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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입력 2023-06-26 08:00 수정 2023-07-07 21:0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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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9)

탄소중립을 이야기한 나라는 전 세계 149개국에 달합니다. 이중 6개 나라는 탄소중립을 이미 달성했고, 한국을 비롯한 26개국은 탄소중립을 법제화했으며, 법제화는 아직이나 정책으로 마련한 나라도 48개국이나 됩니다. 9개 나라는 탄소중립 선언까지 진행했고, 60개 나라가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2015년,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제한하겠다며 전 세계가 뜻을 모은 파리협정 이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지구의 기온은 날로 뜨거워졌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도, 해수면의 온도와 높이도 계속 높아져만 갔으니까요. 파리협정에 이름을 올리고, 탄소중립을 하겠다며 너도나도 선언을 하고… 그 과정에 '공수표'도 여럿이었지만, 8년의 세월 동안 이미 눈에 띄는 변화를 이룬 것도 있습니다. 바로, 발전믹스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전 세계가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지였습니다. 2015년, 전 세계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가장 큰 발전원이었던 석탄은 발전비중이 38.72%에서 지난해 35.72%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재생에너지의 경우, 6.93%에서 14.75%로 배 이상 늘었습니다. 또 다른 무탄소 발전원인 원자력발전의 경우, 2015년 10.58%였던 발전비중은 보합세를 보이다 지난해 9.15%로 10% 선이 깨졌고요.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EU의 경우, 파리협정 이후의 시간 사이 석탄의 비중과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역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2022년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20.74%로 석탄(16.75%)을 넘어섰습니다. 수력까지 포함할 경우, 그 비중은 35.95%에 달해 '주력 발전원'으로 거듭날 정도이며, 무언가를 '태우는 발전원'보다 그렇지 않은 발전원(태양광, 풍력, 수력, 원자력 등)의 발전량이 더 많아졌고요.

그저 '지구를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도 대대적인 변화일 겁니다. 각 나라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봉사하는 마음에서 발전비중을 바꾼 것은 더더욱 아닐 거고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탈화석연료에, 탈석탄에 나선 것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1년 5월 3일, 76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1만 3천명 '조기사망', 피해액 58조원…국내 석탄발전소 피해 따져보니〉를 통해,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피해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는 핀란드에 기반을 둔 연구기관 CREA(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의 연구 결과였습니다. 500MW급 이상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국내 가동을 시작한 1983년부터 2020년 연말까지, 그리고 그 이후부터 가동중이거나 가동 예정인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30년)을 다할 때까지의 피해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겁니다.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한 이래로 9,500명의 시민이, 많게는 최대 1만 3,000명이 조기사망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리고, 2021년부터 우리나라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가 문 닫는 2054년까지 1만 6,000명(최대 2만 2,000명)의 조기사망자가 더 나올 걸로 예상됐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도 이미 160억달러(최대 22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앞으로 210억달러(최대 290억달러)의 피해가 추가로 발생할 걸로 예상됐죠.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피해는 인구가 많은 지자체일수록, 석탄화력발전소와 가까운 곳일수록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한 해에만 210명 넘는 시민이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로 조기에 숨지는 것으로 조사됐고, 경제적 피해 규모만도 연 3억 31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이 피해는 갈수록 커질 걸로 예상됐다는 겁니다.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는 과거 40년보다 앞으로의 30년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장 기간으로만 따져도 10년이 더 짧고, 신형 발전 설비일수록 좀 더 나은 효율과 더 개선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갖췄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당시 CREA는 “수도권이나 영호남에 위치한 발전소 인근 대도시의 인구밀도가 매우 놓다”며 “결국 인구 측면으로나 GDP 측면으로나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따른 피해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사람도 돈도 대도시에 더욱 몰리는 만큼, 인적 피해도, 경제적 피해도 커지는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우리나라는 분명 탈석탄을 이야기한, 정책으로 내세운 나라입니다. 이와 동시에 2023년 현재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짓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짓는 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에 나가서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죠. 탄소중립을 법제화했고, 2050년을 탄소중립달성 시점으로 정했음에도, 2050년 이후에도 가동될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겁니다. 물론, 2050년 이전에 강제로 문을 닫거나, 연료를 석탄에서 LNG로 바꾸는 등 여러 시도가 가능하겠지만요. 그저 발전사업자에게만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일까요. 이러한 언행 불일치는 정부의 책임이기도, 이러한 사업에 돈을 투자한 공적 금융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공적 금융의 대표는 바로, 국민연금입니다.

