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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변이 바이러스, 이름도 골치 아파!

입력 2021-02-12 17:12 수정 2021-02-14 23:26

'영국', '남아공' 등 바이러스에 지역 이름 붙어지역 혐오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501Y.V2' 등 공식 명칭은 복잡, 어렵질병청 "이해 쉽고 문제 없는 이름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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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아공' 등 바이러스에 지역 이름 붙어지역 혐오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501Y.V2' 등 공식 명칭은 복잡, 어렵질병청 "이해 쉽고 문제 없는 이름 고민 중"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브라질발 변이가…"
"미국발…"

변이 바이러스의 존재 만큼이나 고민스러운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변이 바이러스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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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명을 써서 죄송합니다만..."


11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영국 변이 바이러스를 설명하다 "영국 변이, 속칭입니다. 지역명을 써서 죄송합니다"며 짧은 사과를 덧붙였습니다. 나라 이름을 써 바이러스를 불렀다는 거죠.

바이러스 이름에 지역명을 넣는 건 쉽지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세계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스페인 독감', '일본 뇌염', '독일 홍역' 등 여러 사례를 거치며 WHO는 2015년 '감염병 이름에 지리적 위치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해당 지역에 대한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는 거죠. 또 바이러스가 해당 지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데 질병의 발원지라는 잘못된 오해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초기엔 정부도 언론도 '중국 폐렴', 또는 '우한 폐렴'이라고 불렀죠. 하지만 '감염병 피해를 겪는 우한 시민들에게 낙인까지 찍는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2개월 만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한 폐렴'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코비드(COVID)19', 풀어 쓰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2019'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우한 폐렴이 낫냐 코로나19가 낫냐'는 논쟁은 꽤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코로나'가 전 세계에서 널리 쓰입니다.

◇'501Y.V2'? 'B.1.1.7'?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이번 변이 바이러스에도 새로운 이름이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녹록치가 않아 보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연구진이 변이 바이러스를 확인하자 남아공 대통령은 '바이러스 이름에 남아공을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연구진이 택한 이름은 바로 '501Y.V2(오공일와이브이투)'였습니다.

'501Y.V2'는 세계보건기구에 등록된 공식명칭이자, '세포수용체결합부위의 501번째 아미노산이 티로신(Y)으로 바뀌었다'는(..)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냥 보기엔 비밀번호 다섯 번 틀릴 때 나오는 보안문자 같죠. 너무 어렵습니다. '오공일와이브이투', 여덟 글자로 부르기도 너무 깁니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 이름과 비슷한 문제도 있습니다. 영국 변이의 공식 명칭은 '501Y.V1', 남아공 것과 마지막 숫자 하나만 다릅니다. 두 바이러스가 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자칫하면 헷갈립니다.

또 다른 후보도 있습니다. 'B.1.1.7(영국)', 'B.1.351(남아공)', 'P.1(브라질)' 등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천해 온 족보를 그렸을 때, 해당 변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나타낸 겁니다. 위도와 경도를 찍듯이 족보에서 바이러스 위치를 지정하기 때문에 정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비일일칠', '비일삼오일'이라는 이름은 외우기도,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적당한 이름을 못 찾은 연구진의 고민이 깊습니다. 우리 방역당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고민 중이다. 하지만 편리하면서 받아들이기도 쉬운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좋은 이름을 찾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요. 한 전문가는 "변이가 계속 누적되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때마다 직관적인 이름을 붙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변이만 해도 약 4,000건이니 타당한 지적입니다. '영국발 변이' 같은 표현 대신, '영국에서 퍼지는 변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도 늘 고민이 뒤따릅니다. 이름이 갖는 힘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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