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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녹색성장 동맹' 11년…우리는, 동맹국은 얼마나 달라졌나

입력 2022-10-17 08:00 수정 2022-10-17 08:3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3)

한국-덴마크 녹색성장 동맹 11년 톺아보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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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3)

한국-덴마크 녹색성장 동맹 11년 톺아보기 (상)

2011년 5월, 동아시아의 한 나라와 북유럽의 한 나라가 '녹색성장 동맹'을 맺었습니다.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표현이 이제 막 국제사회에서 익숙해지기 시작한 무렵의 일입니다. 동맹의 한 축인 동아시아 국가는 '녹색성장'이라는 표현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습니다. 이전까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됐으나, '선 성장, 후 환경보호'로 비롯되는 각종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경제적 목표와 환경적 목표를 함께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이 표현이 등장한 겁니다.

'녹색성장'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유엔 아시아·태평양 환경과 개발 장관회의에서 였습니다. 당시 개최지는 대한민국 서울이었고요. 한국은 아태지역 개도국의 롤모델로서 당시 '녹색성장'이라는 개념과 함께 역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선포하고, 수소경제를 강조했습니다. 이어 2011년엔 북유럽의 덴마크와 함께 '녹색성장 동맹'을 맺었고요. 국가간 녹색성장을 내걸어 동맹을 맺은 것은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2011년 5월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라스 루커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한국-덴마크 녹색성장 동맹 체결식을 가졌다.2011년 5월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라스 루커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한국-덴마크 녹색성장 동맹 체결식을 가졌다.
이렇게 두 나라가 동맹을 맺은지 어느덧 11년하고도 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0년, 배출전망치의 30%를 줄이겠다”던 한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재생에너지 비중 20%대'를 기록했던 덴마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먼저 '현재 상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녹색성장 동맹'의 두 나라, 대한민국과 덴마크를 포함한 세계 각국 경제의 에너지 집약도를 살펴봤습니다. 구매력평가 기준, 1000달러의 GDP를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는지 나타낸 지표입니다. 우리나라는 1000달러를 벌기 위해 평균 5.44GJ의 에너지를 투입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캐나다, 중국, 핀란드에 이어 IEA 회원국 5위로 '글로벌 최상위권'에 해당했습니다. 최상위권이라 해서 '긍정적인 의미'인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서 5번째로, 똑같은 돈을 버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뜻이니까요.

반면, 동맹국인 덴마크의 경우 평균 2.15GJ의 에너지만을 썼습니다. 우리보다 절반도 채 안 되는 에너지만으로 똑같이 1000달러의 GDP를 얻은 셈이죠. 이런 종류의 유사한 통계를 마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반론이 있습니다. '한국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반론 말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제조업 비중 통계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녹색성장 동맹' 11년…우리는, 동맹국은 얼마나 달라졌나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은 분명, 팩트입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죠. 그런데, 그것이 온실가스 감축을 적극적으로 못 하는, 에너지전환을 주저하는 이유가 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나라보다도 제조업 비중이 한참 높은 아일랜드는 전 세계에서 에너지 집약도가 가장 낮았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비중이 30%를 크게 웃도는 아일랜드지만, 1000달러의 GDP를 얻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는 1.38GJ에 불과했습니다.

아일랜드만 예외인 것일까요? '제조업 비중 OECD 톱 5' 국가 가운데, 우리보다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체코, 터키 등 제조업 비중도 높고,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나 경제적 수준이 뒤처지는 나라조차 에너지 집약도는 우리보다 낮았습니다. '높은 제조업 비중'이 각종 의무와 부담을 피할 수 있는 '만능 까방권'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두 나라의 에너지 구성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요. 우리나라의 에너지 사정에 대해선 그간의 연재를 통해 자주 다뤄왔던 만큼, 이번엔 2011년부터 10년간 덴마크의 에너지 믹스 변화를 중점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녹색성장 동맹' 11년…우리는, 동맹국은 얼마나 달라졌나
덴마크의 앞바다는 가스와 석유를 품은 북해입니다. 눈앞의 유전과 가스전을 두고, 덴마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한국과 '녹색성장 동맹'을 맺었던 2011년 당시, 덴마크의 총 에너지에서 화석연료의 비중은 75.3%에 달했습니다. 제아무리 남들보다 일찍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생산에 나섰다 하더라도, 전기 외의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화석연료는 '압도적 존재감'을 뽐냈던 것이죠.

