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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풍년과 수해 안겨주는 몬순, 오염물질 퍼뜨리는 굴뚝이기도?

입력 2022-09-05 08:00 수정 2022-09-05 10:18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7)

그래픽으로 보는 '기후변화의 또 다른 암초' 강수 (하)

동아시아 인구의 삶 좌지우지하는 몬순
때로는 풍년을, 때로는 상상 초월하는 피해 안겨
'자연현상'으로만 바라본 몬순,
온실가스 등 대기오염물질 확산시키는 굴뚝?
미 NASA, 한국서 몬순의 대기오염물질 확산 효과 연구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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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7)

그래픽으로 보는 '기후변화의 또 다른 암초' 강수 (하)

동아시아 인구의 삶 좌지우지하는 몬순
때로는 풍년을, 때로는 상상 초월하는 피해 안겨
'자연현상'으로만 바라본 몬순,
온실가스 등 대기오염물질 확산시키는 굴뚝?
미 NASA, 한국서 몬순의 대기오염물질 확산 효과 연구 나서

동아시아의 몬순 (자료: NASA)동아시아의 몬순 (자료: NASA)
불과 한달여 전, 연재를 통해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극지방이나 적도 지역의 전유물이 아님'을 전해드렸습니다. 아시아는 여러 대륙 가운데 기후변화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는 대륙이기 때문입니다. 기온과 해수온의 상승 정도만 보더라도 전(全)지구 평균보다 높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몬순 지역의 강수량과 호우 발생 빈도 역시 크게 늘어난 상황입니다. 그로 인해 아시아에서만 4억명 가량이 영양 부족을 겪고 있고, 천만명 넘는 이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풍년과 수해 안겨주는 몬순, 오염물질 퍼뜨리는 굴뚝이기도?
'일부 동남아 국가들의 일 아닐까'라며 외면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러한 각종 사회경제적 피해의 규모를 봤을 때, 우리나라의 피해 규모는 242억 7900만 달러로 아시아 역내 4위였으니까요. 경제성장으로 많은 것들을 이뤄놓은 만큼, 기후 재해로 인한 '잃을 것' 역시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막기 위해선 과거의 통계에만 기댄 기준이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을 함께 반영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기상청만, 환경부만, 국토부만, 지자체만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중앙 정부와 관계 부처, 지자체가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할 일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풍년과 수해 안겨주는 몬순, 오염물질 퍼뜨리는 굴뚝이기도?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이 농작물을 주식으로 하며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몬순 덕분이지만, 이처럼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안긴 것 역시 몬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몬순으로 인한 피해를 키운 것은 해마다 신기록을 세워가며 온실가스를 뿜어댔던 우리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몬순의 영향은 비단 '극한 기상현상'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몬순은 우리가 뿜어낸 대기오염물질이 다른 나라를 넘어 다른 대륙으로까지 퍼뜨리는 굴뚝의 역할도 합니다.

 
몬순에 따른 대기 흐름으로 퍼져나가는 대기오염물질(일산화탄소)의 모습 (자료: NASA)몬순에 따른 대기 흐름으로 퍼져나가는 대기오염물질(일산화탄소)의 모습 (자료: NASA)
몬순은 초미세먼지와 같은 입자뿐 아니라 각종 온실가스 등 우리 인간이 뿜어낸 각종 물질을 대기 상층으로 끌어올립니다. 비를 뿌리는 저기압의 상승기류를 타고 대기오염물질이 떠오르는 겁니다. 저기압의 회전하는 공기 흐름을 따라 대기오염물질도 마찬가지로 주변을 맴도는데, 그렇게 한 곳에서 맴돌던 대기오염물질은 결국 대열을 이탈해 다른 나라로, 다른 대륙으로까지 퍼져나갑니다. 낮은 고도에서 머문다면 장거리 이동이 쉽지 않겠지만, 대기 상층에 다다른 만큼 멀리 이동하기 쉬워진 겁니다.


 
몬순에 따른 대기 흐름으로 퍼져나가는 대기오염물질(일산화탄소)의 모습 (자료: NASA)몬순에 따른 대기 흐름으로 퍼져나가는 대기오염물질(일산화탄소)의 모습 (자료: NASA)
미국 항공우주국 NASA는 이러한 현상을 위성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과정을 시각화한 자료를 살펴보면, 인도에서 배출된 일산화탄소는 인도의 대기 상층을 맴돌다 동북아시아로 퍼져 나갑니다. 예시로 든 것은 인도발 일산화탄소였지만, 아시아 곳곳에 비를 뿌리는 몬순과 그로 인한 저기압은 어디서든 굴뚝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산 공군기지에 착륙중인 미 NASA의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 (자료: NASA)오산 공군기지에 착륙중인 미 NASA의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 (자료: NASA)
“우리는 새로운 관점에서 몬순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흔히 계절풍으로써 풍향이나 날씨의 패턴이 바뀌고, 비가 내리는 정도로 몬순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아 전체에 걸쳐 몬순에 의한 또 다른 거대한 패턴이 존재합니다. 몬순으로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지표에서 대기 상층으로 무언가를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죠.


