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컵라면, 숟가락, 그리고 공구… .'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숨진 19살 김군의 유류품 기억하시지요. 끼니도 못 챙기고 하루종일 일에만 매달렸던 김군이 매달 손에 쥐는 돈은 140만 원이 채 안됐습니다. 김군이 떠난지 꼭 1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화는 여전히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늘(27일) 구의역에 시민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채승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김 군 어머니 (지난해 5월) : 왜 거기에 사발면이 들어 있어요. 하루 종일 끼니를 굶어가며 일했다고 솔직히 얘기했다면 정말 저희는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겁니다.]
구의역 희생자 김 군은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일하다 숨졌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또 다른 김 군은 한둘이 아닙니다.
대기업 협력업체의 해외 공장에서 일했던 임혁진 군은 당시 김 군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을 보고 울컥했다고 합니다.
[임혁진 : 컵라면 있는 거 보고서 나도 이렇게 밥을 라면으로 먹고 했는데…얘도 나랑 같이 이랬구나…]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야근을 밥 먹듯 했던 임 군이 그린 공장의 그림 속에서는 시곗 바늘이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임혁진 : 일이 많을 때는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일하고…거의 30시간 정도 일을 해봤어요. 하루에 거의 30시간?]
새로운 일을 찾고 있지만 임 군이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습니다.
[임혁진 : 8시간은 너무 꿈인 거 같고, 하루 12시간 이상은 일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공업고등학교에서 용접을 배운 전모 군은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무거운 부품만 날라야 했습니다.
[전모 군 : 용접 시켜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자기가 회사에서 제일 독하다고 하면서 웃으면서 사람 자른다고…]
매일 같이 이어지는 해고 협박에 입을 다물었지만 몸과 마음만 다친 뒤 퇴사해야 했습니다.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참아 내면서 같은 직장에 계속 다니기도 쉽지 않습니다.
중증 환자의 재활 치료를 돕는 작업치료사들은 스스로를 '난민'이라 부릅니다.
[천은혜/작업 치료사 : 소모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퇴사를 권유하는 분위기들이…]
[박선향/물리 치료사 : 대학교에서 이미 쏟아져 나온 신입들이 있는데 얘네는 돈을 싸게 주고 일을 고용하면 되잖아요.]
'갑'의 위치에 있는 병원 측이 꺼리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다 몸이 망가져도 산재 신청조차 쉽게 하지 못합니다.
50일 동안 이틀 쉬는 등 열악한 노동 환경을 못 견디다 지난해 10월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PD 역시 구의역 희생자 김군을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이용관/고 이한빛 PD 아버지 : 비정규직 문제라든가, 노동착취의 문제라든가 안타까워하면서 굉장히 마음 아파했죠.]
이씨의 부친은 이제 청년 노동 문제 고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용관/고 이한빛 PD 아버지 :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또 다른 이한빛, 제2의 이한빛 이런 희생들이 없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씨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 구의역에 다시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시민들은 김 군을 추모하며 청년 노동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서로의 곁에서 힘을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