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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AI와 사투' 눈물의 양계농가…대책은 주먹구구

입력 2014-02-01 19:55 수정 2014-02-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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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 설 연휴를 걱정과 한숨 속에 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계 농가의 농민들인데요, 남들이 고향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조류인플루엔자-AI가 퍼질까 오도가도 못하며 방역으로 명절을 보냈습니다. 오늘(1일) 경기도 수원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에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는데요.

김관, 박상욱, 류정화 기자가 AI 발생한 현장을 심층 취재했습니다.

[기자]

방역복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긴장된 얼굴로 모였습니다.

[마스크 벗거나 안경 벗거나 장갑 벗으면 안 됩니다. 마치고 오면 그대로 벗어서 여기 놓으시면 됩니다. (마스크) 쇠가 있는 부분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들이 줄지어 가는 곳은, 하루 전 AI 확진 판정을 받은 토종닭 농장입니다.

닭 9만 4천마리가 살처분돼 대형 탱크통에 담겨 땅에 묻혔습니다.

살처분은 다음 날도 계속됐습니다. 탱크통에 닭이 든 마대자루가 떨어질 때마다 석회가루가 흩날립니다.

밀양보다 열흘 앞서 AI 확진 판정이 나온 전북 부안입니다.

오리들이 여느 때처럼 물을 먹으며 농장 안을 돌아 다닙니다. 이 때 방역요원들이 들어와 오리들을 몹니다.

농장 입구에 가스통이 보입니다. 한쪽에 모인 오리들을 이산화탄소로 질식사시킨 뒤 대형 FRP탱크에 담아 매장합니다.

이곳 마을 농가 21곳 중 20곳에서 키우던 오리 14만 마리가 이렇게 살처분됐습니다.

지난 17일 전북 고창의 오리농장이 AI 확진 판정을 받은지 보름 만에 전남, 충북과 충남 그리고 경기와 경남 지역으로 계속 퍼졌습니다.

전국의 농장 약 100곳에서 200만 마리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습니다.

모두 농민들이 애지중지 키워온 녀석들입니다.

축산 기술이 발달하면서 부화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관리가 됩니다.

경기도 포천의 한 부화장에서 계란이 기계로 들어간 뒤 껍질을 깨고 병아리들이 세상으로 나옵니다.

수십만 마리의 병아리들은 사람 손을 거쳐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상자에 담깁니다.

행여 병에 걸릴까 태어나자마자 소독약 세례를 받습니다.

잘 생존한 병아리들은 이제 넓은 양계장으로 이사를 갑니다.

상자에서 떨궈진 병아리들은 농장을 활보하며 자라납니다.

모였다 흩어졌다 몰려다니면서 사료를 먹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십니다.

자라나는 병아리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기만 한 축산 농민들이지만 요즘은 걱정 뿐입니다.

[부화장 관계자 : (AI때문에 힘들진 않으세요?) AI질병 때문에 이동제한도 그저께 실행이 됐었구요. 그런 부분에서 차량 운행에 차질도 생기고 그런 게 힘들어요.]

이날은 같은 경기 지역인 화성에서 AI확진 판정이 내려진 날이기도 합니다.

[지부화장 직원 : 마음이 안 좋죠.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거 같은데요. 방역하고 해야죠.]

앙계장을 운영하는 김상진씨는 병아리들을 한 달 동안 키운 뒤 대형 닭고기 업체에 마리 당 2,300원을 받고 넘깁니다.

[김상진/양계장 주인 : AI가 (지역에) 들어와서 살처분 하게 되면 적어도 6개월 동안은 입출을 못합니다. 살처분 보상비를 받아도 만족하는 금액 아니고.]

제법 자라난 병아리를 키우는 장에서도 시름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애써 기른 닭들을 무더기로 살처분하는 농민의 마음은 표현하기 힘듭니다.

시민단체에선 살처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원복/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 : 살처분은 외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매우 비과학적이면서도 잔인한 대량 동물학대이자 동물학살일 뿐이다.]

병아리 때부터 애써 길러온 닭을 죽이는 게 누구보다 마음 아픈 양계 농가에서도 별 도리가 없습니다.

[이창호/한국오리협회 회장 : 현재 소비가 급격히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다보니까 업계에서 현재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

[앵커]

현장을 취재한 김관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 기자, 저렇게 예쁜 병아리들을 잘 키웠는데 모두 살처분하려면 정말 안타깝겠어요.

[기자]

예, 자라면 팔려 나갈 닭이지만 때가 되기 전에 이렇게 무더기로 살처분을 하게 되면 농민들 마음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앵커]

현재까지는 철새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요?

[기자]

일단 정부당국도 철새를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논란이 있습니다.

내용 함께 보시겠습니다.