 
로라 팬 NCAR(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 수석이 8월 5일 오산기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로라 팬 NCAR(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 수석이 8월 5일 오산기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러한 대기층은 우주에서도 관측은 가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입자나 기체가 있는지, 또 성층권과 대류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관측하려면 우리가 직접 측정을 해야 합니다. 몬순의 저기압에서 바깥쪽으로 떨어져 나가는 대기 중 물질은 동쪽으로 퍼져나갑니다. 이곳 오산은 이러한 기체를 관측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로라 팬 NCAR(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 수석, 8월 5일 오산기지 브리핑

위성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확인한 NASA 연구팀은 이를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연구팀이 베이스캠프로자리잡은 곳은 미국 공군 51전투비행단이 위치한 오산기지였습니다. NASA의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인WB-57, NCAR의 기상항공기 G-V(5)도 투입됐습니다. NASA의 린든 B. 존슨 우주센터가 진행중인 프로젝트, ACCLIP(Asian Summer Monsoon Chemical & Climate Impact Project, 아시아 여름철 몬순 대기화학·기후변화 영향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오산기지 격납고에 주기중인 NASA의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의 모습.오산기지 격납고에 주기중인 NASA의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의 모습.
브리핑에 이어 실제 한반도에 전개된 항공기들을 둘러봤습니다. 격납고에 주기중인WB-57은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전폭기 B-57을 개조한 항공기입니다. 복좌 형식의 기체 곳곳엔 미사일 대신 각종 센서가 달려있습니다. 기성 여객기를 개조한 NCAR G-V와는 다르게 연구인력의 탑승이 불가능한 대신, WB-57은 지상과 실시간으로 통신하며 연구진과 소통합니다.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의 조종사들이 관측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료: NASA)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의 조종사들이 관측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료: NASA)
당초 고고도 임무에 투입됐던 기체인 만큼, 조종사들은 일반적인 G-수트와는 다른 특수 비행복을 입습니다. 흡사 우주비행사의 것과 비슷해 보이는 수트와 헬멧을 착용하고, 6만피트(약 18.3km) 상공을 비행할 수 있습니다. 대류권을 넘어 성층권에서의 기상 관측이 가능한 겁니다.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에서 조종사들이 관측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고 있다. (자료: NASA)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 WB-57에서 조종사들이 관측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고 있다. (자료: NASA)
미 국립대기연구센터의 G-V 항공기도 마찬가지로 기체 외부에 각종 센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상업용 항공기를 개조하면서, 기체 내부엔 승객석 대신 각종 센서와 측정장비가 가득합니다. 다만 WB-57과는 달리, 조종사 외에도 연구인력이 추가로 탑승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Flying Lab(날아다니는 연구실)인 셈입니다. WB-57과 G-V엔 60여 물질을 탐지, 측정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습니다.


 
NCAR의 기상항공기 G-V 내부엔 각종 센서와 측정장비가 가득하다.NCAR의 기상항공기 G-V 내부엔 각종 센서와 측정장비가 가득하다.
NASA의 연구팀이 위성관측과 모델링으로 상황을 '간접 확인'했다면, 이 두 항공기는 하늘의 실제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반도 상공을 3D 스캔하듯 남북으로 왕복하면서 두 항공기는 서로 다른 높이에서 대기오염물질을 측정합니다. 대기오염물질의 수평면 상의 이동뿐 아니라 수직 방향의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대기 연구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세계 최초로 정지궤도 환경위성 운영에 나섰지만 정작 그 하늘을 직접 가로지를 고고도 기상정보 수집기는 없는 한국, 정지궤도 환경위성은 없지만 직접 하늘을 누빌 수 있는 미국. 두 국가간 협업을 통해 서로 '윈윈'이 가능합니다. 세계 유일의 정지궤도 환경위성인 천리안 2B호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ACCLIP 프로젝트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ACCLIP 프로젝트를 통해 하늘에서 직접 측정한 데이터와 우리나라 위성의 측정값을 비교하며 상호 보완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그간 지표 관측에 초점을 뒀던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번 협업은 대기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NASA 연구팀이 항공 관측을 통해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자료: NASA)NASA 연구팀이 항공 관측을 통해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자료: NASA)
구자호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기상학적 요인, 기후변화가 대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으나 국내에선 이 부분이 과소평가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며 “NASA와 NCAR가 이러한 항공기를 한국에 전개한 것은 처음있는 일로, 이번 관측을 통해 대류권 상부나 성층권에 이르기까지 더 넓은 영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월 15일, 관측 임무를 수행중인 WB-57의 조종사들이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임무에 나섰다. (사진: NASA)지난 8월 15일, 관측 임무를 수행중인 WB-57의 조종사들이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임무에 나섰다. (사진: NASA)
지난 7월 29일, 한국에 도착한 NASA 연구팀은 9월 2일, 한국에서의 연구활동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이들이 진행하는 연구는 그저 '○○발 미세먼지가 한반도 대기오염의 주범이다', '○○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와 같은 책임 규명을 위한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미세먼지와 같은 입자 형태의 물질부터 그러한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이산화탄소와 메탄, 수소불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까지. 우리가 뿜어내는 한 나라의 대기를 어지럽히는 것을 넘어 다른 나라와 다른 대륙, 나아가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규명해내는 과정이죠.

 
NASA의 ACCLIP 프로젝트는 위성으로 확인한 대기오염물질의 이동을 기상항공기를 통해 직접 관측한다. (자료: NASA)NASA의 ACCLIP 프로젝트는 위성으로 확인한 대기오염물질의 이동을 기상항공기를 통해 직접 관측한다. (자료: NASA)
이번 연구는 우리가 뿜어낸 물질이 여름철 집중호우를 부추기고, 그러한 집중호우를 부르는 몬순은 이 물질이 지구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게 만드는, 악화의 악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의 기후변화를 두고, 더는 '남 탓'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구를, 우리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는 것은 '○○발' 미세먼지나 '○○발' 온실가스에 붙은 '원산지'가 아니라 어디서든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는 대기오염물질 그 자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풍년과 수해 안겨주는 몬순, 오염물질 퍼뜨리는 굴뚝이기도?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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