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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입력 2023-02-20 08:00 수정 2023-02-20 08:1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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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1)

주말 사이, 반짝 공기가 탁해졌습니다. 지난 18일, 수도권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서울 62㎍/㎥, 인천과 경기 65㎍/㎥를 기록했고, 충남은 70㎍/㎥에 달했습니다. 그 외에도 세종(63㎍/㎥), 충북(53㎍/㎥), 전북(49㎍/㎥), 대구(47㎍/㎥), 강원(44㎍/㎥), 대전(40㎍/㎥), 경북(37㎍/㎥) 등 전국 대부분의 농도가 기준치를 웃돌았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으면 무조건 특정 국가를 탓하는 기사와 여론이 쏟아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농도를 부르는 요인은 복합적임에도 '쉬운' 타깃이었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입장에선 내가 아닌 남을 탓한다는 심리적인 편안함이 있었고, 언론의 입장에선 송곳처럼 날카로운 '반박 보도자료'를 상대가 내기 어렵다는 속 편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특정 국가의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은 것도, 농도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러한 대응은 결국 고농도 초미세먼지라는 사회적 재난을 '손쓸 수 없는 일'로 만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미루는 '핑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2023년 1월 초, 고농도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영남권부터 시작됐다. (사진: JTBC 뉴스룸)2023년 1월 초, 고농도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영남권부터 시작됐다. (사진: JTBC 뉴스룸)
소위 '국외요인'으로 고농도 상황이 벌어질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농도가 치솟는 곳은 백령도 관측소입니다. 이후 몇 시간의 시차를 두고 인천과 서울, 경기의 농도가 오르고, 이내 서쪽지역을 중심으로 초미세먼지 지도는 붉게 물듭니다. 그런데 지난 1월 초의 고농도 상황은 예년과 같은 '남 탓'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부산과 울산부터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아지는 데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부울경 지역의 경우, 국외요인과 상관없이 자주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곳 중 하나입니다. 입자상 대기오염물질 다배출 사업장이 많이 위치해 있고, 해풍으로 대기오염물질이 퍼져나가지 못한 채 육지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2018년 7월, 부산과 울산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 (사진: JTBC 뉴스룸)2018년 7월, 부산과 울산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 (사진: JTBC 뉴스룸)
실제, 지난 2018년 7월, 부산과 울산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66㎍/㎥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이들 지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무려 일주일 동안 '나쁨'수준을 이어갔죠. 만약, 이런 상황이 올해 12월~3월 미세먼지 계절관리기간 중 벌어졌다면, 연일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됐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계절관리제 기간도 아니었고, 또, 그해 여름엔 모두의 관심이 폭염에 쏠렸던지라 이 지역의 고농도 초미세먼지 문제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지난해 여름은 어땠을까요. 2018년 때처럼 고농도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난 여름에도 울산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서울보다 높은 편이었습니다. 올 겨울, 1월의 상황을 보면, 서울의 농도가 울산보다 높았습니다만 1월 초 고농도 시기에 먼저 농도가 오른 곳은 울산이었고요. 또 한차례 초미세먼지 농도가 올랐던 지난 주말의 상황을 보더라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이 '좋음' 수준까지 맑아졌음에도 부산과 울산의 일부 지역은 마지막까지 '나쁨' 수준을 보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 농도 추이를 보면, 상황은 분명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국 단위의 초미세먼지 관측을 시작한 2015년 이래로 기준치(35㎍/㎥)를 넘지 않는 날의 일수는 계속 늘어가고 있죠. '단골 고농도 지역'인 서쪽지역 주요 광역시도의 농도를 살펴봐도 이런 추세는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농도 초미세먼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데요, 이제라도 '왜 고농도 상황이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대한 연재물에서 갑자기 웬 미세먼지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초미세먼지의 고농도를 부르는 요인을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미세먼지는 말 그대로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상 오염물질을 의미합니다. 그 입자의 크기에 따라 10μm(마이크로미터) 이하인 PM10, 2.5μm 이하인 PM2.5 등으로 구분하고요. 크기에 따른 구분인 만큼, PM2.5의 농도는 PM10 농도보다 높을 수 없습니다. PM10에는 PM2.5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고농도 상황이 만들어지려면, 크게 4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일단 먼지 그 자체가 많아야겠죠. 그런데, 단순히 입자상 대기오염물질만 많다고 해서 고농도 현상이 무조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서 계절풍을 타고 해외에서 넘어오는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이 더해져야 할 수도, 낮은 대기혼합고로 대기중 오염물질이 떠다닐 공간이 좁아져야 할 수도,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아 대기중 먼지를 씻어내지 못해야 할 수도, 약한 바람에 대기정체가 빚어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고농도 상황에서 '특정 국가'를 탓하는 것은, 위의 요인 중 단 하나만 들어서 '고농도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셈이죠.

