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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입력 2023-07-03 08:01 수정 2023-07-03 09:3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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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0)

지난주, 전국 각지에 한 차례 장맛비가 쏟아졌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부 남부지방의 경우 토요일까지 비가 이어졌죠. 정체전선이 남북으로 빠르게 오르내리면서 강수가 집중되는 지역 역시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25일, 제주와 일부 남해안에 강한 비를 뿌렸던 비구름대는 26일 경기 북부와 강원 일대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다음 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27~28일엔 호남과 경남에 비가 집중됐습니다. 29일엔 다시 전선이 북상하면서 수도권과 강원, 충청권 등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고, 30일엔 또 다시 전선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경북에서 제주까지, 한반도 남쪽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많은 비를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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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날마다 '일 최대 시간당 강수량'이 기록된 곳도 좁은 한반도 내에서 위도를 오르내리며 달라졌습니다. 장마 첫날, 제주 태풍센터엔 시간당 49mm의 비가 쏟아지며 이날 최대치가 기록됐습니다. 26일엔 충북 충주에서 무려 시간당 68.5mm의 매우 강한 비가 내렸죠. 다음 날엔 그날의 일 최대 60분 강수 기록이 경남 남해(시간당 74.5mm)에서 기록됐고, 28일엔 전북 고창에 시간당 62.5mm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29일, 이번엔 충남 서산에서 시간당 61.2mm의 호우가 내렸고, 30일, 경북 영주에 시간당 39mm의 강한 비가 내렸습니다.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1차 장마' 기간 전국의 강수량은 꽤나 고르게 분포됐습니다. 지난해, 수도권과 충청 등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동안 남부지방엔 장마가 이어졌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400mm 넘는 유독 많은 강수량이 기록된 지점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산입니다. 이번 1차 장마 기간, 다량의 수증기가 서해 또는 서남해에서 유입됐습니다. 이는 곧 내륙의 산맥과 부딪히며 많은 비를 뿌렸습니다. 호남과 경북을 잇는 소백산맥 일대에 이 기간의 강수가 집중된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이번 집중호우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밤사이 집중된 강수입니다. 출근 시간대부터 빗방울이 가늘어지더니 한낮엔 '장마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비가 그치고, 이내 한밤에 퍼붓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학창시절, 중학교 과학 시간을 떠올리면 그 답이 금방 나옵니다.

공기가 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은 온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온이 10℃인 경우, 1kg의 공기는 9.41g의 수증기를 품을 수 있습니다. 20℃에선 17.3g으로, 30℃에선 30.4g으로 그 양은 점차 더 늘어납니다. 바다, 정체전선, 저기압 등을 통해 한반도로 수증기가 유입될 때, 여름철 한낮 더운 기온의 상태에선 공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지만,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한낮에 품었던 양 만큼 머금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낮 시간 달궈진 땅보다 대기 상층부는 밤사이 더 빠르게 식습니다. 결국, 밤에는 낮보다 대기 하층과 상층의 온도차가 커지게 되고, 그 결과 대기는 불안정해지죠. 안 그래도 물방울이 된 수증기가 하늘에 가득한데, 대기까지 불안정해지면서 강한 비를 뿌리게 되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지난 한 주 동안 이어진 호우가 지나자 곧바로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주말 사이, 제주를 제외한 전국 거의 대부분 지역엔 폭염특보가 내려졌죠. 지난 토요일, 서울과 춘천, 대전의 기온은 33℃ 안팎에 달했습니다. 일요일엔 중부지방에 점차 구름이 늘어나면서 폭염이 조금 덜해진 듯 보였지만, 대구의 경우 전날보다 기온이 2도 넘게 더 올랐습니다.

