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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 대통령 직접 전화…'희망 갖고 살라' 위로"

입력 2017-05-15 22:27

'순직'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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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앵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인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 스승의 날인 오늘(15일) 문재인 대통령은 2명의 교사에 대해서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동안에 순직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애써온 가족들에게는 큰 선물이겠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 씨를 잠시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김성욱 씨 나와 계십니까?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네.]

[앵커]

좋은 소식입니다.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네.]

[앵커]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도 하셨다면서요?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오늘 오후 4시 한 2분쯤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앵커]

어떤 얘기를 주로 나누셨습니까?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대통령께서는 후보 시절부터 이런 기사 내용을 보고 이거는 말도 안 된다. 분명히 담임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인솔해서 수학여행을 갔는데 기간제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계시다가 4·16기억식에 오셔서 분명히 그때 공약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그렇게 생각했죠. 그때는 '아, 자그마한 소망이 생겼구나' 어떤 희망이 생겼죠. 그래서 대통령 임기 안에는 순직 인정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동안에 순직을 인정받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많이 쓰신 걸로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체투지까지 하셨고요.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번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까?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참담했습니다. 이제 그때 심정은 긴 터널을 지나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대통령께서 이렇게 순직 인정 해 주신다고 해서 이제는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아까 오후에 저한테 전화하실 때, 이제 걱정 말고 희망을 갖고 건강을 챙기면서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사시라고 그렇게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앵커]

김초원 선생님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우리 초원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화학 선생님이 굉장히 예쁘시고 좋으셔서 그때부터 이제 자기는 다음에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그때부터 꿈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학교도 사범대를 가서 자기가 원하는 화학선생님이 됐는데, 임용고시를 통과를 못 해서 그냥 선생님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앵커]

제자들을 구하다가 숨진 것으로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마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혹시 좀 구체적으로 들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작년에 화물기사님이 저한테 증언을 하셨는데, 분명히 5층에서 우리 딸을 봤답니다. 우리 딸이 키가 컸거든요, 173인데. 5층에서 봤는데 그 화물기사는 분명히 빠져나온 줄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분향소 가서 영정사진 보고 그 선생님이 못 빠져나오셨구나 그렇게 알았고, 또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생존 학생들은 이미 다 갑판 위에 올라가 있고 밑에 나머지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입혀주고 그런 상황에서 배가 뒤집혀서 결국은 학생들하고 같이 최후를 맞은 것 같습니다.]

[앵커]

4월 16일, 그러니까 참사 당일이 김초원 선생님의 생일이 맞습니까?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네. 초원이는 1988년도 4월 16일 오후에 태어났습니다.]

[앵커]

생일에 제자들한테 선물받은 목걸이라든가 이런 걸 다 하고 있었다고요.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네.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케이크도 선물하고, 또 간단하게 친구들끼리 용돈 모아서 귀걸이, 목걸이를 해 줬다고 그러더라고요. 시신이 발견됐을 때는 그 목걸이,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더라고요.]

[앵커]

모든 가족들이 다 마찬가지겠습니다마는 참사 이후에 가족들이 정상적인 생활은 거의 하지 못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하고 통화하고 계신 아버님 역시 지난 가을에서야 집으로 돌아가셨다고요?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제 고향은 경남 거창입니다. 거창에는 아직도 팔순 노모가 생존해 계시고,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고향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홀어머니도 계시고 해서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앵커]

이 모든 사실을 노모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까?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아직도 우리 어머니는 손녀딸이 미국에 박사 학위 받으러 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0년 계약으로 10년 되면 박사학위 받아서 돌아오는 줄 알고 그렇게 이제 어디 가면, 시장 같은 데 가면 할머니들한테 아직도 수첩에는 우리 손녀딸 사진이 있거든요. 그거를 연신 자랑을 하신답니다. 우리 손녀딸 공부 잘해서 미국에 박사학위 받으러 갔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앵커]

그렇군요. 실제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은 분들이 하실 것 같습니다. 김성욱 씨 고맙습니다.

[김성욱/김초원 교사 아버지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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