위의 4가지 요인 중 대중에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대기혼합고입니다. 대기혼합고란, 대기 중 공기가 순환할 수 있는 높이를 의미합니다. 즉, 대기혼합고가 높으면 초미세먼지가 떠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다는 뜻이고, 반대로 낮아진다면 그 공간이 좁아진다는 뜻입니다. 대기혼합고의 높이는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데, 더울 때엔 높고, 추울 때엔 낮아집니다. 계절관리제가 시행되는 12월~3월은 어떨까요. 이 기간, 대기혼합고의 높이는 낮아집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농도는 일정한 공간에 얼마나 많은 먼지가 존재하느냐를 나타낸 겁니다. 결국, 사시사철 같은 양의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낸다고 했을 때, 농도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높아지게 됩니다. 대기혼합고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누군가 교실에서 냄새를 풍겼다고 했을 때, 같은 평수의 교실이라 할지라도 층고에 따라 그 냄새를 맡는 학생의 수가 달라질 수 있는 거죠.

고농도에 미치는 위의 4가지 요인 가운데 기상과 관련한 요인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대기혼합고가 낮아지는 것 말고도 다른 요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겨울철,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 자체도 늘어납니다. 날이 추워짐에 따라 난방수요가 늘고, 농촌에선 바이오매스를 직접 태우는 일이 빈번해지죠. 북서 계절풍 역시, 한반도에 불어오는 겨울바람입니다. 또한, 강수와 풍속 역시 직접적인 기상 요인이고요. 이렇게 기후변화와 고농도 미세먼지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의 기온이 오른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73년 이래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변화를 살펴보면, 단순히 '온난화'만 우려되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 기온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면, 겨울 강수는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엔 역대 최저 강수량에 역대 최저 강수일수가 기록된 바 있습니다.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을 예년처럼 똑같이 뿜어낸다고 했을 때, 갈수록 강수로 인한 세정효과를 기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죠.

이처럼 비가 적게 온다는 것은, 일조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조시간의 증가는 초미세먼지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화석연료를 연소할 때 나오는 질소산화물이나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의 대기오염물질은 대기 속을 떠다니다 햇빛을 만나면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가스의 형태였던 이들 물질은 그 반응을 통해 입자로 변하죠. 이는 경유차를 보고 우리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각종 필터를 통해 자동차 배기구에서 나오는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을 99.9% 잡아낸다 하더라도, 배기구에서 나온 질소산화물이 결국 햇빛과 만나 입자, 즉 초미세먼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조시간의 증가는 결국, 이러한 초미세먼지 전구물질의 입자화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부르게 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바람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1973년 이래 겨울철 평균 풍속은 감소세를 이어어고 있습니다. 1973년, 평균 2.37m/s였던 풍속은 2021년 1.9m/s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의 45개 지점 계절별 평균 풍속을 살펴보면, 여름철은 풍속이 강해지는 반면, 그 밖의 계절은 풍속이 약해지고 있다”며 “특히 겨울철 풍속의 하강폭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똑같은 겨울날이라 해도, 풍속에 따라 대기정체로 초미세먼지 농도는 들쑥날쑥해지곤 합니다. 최근의 고농도 상황 대부분은 대기정체가 주 원인이죠. 심지어, 설령 국외유입이 있다고 해도 풍속이 강한 날엔 대기순환이 원활해 고농도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못 할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바람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후변화로 이처럼 겨울철 풍속이 약해지면 평소보다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을 덜 뿜었음에도 농도는 치솟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결국, 미세먼지 해결과 기후변화 해결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굳이 관계도를 그리자면, 미세먼지와 기후변화가 교집합이라기보다, 기후변화 속에 미세먼지가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정도입니다.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우리의 '태우는 행동'에 있습니다. 그러한 연소는 곧 온실가스의 배출을 의미하기도 하죠. 미세먼지 배출량과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를 살펴봤을 때, 상위권이 동일한 이유입니다. 제철제강업과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 배출 1등'이자 '온실가스 배출 1등'인 곳들입니다.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하는 행동 대부분은 초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분리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단순히 분리를 넘어, 미세먼지에는 온 사회가 즉각적인 대응으로 분주한 반면, 온실가스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학부모의 관심사는 온통 학교에 쏠립니다. 학교에서 환기는 제대로 하는지, 야외 체육활동은 잘 제한하는지 살펴보죠.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목소리엔 기업들의 반발이 너무도 거세지만,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 및 출력 제한, 사업장의 조업 시간 조정, 일부 자동차의 운행 제한 및 과태료 부과 등의 고강도 조치엔 모두가 적극 동참합니다. 얼핏 주객이 전도된 듯한 씁쓸한 모습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PM10과 PM2.5가 대기중에 머무는 시간은 짧게는 수 시간, 길어야 수 주에 불과합니다. 반면, 온실가스의 경우 한번 뿜어져 나오면 세대를 넘길 만큼 오래 머뭅니다.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기는 걸까요. 무엇을 더 빠르게 줄여야하는 걸까요.

지난 2019년 3월,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무려 135㎍/㎥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악의 대기질이 기록됐을 때, 정부는 말 그대로 '온갖'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당시 환경부 장관은 광장이나 건물 옥상에다 집진장치를 설치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디젤 트럭인 소방차마저 공회전을 막겠다고 해 시민들이 훈련시간 감소를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절박함과 위기의식이 진짜 필요한 곳은 미세먼지가 아닌 온실가스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고려 없는 미세먼지 대책은 마치 고칼로리의 햄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탄산음료만 '제로'로 마시며 '아, 나는 다이어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세먼지 따로, 온실가스 따로? 해결은 결국 '한 길'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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