지난 22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2022 화석연료금융 백서: 석탄을 넘어 화석연료금융을 말하다〉를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주식 투자나 채권, 대출 등을 통한 국내 금융기관이 석탄 분야에 제공한 금융의 잔액 규모는 56조 5천억원에 달했습니다. 공적 금융의 비중이 35조 7천억원으로 절반을 넘고, 이중 국민연금의 석탄 금융만도 7조 2,818억원에 달했습니다. 산업은행의 전체 석탄 자산 규모(23조 6,391억원)보다는 작지만, 산업은행의 한전 지분을 제외한 석탄 자산으로 보면, 국민연금이 국내 공적 금융 중 가장 많은 돈을 석탄에 투입했습니다. 규모가 너무 커서 감히 감도 오지 않을 정도인데요, 7조 2,818억원을 5만원권 신권 다발로 쌓으면 높이만도 1,602m에 달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3배 가량인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공적 금융이 '든든한 투자자'로 남아있는 한, 석탄화력발전사업은 정부의 탈석탄 정책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외적인 탈석탄 메시지와 달리, 소위 '나랏돈'은 계속 석탄을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꿔 말해,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따른 피해에도 공적금융의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앞서 국내 석탄화력발전으로 인한 피해를 연구한 CREA는 이 피해에서 '국민연금의 책임'을 따져봤습니다. 이번엔 국내 싱크탱크인 기후솔루션이 함께 했습니다.

CREA와 기후솔루션은 각 석탄발전 사업자나 개별 사업에 투입된 국민연금의 자금 규모에 따라, 피해의 기여도인 '귀속계수'를 계산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국내에서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석탄화력발전기 총 15기에 있어 '국민연금의 몫'이 나옵니다. 많게는 11.865%에서 적게는 0.194%까지. 국민연금의 귀속계수가 '0'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석탄화력발전소는 비단 이산화탄소만 배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기간, 주요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거나 최대 출력을 제한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영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각 발전소별, 이산화황과 초미세먼지, 이산화질소 등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을 따져봤고, 위의 귀속계수에 따라 '국민연금 몫'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도 계산됐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피해의 책임'도 계산됐습니다.

2021~2022년,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따른 사망 건수는 총 1,968건에 달했습니다. 이중 국민연금의 책임은 220건. 산술적인 계산에 따른 결과라 할지라도, 국민연금이 이들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함으로써 220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겁니다. 경제적 피해 규모는 총 12조 9천억원에 달했고, 이중 국민연금의 투자로 인한 피해만도 1조 4천억원에 달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사망에 이르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석탄화력발전소 발(發) 건강 피해 역시 심각했습니다. 전국 석탄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온 대기오염물질이 유발한 병가일수만도 8,098일. 이중 국민연금의 책임은 906.9일이었습니다.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돼 천식을 앓는 어린이의 수만도 2,767명으로, 국민연금의 투자에 따른 환자 수만 315명에 달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어린이 천식 신규 발생 건수는 모두 589건으로 조사됐고, 이 중 67명의 천식 발생에 국민연금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 밖에도 천식으로 인한 응급실 진료, 미숙아 출산 등 문제의 책임에서도 국민연금은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투자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금융이 대표적인 좌초 자산인 석탄에서 아직도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민연금의 돈이 투입된, 현재 건설중인 석탄화력발전소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발전소 자체의 최소 수명(30년)조차 보장하기 어려운 상태이고, 이는 결국 투자금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는 연금 수령자가 받아야 할 연금을 깎아 먹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 CREA와 기후솔루션의 이번 연구 결과 드러났습니다. 국민의 안녕과 복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역설적으로 시민의 건강과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이미 해외 주요 연기금은 탈석탄을 넘어 '탈화석연료 포트폴리오'를 구성 중입니다. 또, 수익률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주요 글로벌 민간 금융 기업들도 마찬가지의 방향으로 이동 중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고민은 피해와 손실을 키우기만 할 뿐입니다. 석탄 기업에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는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사 APG, 자체적인 투자 배제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G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석탄에 발이 묶여 시민들의 건강도, 연금 투자 수익도 잃는 '최악의 수' 만은 피해야 할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그 이면에 숨겨진 석탄의 청구서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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