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방침도 선제적으로 밝히는 등 비핵화 의지를 잇따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을지 안태훈 기자와 짚어 보겠습니다.
안 기자, 비핵화 방식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비핵화 대상이 핵실험장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핵시설인지, 또는 핵무기인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비핵화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선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서는 폭파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 '비핵화…폭파>콘크리트>물' > 이렇게 부등호를 사용해 지어봤습니다.
전문가의 말을 듣겠습니다.
[이춘근/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콘크리트는 사용해야 할 양이 막대하기 때문에 입구만 막을 수 있을 뿐 그 안(갱도)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기가 어렵고요. 그 대신 폭파하는 방법은 설계도를 참고해 요소요소를 정확하게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실험장 갱도는 피폭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보통 길고 꼬불꼬불한 형태로 만들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입구 부근만 막으면 추후 제거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앵커]
네. 현실성에 관련해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폭파>콘크리트>물' 순인데, 물은 왜 현실성이 제일 떨어지는 건가요?
[기자]
전문가들에 따르면 풍계리 핵실험장의 경우 갱도 입구가 안쪽보다 낮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갱도에 스며드는 지하수가 자연스럽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볼펜으로 설명을 드리면 여기가 갱도라면, 이 앞쪽이 입구죠. 그런데 이렇게 입구쪽을 낮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요.
이 때문에 핵실험장 내부를 물로 채우고 입구를 봉쇄하는 방식은 풍계리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이밖에 원자로나 우라늄 농축공장 등 또 다른 핵시설은 해체 후 다른 나라로 반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핵무기 같은 경우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핵보유국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습니다.
[앵커]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가 완전하게 이뤄졌을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짚어봤습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여전히 비핵화를 위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그 모델이 리비아식이 될 것이란 얘기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자]
그동안 핵 시설이나 핵무기를 폐기한 나라는 5곳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는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한 게 아니라 소련이 붕괴되면서 자국 영토에 있던 핵무기를 갖게 된 사례입니다.
북한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죠.
이제 남은 곳은 리비아와 남아공인데, 북한이 비핵화를 의지를 드러내는 시작 상황은 리비아와 비슷하고, 그 끝은 남아공과 닮은꼴이 될 것이란 전망이 있어서 제목을 < '시작은 리비아… 끝은 남아공' > 이라고 해봤습니다.
[앵커]
왜 시작이 리비아식인지부터 설명을 해주실까요?
[기자]
네. 일단 리비아 같은 경우에 국제사회의 고립, 그리고 제재를 버티다가 결국 핵무기 폐기를 선언했는데, 북한도 지금 상황이 비슷합니다.
다만 북한은 사실상 핵 무력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을 20% 정도밖에 진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핵화가 시작됐습니다.
반면 남아공은 핵무기까지 개발 완료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완벽하게 이뤄진다면 그 끝이 남아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공의 경우 소련의 봉괴로 아프리카 앙골라에 주둔하던 쿠바군이 철수하면서 안보위협이 사라져 자연스럽게 핵무기 필요성이 없어진 것입니다.
또 국내적으로는 흑인 정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칫 극우 백인세력이 핵무기 탈취를 감행할 우려가 있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것이어서 비핵화의 시작은 북한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결국 현재 북한의 상황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과거 비핵화 사례는 없는 것입니다.
[앵커]
네, 그래서 얼마 전에 볼턴 미국 국가안보 보좌관이 리비아식 모델을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다 이렇게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 일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안태훈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