그런데, 1차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나 걱정하던 찰나. 또 다시비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시금 정체전선이 북상하는 겁니다. 사실, 주말에도 제주와 일부 남해안 지역엔 빗방울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정체전선이 사라지거나 한반도를 완전히 떠났던 것은 아니었던 거죠. 기상청은 정체전선이 조금씩 북상함에 따라 4~5일, 전국에 한 차례 더 장맛비가 올 걸로 내다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2~3일, 장맛비는 제주와 전남, 경남 서부 남해안에 내리지만, 4일부턴 점차 전국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 제주엔 시간당 30~60mm의 강한 비가, 3일 새벽엔 전남 해안에 시간당 20~40mm의 강한 비가 집중될 걸로 예상됩니다. 이 기간, 제주엔 30~100mm(산지 120mm 이상), 전남권엔 10~50mm(해안 70mm 이상), 경남 서부 남해안엔 5~2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습니다.

관건은 4~5일입니다. 4일 오전엔 전남권에, 4일 밤부터 5일 새벽 사이엔 중부지방과 경북 북부에 시간당 50mm 넘는 강한 비가 예보됐습니다. 이후 정체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5일 새벽부터 오전 사이엔 전라권과 제주에 또 다시 시간당 50mm 넘는 강한 비가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강수 강도는 예측이 됐지만, 이 기간, 얼마나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질지 그 총량에 대해선 기상청은 3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발표할 계획입니다.

중부지방도 걱정이지만, 남부지방의 경우 정체전선이 북상하든, 다시 내려오든 계속해서 비가 오는 지역에 포함되면서 많은 피해가 우려됩니다. 이미 경북 영주에선 지난달 30일 새벽, 산사태로 생후 14개월 된 여아가 목숨을 잃고 말았죠. 이미 일주일 가까이 지속된 많은 비로 지반이 약해진 상황에서 또 다시 많은 비가 온다면, 산사태 위험은 더 많은 지역에 걸쳐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이러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2일, 정부는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수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를 억제하겠다는 감축 정책이 아닌, 당장 발생하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적응 정책을 담은 계획입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대책이 담긴 이 계획이 처음 수립된 것은 지난 2020년 12월 14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IPCC의 새로운 기후 전망이 나왔고, 당장 오늘날부터 앞으로 예상되는 극한 기상현상과 그로 인한 피해가 더욱 악화일로를걸을 걸로 예상됨에 따라 기존보다 더욱 강화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업데이트'에 나선 겁니다.