하지만 녹색성장 동맹 10년차인 2020년,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전체 전력 생산의 84.3%가 재생에너지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국가가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 중에서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43.5%에 달했고요. 앞바다 가스전, 유전을 두고도 신속한 '탈 화석연료'를 실천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볼 것이 또 있습니다. 단순히 '구성비'의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10년새 꾸준히 국가가 생산(사용)하는 에너지의 양도, 전력의 양도 '감소세'였다는 것이죠. 10년 내리 경제침체가 이어져서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이는 에너지원을 지속가능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대체함과 동시에 효율을 높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변화가, 진보가 에너지의 공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수요에도 이어진 것이죠. 경제적 목표와 환경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녹색성장'을 말 그대로 실천한 10년이었던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녹색성장 동맹' 11년…우리는, 동맹국은 얼마나 달라졌나
2011년 양국의 녹색성장 동맹 이래, 두 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 변화도 들여다봤습니다. 결과는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당시 2.5%였던 재생에너지의 우리나라 전력생산 비중은 2020년 6.6%에 머물렀습니다. 덴마크는 앞서 언급한 대로, 42.5%에서 84.3%로 확대됐고요. 격차는 '초격차'가 됐습니다.

다른 지표를 함께 살펴보면, 안타까움은 더 커집니다. 1인당 GDP와 제조업의 GDP 비중, 1인당 총 에너지 공급량, 1인당 전력 사용량, 1인당 탄소배출량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는 1인당 GDP를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덴마크보다 높은 수치를 이어갔습니다. GDP는 낮은데, 에너지와 전력의 사용, 탄소배출 모두 덴마크보다 많았던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녹색성장 동맹' 11년…우리는, 동맹국은 얼마나 달라졌나
우리나라의 제조업의 비중은 2011년 30.9%에서 2021년 27.9%로, 10년새 조금씩 감소세를 이어갔습니다. 반면 덴마크의 경우, 제조업의 비중이 미세하게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의 1인당 총 에너지 공급량은 2011년 135.2GJ에서2020sus 110.1GJ로 크게 줄었고, 1인당 전력 사용량 역시 6.2MWh에서 5.7MWh로 감소세를 이어갔습니다. 사용하는 에너지도 줄어드는데, 그 에너지에서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급격히 증가했다 보니 1인당 탄소배출량은 더 감소했습니다. 2011년, 1인당 7.6톤이었던 탄소배출량은 2020년 4.4톤으로 뚝 떨어졌죠.

우리나라의 그래프 방향은 '반대'였습니다. 1인당 총 에너지 공급량은 2011년 218.6GJ에서 2020년 222.7GJ로, 1인당 전력 사용량 역시 2011년 10.1MWh에서 2020년 10.9MWh로 우상향했습니다. 1인당 탄소배출량은 '희망을 담았을 때'에야 감소세로 보이는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의 지표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녹색성장'이라는 이름표를 붙일만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한화진 환경부장관.(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한화진 환경부장관.
'갑자기 웬 녹색성장, 왜 10년도 더 된 일을 끄집어내냐'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22년, 우리가 이를 되짚어봐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녹색성장'이라는 표현이 세상에 처음 나왔던,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유엔 아태지역 환경과 개발 장관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덕수 현 국무총리입니다. 당시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국에서 근무했던 공무원은 추경호 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었고요. 그리고 녹색성장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에너지자문회의 위원으로, 대통령실 환경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재원은 한화진 현 환경부장관이었습니다.


과연 그때와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교했을 때, 이들의 소회는 어떨까요. 녹색성장 동맹 11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녹색성장은 한국이 만든 개념'이라는 '왕년의 자랑거리'와 양국간 노력의 산물인 P4G 정상회의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국과 덴마크 양국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던 그때에도, 에너지전환이라는 표현이 정파적이고도 이념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녹색성장은 어쩌다, 요즘 MZ 세대가 즐겨 쓰는 표현인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처럼 되어버린 걸까요. 10여년 전 '역전의 용사'가 총리, 장관이 되어 다시 국정을 이끌게 됐습니다. 당시 각 부처의 과장이었던 공무원들은 어느덧 실·국장이 되어 정책 설계와 이행을 이끌고 있고요. 부디, 당시엔 놓쳐버렸던 녹색성장을, 그렇게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길 바라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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