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량이 해마다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중이라는 소식, 익히 접하셨을 겁니다. 언론 보도나 시민사회의 외침, 심지어 정부의 발표에서도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말이죠.
지난주, 우리나라의 2018년도 온실가스 배출량의 확정치가 공개됐습니다. '아니, 지금 2020년도 3분기나 지났는데?' 의아한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부문별 상세 배출량과 흡수량을 산출하는 통계다보니 확정치가 나오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변은_없었다_역대_최대_또_경신7억 2760만톤. 우리가 2018년 뿜어낸 온실가스의 양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역대 최대입니다.
LULUCF를 제외한 온실가스 총배출량 우리나라의 확정 배출량이 공표된지 며칠 후인 지난 1일, EU에선 역내 회원국의 환경장관들이 회담을 열고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줄이겠다'고 합의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배출량이 1990년의 약 2.5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같은 2020년을 살아가는 한국과 EU 양측의 상황은 이렇게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배출량 순위도 이번에 함께 발표됐는데요, 나라마다 온실가스 통계 집계에 걸리는 시간이 다른 만큼, 이 순위는 2017년도 통계를 기준으로 정리됐습니다. 세계 11위, OECD 회원국 중 5위.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순위 자체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얼마나 늘어난 걸까요. 전체 배출량에서 가장 큰 비중(86.9%)을 차지하고, 2017년 대비 증가량 중 93%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에너지 분야였습니다. 에너지 분야의 대부분은 '연료 연소'로 인한 배출인데, 발전과 같은 에너지산업이 45.5%, 제조업 및 건설업에서의 연료 사용이 29.5%, 수송분야는 15.5%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에너지산업의 면면을 살펴볼까요.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 총량 자체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입니다. 그런데, 발전원별로 얼마나 발전량이 늘었는지 살펴보면 가스의 증가가 눈에 띕니다. 석탄 발전량은 전년과 대동소이했지만 결국 LNG와 같은 가스로 전기 수요를 충당하게 된거죠. 미세먼지 잡으려다 그 풍선효과로 온실가스를 놓치게 된 것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클린 디젤'이 결코 '클린'하지 않았던 것처럼, LNG 역시 청정 에너지는 아닙니다.
#그래도_희망이_없진_않았다그나마 발전량 통계를 보면 온실가스 측면에서 긍정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발전량의 증감률을 따졌을 때, 가스 다음으로 가장 높은 증감률을 기록한 것이 신재생에너지라는 점입니다. 물론, 여전히 석탄의 8분의 1, 가스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2017년보다 배출량이 도리어 줄어든 분야도 있었습니다. 막대한 양의 석탄을 태워가며 고로에서 쇠를 녹이는 철강업의 경우, 전년 대비 배출량이 4.2백만톤 줄어든 겁니다. 철강 제품을 덜 생산해서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생산 효율을 높임으로써 생산량은 늘었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줄일 수 있었던 거죠. 시멘트 생산 분야 역시 온실가스 배출이 1.6백만톤 줄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상업, 공공부문의 유류소비도 5.7% 줄어들어 10만톤 가량의 온실가스를 줄였습니다.
또 하나의 긍정적인 결과도 눈에 띄었습니다. 앞서 보여드린 연도별 배출량 막대 그래프에 또 다른 데이터를 하나 더 얹어보았습니다.
GDP당 배출량은 꾸준히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온실가스 저감을 반대하는 이유로 '기업의 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을 꼽죠. 하지만 "199년 이후, 배출량 증가율은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 온실가스정보센터의 분석 결과입니다. 실제, GDP당 배출량의 경우도 21세기 접어들어 일부 연도(2010~2011년)를 제외하곤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인구 1명당 배출량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는 이미 잘 하고 있다'며 감축의 고삐를 느슨히 해선 안 되겠지만요.
#드디어_상승_국면은_끝날까2018년 확정 통계가 발표됨과 동시에 2019년 배출량의 잠정 수치도 공개됐습니다.
잠정 배출량은 702.8백만톤으로, 전년 대비 24.9백만톤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모처럼 눈에 띄는 '감소'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배출량이 줄어들었던 것은 단 한 차례였습니다. 2014년, 5백만톤 가량이 줄어든 것이 전부였습니다.
과거 또 한 차례 큰 낙폭을 기록했던 것은 1998년으로 전년 대비 70만톤 넘게 줄었죠. 당시의 온실가스 감축은 '의도된 감축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IMF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방증입니다.
이렇게 배출량이 줄어든 배경엔 '발전' 분야의 변화가 있습니다. 2018년 확정 통계에서 '감축 사례'로 꼽혔던 철강과 시멘트 분야는 2019년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고,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수송분야의 배출량도 다시 늘어나지만 발전 분야에서의 감소가 이를 다 상쇄하고도 남는 겁니다. 온실가스정보센터는 "총 발전량이 소폭 줄었을 뿐 아니라 미세먼지 대책에 따른 석탄화력 발전량의 감소와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가 이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변화에 '일희일비' 하기엔 절대적인 배출량 자체가 너무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줄어도 7억톤을 넘을뿐더러, 우리가 우려하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을 막기 위해선 이정도 감축만으론 어림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배출량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우리들이 실생활에서 "배출량 줄이려고 이만큼 노력했어" 혹은 "배출량 줄이느라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체감할 수준의 변화는 없었으니까요.
이것은 감축으로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렵사리 '우상향'하던 그래프의 방향을 바꿔놓은 김에, 변화를 부르는 정책과 우리들의 행동을 강화한다면 온실가스의 낙폭은 더 커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