+++

충남 서산의 천수만 일대입니다.

매년 우리나라에 오는 겨울 철새 100만 마리 중 절반인 50만 마리는 이곳 천수만 철새도래지에서 겨울을 납니다.

볍씨를 주워 먹느라 부리를 바쁘게 움직이는 흑두루미들, 삼각편대로 허공을 가르는 흰뺨 검둥오리도 천수만의 단골 손님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과 농민 모두에게 반가운 손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AI 사태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지목되면서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안진식/양계농장 운영 : 여기(천수만)가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가 (AI가) 터지면 대한민국이 다 터집니다. 여기가 철새가 제일 많이 오는 데라서요.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하니까 농가 입장에서는 진짜 황당합니다.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네요.]

정부에선 철새 먹이주기를 금지하는 한편, 유명한 철새도래지의 출입 등을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철새에게 먹이를 안 주면 오히려 먹이를 찾아 민가로 가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며 환경단체들이 반발했습니다.

[이평주/서산태안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 먹이가 없다보니까 사방으로 날아가거든요. 민가 양계장이나 이런 데로 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합니다.]

정부가 한 발 물러서 먹이주기를 다시 허용하자 환경단체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철새 먹이주기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립니다.

[김재홍/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 국내에 4번에 걸쳐 H5N1 고병원성 AI가 발생했죠. 그때도 (원인이) 철새라고 밝혀졌고, 고병원성 AI의 대륙간 전파는 철새에 의한 게 많다고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도 밝혀졌죠.]

[유정칠/경희대 생물학과 교수 : 냉동육을 수입할 때, 그리고 흙에 (가금류를) 묻는다고 했을 때 그것 때문에 또 (AI가) 발생할 수도 있거든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먼저 철새한테 혐의를 두면 원인을 찾아 나가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거라고 봅니다.]

+++

[앵커]

정부의 대처가 오락가락하는 건 이것 뿐만이 아니죠?

[기자]

예, 우리나라에 AI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게 2003년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는데요, 하지만 아직 방역 체계조차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에 발동한 스탠드 스틸, 즉 이동제한조치도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자세한 내용 화면으로 준비했습니다.

+++

지난달 27일 경기도 안성에서 저녁 6시가 되자마자 꼼짝 없이 묶였던 오리 농장 사람들이 걸어 나옵니다.

이동제한조치, 즉 스탠드 스틸 명령이 해제됐기 때문입니다.

부화장에 있던 직원들은 하루 종일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김모씨/부화장 근무자 : 밥은 식당에 주문해서 먹어요. 문앞에까지 들어오면 받아서 먹고.]

우리나라가 AI 사태를 겪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정부의 대처는 여전히 엉성합니다.

처음으로 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지난달 17일, 정부는 이동제한조치가 이르다고 했습니다.

[권재한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1월 17일) : 초동 방역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동 제한 조치를 발령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하루만에 입장은 바뀝니다.

[여인홍 /농식품부 차관(1월 18일) : 가금류 가축, 이와 관련된 종사자와 출입 차량에 대해 1월 19일 0시부터 1월 20일 24시까지 48시간 동안 일시 이동 중지 명령을 발동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발병지역의 오리알은 이미 전국으로 옮겨진 뒤였고, 경기도 안성의 한 농가는 오리알 60만개를 전부 살처분 당했습니다.

AI 사태가 격년 주기로 발생하기도 했지만, 농가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이창호/한국오리협회 회장 : 스탠드스틸(이동중지명령)을 걸 때는 한번 더 심사숙고 해서 업계 이해단체들 의견도 충분히 수렴했어야 합니다.]

철새가 주범이라며 먹이주기를 금지했다가 먹이가 없으면 철새가 더 돌아다닌다는 반박이 나오자 다시 허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철새 도래지 주변인 서해안 인근을 맴돌던 AI는 멀리 떨어진 경남 밀양까지 번졌습니다. 경기도에도 올라왔습니다.

10년 넘도록 방역 체계도 못갖췄습니다.

고속도로 나들목 335곳 중 방역 통제초소가 설치된 곳이 3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말로는 확산을 막겠다고 했지만, 고속도로 길목에서조차 방역을 못하는 겁니다.

[지자체 방역관계자 : 방역 초소를 운영하려면 인원이 동원됩니다. 방역복과 인건비까지 지급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 없이는 어렵습니다.]

AI 요주의 기간인데 무인 방역헬기까지 발이 묶였습니다.

[양정모/무인헬기업체 이사 : (올해) 1월 1일부터 법 개정이 돼서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비행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정성껏 돌보며 키운 생 떼 같은 닭과 오리 수백만마리를 살처분한 농민들은, 이런 무기력한 대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막막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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