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18일) 오픈마이크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버스 이야기입니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새벽 4시, 구로동에서 출발해 개포동까지 가는 6411번 버스. 그 버스에는 조용조용 하루를 견디며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 온 투명인간들이 타고 있다고 했죠. 코로나 시대, 모두가 힘들다지만 가장 먼저 고통받는 건 우리 중 가장 약한 사람들일 겁니다. 제가 이 버스를 타고 다들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담아왔습니다.
[기자]
캄캄한 새벽, 차 한 대 없는 텅 빈 거리에 6411번 버스 불이 켜집니다.
새벽 4시 정각이 된 겁니다.
비슷한 나이대, 편한 신발에 등가방을 멘 어딘가 서로 닮아 있는 승객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오릅니다.
[오늘 이거 타는 사람들은 청소 아니면 남자나 여자나 경비 아니면 청소고 다 그래. 그러니까 이 새벽에 나가지.]
십 분 만에 벌써 만석이 된 버스.
[집이 여긴데, 다 종점에 가서 걸어가서.
[역순환, 역순환. 자리 잡으려고.]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가방을 들어주고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핍니다.
[가방 주쇼. 누님! 가방 줘. (어이구 무겁다.) 뭣을 이렇게 많이 갖고 가.]
[(어떻게 아시는 사이세요?) 여기서 알았어요. 몇 년 같이 다녔어요.]
대부분 강남에 있는 빌딩을 청소하는 6, 70대 노동자들.
서로 일하는 빌딩만 다를 뿐, 출퇴근 시간도, 월급도 비슷합니다.
출근은 오전 6시지만, 그 전에 도착해야 하는 사정도 마찬가지.
빌딩 사람들이 출근해 눈에 띄기 전, 청소를 마쳐야 하는 겁니다.
[계약할 때는 6시라고 하는데 직원들이 일찍 나오니까. (직원들) 오면 일하기 불편하니까.]
[5시부터 해도 그 시간 안 빼주고, 그냥 퇴근 시간만 정확해.]
그마저도 나이가 많으면 최저임금도 못 받지만 일을 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안 줘도 고맙다고 다녀야지. 우리 일자리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데…]
코로나로 누군가는 재택근무를 할 때도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는 거리가 먼 '만원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다니는 게 두렵죠. 매일 아침에 그것부터 봐요. 확진자가 몇 명이나 나왔나 하고…]
되레 다들 재택근무를 해서 청소가 필요 없어질까 봐, 그래서 일자리를 잃을까 봐 몸을 한껏 웅크려야 했습니다.
[경기도 안 좋으니까, 그 건물에서만 13년째 하고 있어요. (그래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거예요?) 나이가 많으면 아무래도…]
코로나로 일은 더 힘들어졌지만, 십 년 넘게 청소해온 빌딩에서 하루아침 쫓겨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겁니다.
[아무래도 힘들지. 일이 많지. (마스크 때문에 힘들어요.) 손잡이 같은 것도 닦아야 하고…]
가뜩이나 비좁은 버스, 자리만 차지하는 취재진이 마땅찮다가도.
[오늘 어찌 이리 복잡하대, 또? (오늘 취재한대) 오매 무슨…]
웃으며 건넨 음료수에 마음을 열어주는 정 많은 사람들.
[(음료수) 나도 줘. (제가 드릴게요.) 얼른 하나씩 줘.]
[(가방) 줘 봐. 고맙습니다.]
[까서 주려고 했더니… 하나 더 줄게.]
그들의 바람은 참 소박했습니다.
[강남까지 가는거 심야(버스) 좀 하게 해줘요. (아니면) 첫차 한 10분 빨리 좀 오면…]
[그게 다 바람이야. 이 차 타는 사람들.]
새벽 4시에 첫차를 타도 지각할까 봐 아등바등하는 처지인 겁니다.
[몇시여? (52분.) 오매. 오늘도 택시 타야 되겄네.]
[섰다, 섰어, 섰어. 오매 가버린다 저 차가 먼저 간다. (아저씨 기다려줘.)]
[달려, 달려, 달려]
새벽 4시 52분. 버스 밖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버스 안 이들의 몸은 위태롭게 출렁이고 또 부대꼈습니다.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연출 : 홍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