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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벚꽃 없는' 벚꽃축제…기후 위기 알리는 '경고'

입력 2023-04-11 20:54 수정 2023-04-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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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벚꽃이 없는 벚꽃축제들이 최근 열렸습니다. 예상보다 꽃이 너무 일찍 펴서 이미 져버렸기 때문이죠. 과수 농가들도 속상해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왜 그런지, 밀착카메라 이희령 기자가 가봤습니다.

[기자]

제 옆에 있는 나무가 벚나무인데요.

예년 같았다면 지금쯤 꽃이 활짝 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져서 없어졌습니다.

이 가지에 있는 붉은 건, 꽃잎이 떨어지면 남는 꽃술입니다.

이상 고온으로 벚꽃이 빨리 피고 지는 바람에 이곳은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열게 됐습니다.

축제 일정을 급하게 바꾸긴 어려웠습니다.

지자체는 '벚꽃은 꺾였지만 그냥 하는 축제'라고 홍보했습니다.

[오세라/광주광역시 수완동 : 텅 빈 벚꽃이라도 좀 찍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달래려고 합니다.]

26.6km나 되는 벚꽃길이 이 지역 축제의 자랑거리인데, 길 양옆으로 가득했던 꽃이 올해엔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구간을 지나가 보니 지난해와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올해 대전 지역에 꽃이 핀 날짜는 3월 22일, 4월 초에 필 거란 예측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다른 축제들 역시 날씨가 야속합니다.

축제 현장에 진짜 벚꽃이 많진 않지만, 대신 나무마다 다른 꽃들이 달려 있습니다.

아예 정면 돌파를 하자는 마음으로, 나무마다 재미있는 문구를 달아뒀습니다.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한 현수막도 눈길을 끕니다.

[변재근/강원 횡성군 횡성읍 : 벚꽃이 졌다는 걸 알고 왔는데, 오다가 이거 보고 한참 웃었어요. 빵 터졌어요.]

[김성은/서울 종암동 : 여기도 인정을 하고 있구나. 그래, 차라리 솔직한 게 더 좋다.]

관광객들은 이런 상황이 의아하기만 합니다.

[유연승/충북 옥천군 옥천읍 : 부산 질 때 여기(대전·충청 지역)도 같이 지더라고요. 필 때 같이 피고. 환경 기후 탓 같아요.]

일찍 핀 꽃이 반갑지 않은 곳은 또 있습니다.

바로 과수 농가입니다.

[박항석/배 재배 농민 : (지난해보다) 한 열흘 정도 빨랐어요. 반갑지 않죠. 너무 일찍 피니까.]

배꽃이 예정보다 일찍 피면서, 꽃샘추위가 찾아온 뒤로 냉해피해를 입은 꽃이 많다고 합니다.

이 꽃은 추위에 얼어서 꽃술이 탄 것처럼 까맣게 변했습니다.

이 꽃도 겉으로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안을 살펴보니 마찬가지로 까맣습니다.

이런 꽃들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박항석/배 재배 농민 : 과일이 제대로 안 달리고, 달려도 기형과(기형이 있는 과일)가 되거나… 상품성이 없어지는 거죠.]

꽃이 빨리 피다보니 벌도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꽃가루를 묻혀 인공 수정을 해줘야 했습니다.

일찍 핀 꽃은 기후 위기의 심각함을 알리는 '경고 신호'입니다.

[정수종/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개화 시기가) 어느 정도 빨라지다가 계속 빨라지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그곳에 (꽃이)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식물 생태계, 곤충 생태계 다 위험해지고 그다음 영향을 받는 동물 생태계, 그다음 인간까지 영향이…]

따뜻한 봄에 꽃 축제를 즐기는 일이, 먼 미래엔 사진에나 남아 있는 기억이 될지도 모릅니다.

일찍 펴버린 꽃들을 마냥 예쁘게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VJ : 김대현 / 영상그래픽 : 김지혜 / 인턴기자 : 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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