정부가 밝힌 이 대책의 목표는 단순 명료합니다.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겁니다. 과학적 예측에 기반해 적응 대책을 지원하고, 모든 적응 주체가 함께하는 역량을 재고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론 국민 개개인이 기후위기를 통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본격적인 1차 장마 이틀째였던 6월 27일, 수문 주변의 부유물을 제거하려다 실종됐던 60대 A씨는 결국 숨진 채 발견됐고, 30일, 14개월 B양은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하천의 범람 대비 설계빈도를 100년에서 200년으로 상향하고, 대심도 터널과 지하 방수로, 강변 저류지 등을 확충한다. 기후 감시 및 예측 시스템을 보다 정밀하게 만들고, 그 정보를 시민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폭염, 가뭄 등 위험요인별 시각화를 꾀한 기후위험지도를 만든다. 폭염과 폭우 등 기후위험을 고려해 도로와 철도의 설계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항만과 어항의 설계 기준도 기후변화에 맞춰 전면 개선한다. AI를 활용한 홍수 예보 시스템을 도입해 예보와 경보를 지금의 3시간 전에서 6시간 전으로 앞당긴다. 산사태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한다. 극한 기상현상에 취약한 노약자와 야외근로자의 온열 및 한랭 질환을 예방한다. … 이번 대책에 담긴 내용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대책임은 분명하나, 이번 1차 장마에서도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그보다 앞선 지난달 19일 폭염 상황에선 마트 노동자가 숨지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결국, 이는 우리나라가 기후변화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기후변화의 취약성은 기후변화의 영향과 적응능력에 따라 결정됩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극한 기상 현상에 노출되는 정도와 그에 대한 민감도에 따라 결정되죠. 집중호우, 폭염, 가뭄, 이상 한파 등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 현상 그 자체는 당장 우리가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가 없는 일들입니다. 연령이나 건강 상태, 노동 환경 등의 민감도 또한 조절이 쉽진 않습니다. 결국, '덜 취약하게' 만들기 위한 관건은 적응 능력에 있습니다. 정부의 대책 속에 담긴 각종 인프라도, 그 외 각종 정책이나 첨단 기술 그 자체도 적응 능력에 포함됩니다. 의지와 노력, 자금이 투입된다면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그 자체를 저지하기 위해선 온실가스 감축이 필수적이겠지만, 당장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로썬 결국 달라진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이 기후변화 대응의 두 축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적응하는 방법 중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덜 민감해지기', '적응 능력 키우기' 뿐인 것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나라마다 서로 다른 취약성과 적응 능력을 종합 평가한 ND-GAIN 인덱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 노터데임 대학이 해마다 발표하는 지수죠. 지난 2022년 11월, 158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로 비롯된 손실과 피해…누가, 어떻게 책임지나〉에서 이 지수에 대해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당시엔 2020년 기준으로 평가된 수치였는데, 2021년 기준 새로 평가한 결과에서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문제의 취약성과 대응력을 종합한 '종합점수' 기준, 우리나라는 67.9점으로, 전년 대비 0.7점 올랐습니다. 하지만 순위는 세계 185개국 중 15위로 전과 같았습니다. 문제는 '취약성 지수'입니다. 우리나라의 취약성 지수는 리투아니아와 공동 51위에 머물렀습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자면 한참 낮은 수준이었죠. 어떤 이유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나라'로 평가받은 걸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앞서 설명해 드린, 기후변화 취약성의 결정 요소에 근거해 요소별 우리나라의 순위를 살펴봤습니다. 기후변화에 노출되는 정도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149위로 하위권에 있었습니다. 당장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극한 기상현상이 전 세계 185개국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나쁘다는 겁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조건 자체가 나쁘니, 남들과 비슷한 취약성을 보이려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죠. 민감도의 경우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세계 52위로, 노터데임 대학 평가에 따르면, 47위에 오른 북한과 수리남보다 더 민감한 나라였습니다. 똑같은 극한 기상현상에 노출됐을 때,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 자체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적응 능력은 어땠을까요. 적응 능력의 종합 점수는 세계 28위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전체 평가 대상인 185개국 중 나쁘지 않다는 것이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에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이나 독일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일본보다도 순위가 낮았으니까요. 특히, 얼핏 '우리가 잘하는 줄 알았던' 인프라 부문에서, 한국의 순위는 99위에 그쳤습니다. 거주 환경 부문 또한 46위로, 순위가 결코 높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취약성 평가에선 세계 51위에 그치고 말았죠. 기후위기 적응을 위한 대비는 잘 하고 있는 편일지 몰라도, 취약성 자체는 여전히 심각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노터데임 대학의 평가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가 더욱 우려되는 소식마저 들려왔습니다. 정체전선이 다시금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향후 1주일을 걱정하게 만든 소식이라면, 이 소식은 앞으로 수십년을걱정하게 만든 소식입니다. 바로, 한반도의 온실가스 농도가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는 소식입니다.

기상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2 지구대기감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25ppm으로 전년 대비 1.9ppm 늘어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이산화탄소보다 더욱 온실효과가 큰 메탄의 경우, 2022년 2011ppb로 전년 대비 6ppb 오르며 마찬가지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요. 문제는, 이러한 상승세가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으며, 이 수치가 전 지구 평균보다도 높다는 점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논의하고, 로드맵을 만들고, 대책을 세운지도 수년, 십수년이 아닌 '수십년'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온실가스 농도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고, 해마다 극한 기상현상으로 인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마다 책임은 언제나 '하늘 탓'으로 미뤄졌습니다. 이제 겨우 7월 초. 본격적인 폭염도, 본격적인 호우도 아직이고, 태풍 또한 아직입니다. 부디 올해부터 만큼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재해 상황에서 '하늘 탓'만 되풀이하지 않기를, 정부와 지자체가 진정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보며 이번 주 연재를 마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호우가 공존하는 올 여름…우리의 적응력은?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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