276mm)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며 “산림내 토양이 많은 물을 머금은 상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원은 또 “지난 1년간 인위적 토지피복의 변화를 살펴봤을 때, 산림에서 올해 비산림지로 변화된 지역이 나타났다”며 “산림 가장자리에서의 인위적인 토지피복의 변화도 해당 지역의 산사태 피해를 유발했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선 수색과 구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장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들려온 피해 양상과 규모만 봐도 '역대 최악의 장마'로 꼽힐 듯한데, 기록을 보면 걱정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1차와 2차, 3차로 나뉘어 내린 장마 중 강수의 대부분이 이번 3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인명피해 또한 3차 장마에 집중되어 있고요. 산사태뿐 아니라 오송 지하차도에서 벌어진 참사의 경우 인재라는 평가마저 나오는 상황입니다. 앞선 1~2차 장마가 3차 장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게 하기보다, 도리어 안일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우려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너무도 큰 인명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한 이번 장마. 정작 강수량으로 보면, 아직 그간의 '역대 최고 강수량' 기록에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7월 15일 기준, 중부지방의 올해 장마 강수량은 489.1mm로, 역대 최고 기록인 2020년의 856.1mm에 한참 못 미칩니다. 이번에 피해가 집중된 남부지방의 경우에도 2006년 646.9mm보다 적은 473.4mm를 기록 중이고요. 제주의 경우, 역대 장마 최고 기록인 1,167.4mm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16일까지 집계된 숨지거나 실종된 이의 수는 40명이 넘고, 273건의 시설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장마가 강수 기록으로는 역대 기록을 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지난 3일, 190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여름…우리의 적응력은?〉에서 우리나라의 취약성에 대해 설명해 드린 바 있습니다. 취약성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과는 비례하고, 적응 능력과는 반비례하게 되죠. 그런데, 미국 노터데임의 ND-GAIN 인덱스 평가 결과, 우리나라가 노출된 기후변화의 양상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 환경에 노출됐을 때, 국가와 사회의 민감도는 북한이나 수리남보다도 더 민감하고요.

그런 와중에 '우리가 잘하는 줄 알았던' 적응 능력에서도 약점이 드러났습니다. 보건이나 식량안보 측면에선 선진국 수준의 평가를 받았지만, 인프라 부문에선 세계 99위에 머물렀던 겁니다. 장마처럼 비가 많이 올 때를 위해 지어진 제방은 무너졌고, 산사태 예측에서 '위험' 평가를 받았던 곳은 정작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장마 기간은 아니었더라도, 비 오는 날 도심 한복판 다리의 보행로가 무너지기도 했죠. 인프라의 총체적 난국은 연구기관의 평가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2023년의 현실에서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중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예측불허 '도깨비 장마'…시간당 강수량만으로 설명 안 되는 재해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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